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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이미 죽은 자로 여기라
박준원 2024-11-17 추천 0 댓글 0 조회 39

<말씀 암송>

1단원 십자가의 능력,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한줄 요약) 십자가의 능력으로 내가 죄인 것을 깨닫고(괴수^^) 속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됩니다. 

2단원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한줄 요약) 내가 영접할 때 찾아오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증거는 말씀으로 확증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아버지, 은혜, 용서와 사랑, 성령의 근심, 하나님의 소원, 전도할 마음)

3단원 회개의 기쁨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줄 요약) 예수님을 바라보며 드리는 회개는 죄를 이기게 하며 또한 사람 앞에서도 죄를 고백할 수 있게 합니다. 


4단원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3과 이미 죽은 자로 여기라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는 지금까지 죽지 않은 자아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자아가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며 죽으려고 애를 씁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자아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아가 죽었다는 것은 믿음이 장성한 사람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신자의 수준입니다. 


(롬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에 영접할 때 이미 죽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곧 나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장례식을 치르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진리이고 복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진리를 결론으로 삼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로마서6장3절에서는 우리라고 했는데 갈라디아서2장20절에서는 내가라고 썼습니다. 로마서6장은 복음의 진리를 갈라디아서2장은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의 옛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인 동시에 내가 죽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꼐서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진리를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여기고 믿음으로 죽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의 복음이 자신에게 그대로 임하였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사망선고를 해야 합니다. 죄에 종노릇하던 자아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이제 나는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전부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며 나아갈 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죽음이 실제가 됩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 되시고 주인 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십자가 복음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죽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오직 자아의 죽음으로 십자가를 통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이 내 생명이 되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죽었습니다>를 고백하는 것은 <나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던 옛사람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말은 혈기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혈기에 종노릇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정욕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정욕의 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귀가 죄로 사로잡으려 할 때, '마귀야, 나는 네 종이 아니야. 이전에 죄의 종노릇하던 나는 죽었어. 나는 이제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자야. 예수님의 종이야!'라고 선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말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새 생명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롬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우리는 앞으로 다시 살 것이 아니라 이미 다시 살았다는 것입니다. 


질문)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나의 복음'으로 고백해 보세요. 

1) 자아가 죽지 않았을 때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부끄러운 죄가 있더라도 구체적이고 정직하게 고백해 보세요.

2) 당신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고,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결단을 써보세요.


(유기성 목사님 간증)

언젠가 교회에 저에 대한 소문이 퍼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소문은 정말 근거도 없이 추측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교회 안에서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소문의 근원지가 누군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하였습니다. 당장 찾아가 연유를 묻고 공개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아, 바로 지금이 내가 죽어야 하는 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죽었습니다>

다시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미 죽었습니다>

같은 고백은 계속 반복하다가 열 번째 고백하는 순간, 저에게 정말로 죽음이 실제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죽음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안했습니다. 더 이상 소문을 퍼뜨린 집사가 밉지 않았습니다. 소문을 믿었던 교인들에 대한 섭섭함도 사라졌습니다. 마음의 격동이 사라지고 평온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의 마음을 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이제 저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십시오>

기도 후 고요히 주님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울다가 지쳐 탈진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울고 있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금 전에 네가 내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느냐?>

저는 그때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었습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서 헐뜯고, 상처 주고, 자기를 주장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보시며 슬퍼하고 계셨습니다. 헛소문을 퍼뜨려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집사를 바라보며 통곡하셨습니다. 그 집사를 바라보며 분노하는 목사를 바라보며 통곡하셨습니다. 제 자아의 죽음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알지 못했다면 죽어도 주님의 마음을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음이 실제가 되면 모든 문제가 바뀝니다. 두려움, 염려, 걱정, 미움, 원망, 욕심, 조바심이 다 사라집니다. 그것들을 느끼는 주체인 내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자아의 죽음으로 이런 것들이 처리되면 우리 마음에는 평안과 감사, 기쁨과 사랑이 생기게 됩니다. 환경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언제 어디서나 기뻐하고,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아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내가 죽었다면 감정도 없어지고, 성질도 없어지고, 혈기, 음란한 마음 같은 것도 없어져야 하는데 여전히 그대로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것들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죽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죄가 사함 받은 것과 옛사람이 죽은 증거로 우리에게 주신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음을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자신의 욕구나 계획, 의지가 다 죽어집니다. 오직 상대방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게 됩니다. 사람만 같이 있어도 육신을 따라 행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하물며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것은 여전히 육신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욕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죽었다는 진리를 계속 확인했습니다. 계속해서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는 진리를 결론 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이 엄청난 복음을 듣고도 믿음으로 <나는 죽었다. 나는 예수님으로 산다>라고 고백하며 살지 않고 계속 죽여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이 찬양을 부르면서 울고불며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이 찬양은 수련회 때 회개와 결단의 찬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부르며 울었던 이유는 '주님, 저는 안 죽었어요. 아직 제 마음대로 살고 있어요. 주님 회개합니다. 이제는 죽을래요. 정말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저를 죽여주세요!'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죽었다고 노래하면서 속으로는 '안 죽었어요. 죽여주세요.'라고 한 것입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집에 오면 더욱 좌절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2장20절은 회개나 소원의 말씀이 아니라 확신의 말씀, 능력의 말씀입니다. 


자아는 주님이 죽여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자아를 죽음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질문) 당신은 자아의 죽음을 받아들임으로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시험에서 이겼던 경험이 있습니까?


기도) 사랑의 하나님, 내가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이 놀라운 복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매일매일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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