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158페이지입니다.
<신학 문헌들의 발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들의 관념을 옹호하고 전달할 필요를 분명하게 인식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요한 장르의 신학문헌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 교리문답서:
종교개혁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을 쉽게 설명한 것으로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신앙고백서:
종교개혁에 속한 여러 교파들(루터파, 개혁파, 재세례파 등)의 주요한 신학적 주장을 진술한 것으로 장년을 대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조직신학 저술들:
멜란히톤의 <일반원리>와 칼뱅의 <기독교강요>등을 저술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옹호하였습니다.
1. 교리문답서
루터는 목회자나 평신도가 기독교의 기초적 가르침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일반 교인들을 교육시킬 기독교 기초신앙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529년4월 첫번째 결과로 <독일 교리문답(혹은 대교리문답)>이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담고 있으며, 성례전 즉, 세례와 성찬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목적이 아니라 설교 자료들에 기초한 것이었기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였습니다.
1529년5월 한달 후에, <소교리문답>을 다시 집필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쓰였으며, 내용이 쉬워서 널리 인정받아 커다란 성공을 거두며 루터파 교회들 사이에서 널리 채용되었습니다.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암기하여 배우기에 알맞아 종교학교에서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두권 모두 독일어로 쓰였다는 점입니다.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일반인들을 가르치는데 제약이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 세례란 무엇입니까?
답: 세례란 물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용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연결된 물입니다.
문: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답: 마태복음28:19에 기록된 대로, 우리 주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혁주의 교회들도 루터의 소교리문답의 장점을 알게 되어, 칼뱅도 <제네바 교리문답>을 프랑스어(1542)와 라틴어(1545)로 펴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1563년 무렵에 등장하였습니다.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개혁파 신학자 두 사람에게 자기 영내의 교회들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교리문답을 만들어 줄 것을 의뢰했습니다. 129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진 독일어 교리문답이 완성되었고 52개 단위로 구분하여 일년 동안 정규적인 교육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개신교의 소교리문답의 교육적 장점은 가톨릭에서도 그 양식을 받아들여 발전시켰습니다. 요한 디텐버거가 1537년에 교리문답서를 펴냈습니다.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 성모송과 일곱개의 성례에 관한 논의로 이루어졌습니다. 가톨릭에서도 이렇듯 문답방식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1554-1558년 사이에 페트루스 카니시우스가 발간한 세권의 교리문답서도 문답방식이 채용되었고 1566년 더 내용이 보강된 트리엔트 교리문답서도 발간되었는데 모두 라틴어로 만들었습니다.
2. 신앙고백서
종교개혁이 성서에다 얼마나 큰 권위를 부여했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성서해석의 문제들은 여러 교파들 간의 불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일차적인 공식적인 수단이 필요했는데,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신앙고백서들입니다. 각 교파의 신앙고백서들은 종교개혁 사상에 포함해서 다룰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제도권 종교개혁에서는 성서의 권위를 크게 강조하면서 기독교 일치를 이루는 전통도 인정하였습니다. 대체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삼중의 권위를 인정하였습니다.
1) 성서: 종교개혁자들은 성서가 최고의 권리를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2) 기독교세계의 신조들: 종교개혁자들은 사도신경, 니케아신조 같은 문헌들이 초대교회의 일치된 견해를 담고 있으며, 또 성서에 대한 정확하고 권위 있는 해석이라고 보았습니다. 가톨릭도 이러한 신조들의 권위를 똑같이 인정하였습니다.
3) 신앙고백서들: 이것은 종교개혁 내의 교파들이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 문서들을 가리킵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1580)은 초기 루터파 교회들에게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집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집단들이 각자 신앙고백을 내세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종교개혁의 기본 뼈대는 성서가 일차적이고 보편적인 권위를 지니고 신조는 보편적이긴 하나 부차적인 권위를 신앙고백은 3차적이고 지역에 국한된 권위를 지니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3. 조직신학 저술들
종교개혁 신학을 체계적으로 다듬어야할 필요성이 초기부터 제기되어왔습니다.
1) 루터파에서는 1521년 멜란히톤의 <일반원리>를 출간함으로 조식신학적 양식을 세웠습니다. 초판에는 이신칭의 및 루터파 종교개혁 관련 주제들만을 다루다가 독자들의 요구에 새로운 자료들을 추가하였고 계속적인 추가작업으로 인해 멜란히톤의 방식은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되어 17세기에는 더이상 충족시켜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멜란히톤 방식으로 예나대학교 요한 게르하르트가 <신학의 일반원리(1610-1622)>를 9권짜리로 방대하게 저술하였지만, 훨씬 더 조직적인 칼뱅의 체계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2) 칼뱅의 <기독교 강요>는 1536년 3월에 출간된 초판은 1529년 루터의 <소교리문답>을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총6장 중에서 4장은 루터의 교리문답을 본딴 형태였습니다. 1539년 두번째 판에서는 17장으로 분량에 3배가량 늘어났습니다. 방대한 신학적 주제들을 다룸으로 더이상 교리문답서가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필적할 고전이 되었습니다.
그 후 계속 판을 거듭하다가 1559년에 나온 최종판은 80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네권의 책으로 구성된 기독교 강요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권 창조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
2권 구속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
3권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참여하는 방법
4권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는 외적 수단
칼뱅이 1543년판의 4중적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새롭게 자료를 구분하였습니다.
<기독교 강요>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가장 강력한 신학저술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에서 이루어진 신학의 갱신과 강화의 결실로 방대한 조직신학 저술들이 발간되었습니다. 특히 멜란히톤의 주제별 신학양식(로키)을 따라 스페인의 도미니크회 신학자 멜키오르 카노(1509-1560)가 <신학의 일반원리>를 저술하였습니다. 한 세기 동안 이러한 신학 방법을 사용하여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가톨릭신학은 프로테스탄티즘을 논박하는 논쟁신학이 발전하였는데 그 중에서 로베르토 벨라르미르의 <이시대의 이단들에 대한 기독교 신앙논쟁 강의(1586)>는 예술의 경지로 발전시켰습니다.
<돌아보는 질문>
1. 종교개혁이라는 용어가 뜻하는 것은?
2. 프로테스탄트 사상가 중에서 이신칭의 교리와 관계가 깊은 사람은?
3. 인문주의는 종교개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4.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이 기존의 교회론을 개정하는데 공을 들인 이유는?
5. 신앙고백주의와 경건주의가 발전하는데 영향을 끼친 요소는?
6.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가톨릭 사상가들은 왜 자기네 교회와 초대교회의 연속성을 강요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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