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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공부 15교시(중세:신학자들)
박준원 2020-07-06 추천 0 댓글 1 조회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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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공부 15교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p.95~

 

<중세시대: 주요 신학자들>


1) 다마스쿠스의 요하네스 676-749

다마스쿠스의 요하네는 시리아 신학자로 동방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며 마지막 그리스 교부입니다. 그는 다마스쿠스의 칼리프인 압둘 말렉의 집안에서 양육 받았으며 칼리프를 섬기는 최고 재무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726년 어느날 모든 직책을 포기하고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성 사바스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칼리프: 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

그는 성상파괴 논쟁에 휘말렸으며, 성상 사용에 대한 그의 옹호는 성육신 교리를 바탕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를 좋아하신다는 점을 입증하고 하나님의 모습과 신적 진리들을 제시하기 위해서 물질적 형태들이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였습니다. 

요하네스는 3부로 이루어진 지식의 원천이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1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이 기독교 교리를 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전제 위에 존재론을 다루고 있으며 2부는 에피파니우스가 이단에 관해 쓴 글을 개정한 것이고 3부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 내용들을 자세하고 논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높이 평가를 받았으며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도 인용되었습니다. 


2) 신신학자 시메온(949-1022)

시메온은 949년 소아시아 파플라고니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1살에 대도시 콘스탄티노플로 갔으며 부모님은 정치학을 공부하길 원했지만 그는 20세에 영적체험을 하게 됩니다. 강력한 빛으로 생생하게 현존하는 하나님에 대한 황홀체험은 깊고 확고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27세에 스투디오스 수도원에 들어가 경건한 시메온의 영적 가르침을 받게 되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으로 자신의 이름을 그레고리우스에서 시메온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후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성 마마스 수도원으로 들어가 사제로 안수를 받고 이후에 수도원장이 되었습니다. 이 기간 그는 기도와 명상생활을 갱신하면서 관상기도와 명상의 힘을 강조하면서 영적 서적을 집필하였습니다. 

시메온은 근대 정교회에 신학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신학에서는 성육신 교리를 강조하고 신화로서의 구속을 역설하였습니다. 


3) 캔터베리의 안셀무스(1033-1109)

이탈리아 북부에서 태어난 안셀무스는 곧 학문의 중심지인 프랑스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단시간에 논리학과 문법에 통달하고 노르망디의 베크 수도원에서 교사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12세기 신학적 르네상스가 시작될 무렵 하나님의 존재증명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에 대한 합리적 해석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습니다. 

1079년에 나온 [프로슬로기온]은 탁월한 책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지고의 선이신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믿게 해주는 논증을 제시하고자 씨름합니다. 이를 존재론적 증명이라 부르며 하나님의 존재를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주장하여 증명합니다. [프로슬로기온]은 신학에서 이성과 논리를 강조하고 있으며 스콜라주의 신학의 진면목을 선구적으로 보여줍니다. 안셀무스의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란 구절은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1093년 안셀무스는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초빙되며, 영국 교회에 대한 노르만 세력의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다지게 되었지만, 이 때 교회와 군주 사이에 땅의 소유권을 놓고 격한 다툼도 벌어졌습니다. 

영국을 떠나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안셀무스는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를 저술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합리적으로 증명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순종한 결과로 인간이 누리게 된 은혜에 대해 분석하였습니다. 이 논증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속죄론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이 책은 스콜라주의의 전형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성에의 호소, 논증의 논리적 전개, 개념의 함의에 대한 집요한 탐구, 기독교 신앙이 합리적으로 입증될 수 있다는 기본 신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탈리아의 로카세카 성에서 아퀴노 랜덜프 백작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별명은 몸이 비대해서 벙어리 황소였습니다. 1244년 10대 후반에 설교자들의 수도회로 알려진 도미니크회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베네딕트 수도회에 들어가 당대 최고의 자리였던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장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형들은 그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한달 동안 가두어두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도미니크회에 들어가 당대 최고의 신학자가 됩니다. 아퀴나스의 스승 중 한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황소가 포효하는 소리를 온 세상 사람들이 듣게 될 것이다.'

아퀴나스는 1252년 파리에서 신학을 시작하였고 4년 후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칠 자격을 얻었습니다. 3년간 마태복음에 관해 강의했으며, [이교도 논박 대전]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슬람인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주요한 논증들을 제시하였습니다. 1266년 그는 많은 책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저작 [신학대전]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서는 핵심적인 교리 문제들(그리스도의 신성)을 자세하게 분석하였고 기독교 신학의 핵심 요소들(신앙에서의 이성 역할)을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3부로 된 이 책은 1부는 창조주 하나님을, 2부는 인간이 하나님께 회복됨을 ,3부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이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 방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1273년 12월6일 절필을 선언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쓴 모든 것이 다 지푸라기와 같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1274년 3월7일에 별세하였습니다. 그는 세가지 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1)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다섯 가지 방법 2) 유비의 원리,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하는데 신학적인 기초를 제공 3) 신앙과 이성의 관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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