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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죽음을 통한 승리
박준원 2024-11-20 추천 0 댓글 0 조회 35

<말씀 암송>

1단원 십자가의 능력,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한줄 요약) 십자가의 능력으로 내가 죄인 것을 깨닫고(괴수^^) 속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됩니다. 

2단원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한줄 요약) 내가 영접할 때 찾아오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증거는 말씀으로 확증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아버지, 은혜, 용서와 사랑, 성령의 근심, 하나님의 소원, 전도할 마음)

3단원 회개의 기쁨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줄 요약) 예수님을 바라보며 드리는 회개는 죄를 이기게 하며 또한 사람 앞에서도 죄를 고백할 수 있게 합니다. 


4단원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5과 죽음을 통한 승리

(고후4:10-11)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의 핵심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있습니다. <나는 죽고>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살고>에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예수님의 생명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사는 삶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나면 죽음은 저절로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여전히 더러운 죄를 지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도 나는! 나는! 하면서 자기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도 염려하고 걱정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안돼요! 못해요!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육신이 죽고 난 다음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였을 때, 누구나 경험하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걱정이 주님께 맡겨집니다. 오직 죽음만 보여드리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항상 죽음을 고백하며 사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4:10-11)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살았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가 항상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았던 이유는 그때에 예수님의 생명이 자신을 통하여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은 사람은 어떤 시험도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죽음조차도 더 이상 그를 두렵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간증) 2001년 11월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입니다. 저녁 식사 후 저녁집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랐습니다. 

- 여보, 저 암이래요.

아내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듣고 병원 로비에서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저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었습니다. 당장 저녁집회 때 설교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여보, 너무 미안해, 지금 내가 당신에게 갈 상황이 아니야. 당신 혼자 집에 가야겠어

걱정에 휩싸여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 주님, 설교할 힘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 무슨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닉까?

주님께서 즉각 책망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 너는 이미 죽었다고 고백해 놓고, 뭘 또 그렇게 죽겠다고 아우성이냐? 오늘 저녁집회에 네아내처럼 큰 병에 걸려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온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네 아내에게 해줄 말을 그에게 해라!

그제야 제가 이미 죽었음을 깨닫고 기도의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 주님, 아내를 주님께 맡깁니다. 다만 오늘 저녁집회에 암 선고를 받고 온 이가 있다면 말씀을 통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옵소서!

그날 밤,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큰 은혜가 임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걱정되었습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주어야할지 몰랐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무척 밝았습니다. 

- 여보, 괜찮아?

- 예, 저 괜찮아요.

아내의 밝은 표정에 어리둥절하여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전철을 타고 안산까지 왔어요. 자꾸만 눈물이 흘렀어요. 안산역에서 집에 가려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역 주변에서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하는 교인들이 생각이 났어요. 그분들을 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 심방이라고 생각하며 찾아뵈었어요. 저의 갑작스런 방문에 그분들이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제 문제를 잊을 정도였어요. 추운 날씨에 장사하는 그분들에게 저녁과 따듯한 차를 사 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일어났어요.

택시를 타고 오는데, 기사분에게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자꾸 교회 이야기를 하니까 몹시 불편해하시더라고요. 

- 기사님, 제가 지금 병원에서 암선고를 받고 오는 길이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 이후에 분명히 천국이 있어요. 꼭 예수님을 믿으셔야 해요.

그랬더니 그분 태도가 확 바뀌는 거였어요. 제 말에 귀를 기울이며 듣더라고요. 그리고 아파트 앞에서 내리면서 다시 한 번 교회에 꼭 나가시라고 권면했지요.

사실 병원에서 암이란 판정을 들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했어요. 주님이 지금 나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심방하고 전도하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얼마의 시간을 주시든 저는 그 시간을 이웃으 ㄹ위해 사용하고 싶어요. 


저는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의 초점을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께 맞추면, 죽음조차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제 아내는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시간은 우리 부부에게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고 아내는 잘 회복되었습니다. 


질문) 당신이 정말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지금 가장 고민되고 힘든 문제에 죽음을 적용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의 죽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더 놀라운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감추거나 억누르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집에 귀중한 손님이 찾아왔다고 생각해보세요. 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널려 있던 것들을 장롱 속에 집어넣고 구석구석 감추어 둡니다. 겉으로는 정리가 잘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정말 집안이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지저분한 것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많은 성도가 자신의 죄와 교만과 성질을 힘겹게 감추고 누르고 살아갑니다. 감추고 누르면서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이지 이긴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겸손한 척 머리를 숙이지만 속에서는 교만이 머리를 듭니다. 성질을 애써 누릅니다. 속으로는 찡그리고 겉으로는 웃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신앙생활은 자유와 기쁨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짐이요, 스트레스입니다. 


공자는 몸과 마음을 계속 닦고 수련하는 것으로 성인이 된다는 수신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유교방식으로 사는 성도가 많습니다. 그들은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율법적인 신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억누르지 않고 드러내고 또 드러냅니다.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면서도 두려울 것이 없고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진정한 자유와 승리입니다.


질문) 당신은 죄와 성질을 힘써 누르고 감추고 꾸미며 살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해보세요.


기도) 사랑의 하나님, 늘 못된 자아, 옛사람과 힘겹게 씨름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가운데, 옛자아의 죽음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의 죽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완전한 자유와 승리를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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