<말씀 암송>
1단원 십자가의 능력,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한줄 요약) 십자가의 능력으로 내가 죄인 것을 깨닫고(괴수^^) 속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됩니다.
2단원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한줄 요약) 내가 영접할 때 찾아오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증거는 말씀으로 확증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아버지, 은혜, 용서와 사랑, 성령의 근심, 하나님의 소원, 전도할 마음)
3단원 회개의 기쁨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줄 요약) 예수님을 바라보며 드리는 회개는 죄를 이기게 하며 또한 사람 앞에서도 죄를 고백할 수 있게 합니다.
4단원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4과 나는 죽고 예수는 살고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이 자신을 통하여 일하시도록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1) 주님의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하는 유형의 제자들
(빌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교회의 충성스러운 여성 지도자였으나 교회 내 분열과 시험을 일으키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 사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을 것'을 부탁했습니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열심이 있으나 주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잘한 것은 자랑과 교만으로 나타나고, 잘 안 된 것은 불평과 낙심으로 나타납니다. 주변에는 계속되는 갈등과 다툼이 있고 시험거리가 생깁니다.
2) 주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일하시도록 하는 유형의 제자들
(롬15:17-18)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한 일을 나타내고 드러내는데 결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자신을 통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삶의 주도권이 예수님께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삶의 주도권이 예수님께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내가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잘되어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일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아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갈등과 분쟁도 사라지고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수 있으려면 자아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 사실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죽음을 믿고 고백한다는 것은 예수님께 맡기고 완전히 순종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나의 의지를 버리고 주님의 의지로 행하고, 나의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감정으로 느끼고, 나의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매 순간 주님께 묻는 자세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질문) 예수님께서 당신을 통해 하고 싶어 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나를 향한 주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묻습니다. 주님의 뜻을 묻고 있지만 주체는 여전히 나입니다. 질문을 바꿔서, 주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바른 답을 얻을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등부 한 여학생이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시고 고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고모는 조카들을 키우느라 독신으로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 여학생은 고모의 희생에 고마워했지만, 나날이 심해지는 고모의 잔소리에 반항심이 생겼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을 반대할 때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오면 숨이 막혔고 고모와의 갈등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마다 고모와 싸운 것에 대해 회개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어느 날 설교 시간에 '우리가 죽어야 우리 대신에 예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에 은혜를 받고서는 '나 대신 예수님이 우리 고모를 만나주시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현관문을 잡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고모를 만나면 싸우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저 대신 주님이 우리 고모를 만나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문을 여는 순간, 고모가 영락없이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고모의 잔소리보다 고모의 주름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학생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는 고모를 와락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고모, 많이 늙었네~ 우리 때문에 너무 많이 늙었네~' 고모는 조카의 행동과 말에 당황했지만, 그 순간 오랫동안 응어리졌던 것들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로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조카를 통해 한 많은 한 여인의 삶을 치유하고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고모는 조카를 따라 교회에 나왔고 후에 교회의 충성스런 집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정에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남편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아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부모가 죽으면 자식이 예수님을 만나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순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힘으로 노력하는 순종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노력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결국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죽음으로 하는 순종입니다. 자아가 죽어야 비로소 진짜 순종이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사실은 자아 때문입니다.
내 자아의 죽음은 결코 신앙생활의 목표가 아닙니다. 도를 닦아서 이르러야 할 경지가 아닙니다. 내가 죽었다는 것은 믿음의 시작이고 주님이 역사하시는 삶의 출발점입니다.
질문) 당신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간증이 있습니까?
기도) 사랑의 하나님, 이제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사는 것에 지쳤습니다. 나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예수님께 내어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저희를 주님의 도구로 자유롭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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