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교시 교부시대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P. 40-45.
3) 교부시대의 신학적 질문들(이어서)
4세기 콘스탄티누스가 회심한 후 로마황제가 되면서 신학적 논의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그의 황제기간(306-337) 동안 교회와 제국은 화해를 이루었고 321년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하였습니다. 이제 신학은 은밀한 자리에서 벗어나 로마제국 전역에서 공적인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점차 교리 논쟁들이 정치와 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제국 안에 하나로 통일된 교회를 원했기 때문에 교리적 차이점들을 해결하는 일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교부시대 후기는(310-451) 기독교 신학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절정기로 발전합니다. 교리적 합의를 이루는데 엄청난 논쟁과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교회는 불일치와 끊임없는 긴장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당한 합의를 이루고 공동의 신조들을 구체화하였습니다.
교부시대를 여전히 어렵게 여기는 이유를 다음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교부시대에 다루어졌던 문제들이 현대세계와는 잘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부시대의 논쟁들은 대부분 철학적 개념, 특별히 플라톤철학을 기초로 형성되어 철학적 배경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교부시대는 교리적 혼란기였기 때문에 다양한 교리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로 그 신학적 내용이 상반되는 부분 때문에 또한 쉽게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헬라어권의 동방교회는 철학을 바탕으로 신학에 접근하였고 라틴어권 서방교회는 대체로 철학이 신학에 끼어드는 것을 반대하고 성서 속에서 교리들을 탐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4) 교부시대의 주요 신학자들
순교자 유스티누스(100-165)
2세기에 이교도 세력에 맞서 기독교를 옹호하던 사상가들을 변증가라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변증가가 유스티누스입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로마에 정착하였고 기독교 교사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로고스의 씨앗’ 이론에서 하나님은 고전철학 속에 심어 놓은 진리의 실마리들을 통해,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최종 계시에 이르는 길을 예비하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이교의 위대한 사상가들에게서도 기독교 진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동방교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복음을 그리스 철학과 연결하려던 경향이 있습니다.
리옹의 이레나이우스(130-200)
이레나이우스도 로마에 정착하였으나 스미르나(서머나, 터키) 태생으로 보입니다. 178년 리옹의 주교가 되었고 죽을 때까지 20년간 그 직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영지주의 도전에 맞서 기독교 전통신앙을 열렬히 수호한 일로 유명합니다.
그의 ‘이단들을 반박함’이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구원 이해를 옹호하며 비기독교적인 해석들에 맞서 사도적 증언을 따르는 데 전통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160-225)
테르툴리아누스는 북아프리카의 도시 카르타고에서 태어나 이교도였으나 30대에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는 서방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라틴신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구약과 신약의 신은 서로 다르다는 시노페의 마르키온에 맞서서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옹호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삼위일체론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는 성서 밖의 자료들을 통해 신학을 세우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성서 충족성 원리를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을 얻고자 세속철학자(플라톤학파)들에 의지하는 것을 비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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