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공부 23교시입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146페이지입니다.
- 종교개혁시대의 주요 신학자들
종교개혁시대는 신학역사에 있어서 가장 창조적인 시대로 꼽히고 있습니다.
1. 마틴 루터(1483-1546)
마틴 루터는 독일 에어푸르트 대학교의 인문학부에서 학업을 시작했으며, 나중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1512년 비텐베르크 대학교 성서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를 강의하였습니다. 이 기간에 칭의론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성경 본문을 깊이 연구했던 경험이 그로 하여금 그 시대를 주도하던 신학 이론에 불만을 느끼게 하였고 신학 개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루터는 1517년 면죄부를 비판하는 95개조 논제를 발표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라이프치히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루터는 스콜라주의에 맞선 급진적 비판자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1520년 그는 입지를 다져주는 논문 세 편을 발표하였습니다.
1) 독일의 기독교인 귀족에게 호소함
이 논문에서 루터는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외쳤습니다. 16세기 초 교회는 교리와 실천 모두에서 신약성서와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하여 대중들이 매우 어려운 신학 개념들에 쉽게 다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2) 바빌론의 포로가 된 기독교 교회
이 논문에서 루터는 복음이 제도교회의 포로가 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중세 교회는 사제와 성례전의 복잡한 체계 속에 복음을 가두어 버렸다. 교회가 복음의 종이 되어야 마땅한데도 반대로 교회가 복음의 주인이 되었다.
3) 기독교인의 자유
여기서 루터는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가 기독교인의 삶에 지니는 의미를 파헤쳤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자들 가운데서 가장 독창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루터의 저술은 대부분 특정한 논쟁에 답하면서 작성된 것들입니다. 오직 그가 쓴 두 권의 <교리문답서>만 신앙의 기본 개념들을 조직적으로 제시한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책들은 주로 목회적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학문적 신학 저술로 받아들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루터 신학은 서양 기독교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518년 한 문서에서 간략하게 제시된 그의 십자가 신학은 20세기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같은 저술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
스위스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는 빈대학과 바젤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 후 스위스 동부의 교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에라스무스의 저술에 큰 관심을 쏟았으며, 그 영향으로 당시의 교회가 개혁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품게 되었습니다. 1519년 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 교회의 설교단을 통해 개혁을 전파하였습니다. 초기에 그는 교회의 도덕성을 개혁하는 일을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곧이어 성례전 신학을 비판하는 데까지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츠빙글리주의라는 용어는 그리스도가 성만찬에 임재하지 않으며 성만찬이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츠빙글리의 신념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루터나 칼뱅처럼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는데, 루터의 독창성이나 칼뱅의 조직적인 능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3. 장 칼뱅(1509-1564)
칼뱅은 1509년에 파리의 북동쪽, 누아용에서 태어났습니다. 스콜라주의 중심의 파리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인문주의 중심의 오를레앙 대학교로 옮겨서 민법을 공부하였습니다. 학자의 길을 준비하다가 20대 중반에 회심을 경험한 후 파리 개혁운동들과 깊이 관계를 맺었으며 그 후 바젤로 도피하여 살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독립을 쟁취한 제네바에 정착했으며 1535년 프로테스탄티즘으로 개종하였습니다. 그가 사망한 1564년에 제네바는 국제적인 개혁운동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2세대 종교개혁자들은 이젠 세대보다 조직신학 저술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종교개혁 2기의 중심인물이었던 칼뱅은 신학의 기본 개념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성서적인 기초 위에서 개념들을 정당화 하고 가톨릭의 비판에 맞서 그것들을 옹호할 수 있는 저술의 필요성을 깨달아, 1536년 <기독교 강요>라는 작은 소책자를 발간하였습니다. 그 후 25년 동안 그는 이 책에 매달려 장을 추가하고 자료를 재배열하면서 계속 다듬어 나갔습니다. 최종판은 80장으로 구성되어 총 네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강요는> 16세기 가장 중요한 서적 가운데 한 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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