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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공부 5교시(교부시대의 주요 신학적 논쟁)
박준원 2020-06-06 추천 0 댓글 1 조회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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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교시 교부시대: 주요 신학 논쟁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P. 49-53.

 

5) 주요 신학 논쟁과 발전

교부시대는 기독교 신학의 외형을 다듬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그 시대는 다음과 같은 분야를 집중적으로 탐구하였습니다.

() 정경 신약성서의 범위

교부시대에 와서 신약성경을 확정짓는 결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을 정경의 확정(성경의 정경화)’이라고 말합니다. 정경은 척도나 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 카논에서 유래했습니다. 정경은 기독교 교회 안에서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된 문서들을 말합니다. 정경화 과정을 거쳐 누가복음은 정경으로 도마복음은 외경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이레나이우스 때에 이르러 네 권의 복음서를 인정하게 되었으며, 2세기 후반에 와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서신들이 정경에 포함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네권의 복음서, 사도행전, 14권의 바울서신(히브리서를 바울서신으로 포함), 요한계시록을 받아들였습니다. 테르툴리아노스는 복음적이고 사도적인 문헌들율법 및 예언서들과 나란히 읽어야 하며, 이 두 가지 모두 교회안에서 권위를 지닌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가 367년에 배포한 39번째 부활축일서신에는 신약의 정경을 27권으로 밝히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과 동일합니다.

성경 정경화에 있어서 논쟁이 되었던 책들이 있었습니다.

서방교회에서는 히브리서를 정경에 포함시키기를 주저했으며, 동방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정경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큰 영향을 주었던 책들은 클레멘스의 첫 번째 편지, 디다케(2C, 교회생활 지침서) 등이 있습니다.

정경의 배치와 순서가 정해지는데도 심한 변동을 겪었습니다.

동방교회는 공동서신을 바울서신 앞에 놓으려 했고 서방교회는 공동서신을 사도행전 바로 뒤에 배치하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논쟁 끝에 결국 신약성경의 마지막에 배치하는 것으로 동서방교회가 합의하였습니다.

정경의 결정은 어떤 기준에 의해 이루어졌을까요? 그것은 교회에 의한 권위의 부여가 아니라 권위의 승인이 기본 원리였습니다. 이미 지니고 있던 권위를 승인한 것입니다. 이레나이우스는 교회는 정경을 창안한 것이 아니라 정경을 승인하고 보존하고 수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5세기 초에 서방교회에서 정경이 확정되었습니다.

 

() 전통의 역할: 영지주의 논쟁

초기 교회는 영지주의라 불리는 운동 때문에 커다란 어려움이 직면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뉴에이지 현상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이 운동은 로마제국 후기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영지주의는 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적인 지식 또는 그 지식 위에 형성된 종교 사상입니다. 문제는 영지주의가 여러 가지 면에서 기독교와 매우 유사하게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신약성경을 비정통적 방식으로 해석하였으며 리옹의 이레나이우스는 영지주의를 기독교의 심각한 도전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전통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전통은 전해주고나 넘겨주는 행위 혹은 전해 받거나 넘겨받은 것으로 이레나이우스는 신앙의 규범은 정경이 증언하는 것이며, 사도적 교회가 그것을 충실하게 보존해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영지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교회의 가르치고 선포하는 직무와 교회 직분자들의 연속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전통은 교회의 신조들과 공적인 교리 선언들 속에 반영되어 있는 성서에 대한 전통적 해석,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전통적 진술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회 전통을 세움으로 영지주의가 전통에서 벗어난 이단임을 주장하였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성서는 전체로서 읽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단자들은 성서로 하여금 얼마든지 자기네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따라서 성서의 올바른 해석은 참된 기독교 신앙과 규율이 유지되어 온 곳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도 아리우스가 만일 교회의 성서해석에 충실했더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전통이란 사도들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교회를 성서에 대한 바른 해석으로 인도하고 지시하는 유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통은 교회가 기이한 성서 해석에 빠지지 않고 사도들의 역사적인 가르침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증해 주는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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