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신구약문지방넘기/ 오종윤 목사)
1. 특이한 예언서
예언서는 예언자들이 전한 말씀을 모아놓은 책, 즉 예언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수집해서 엮은 것이 예언서입니다. 예언서는 예언자들의 설교집이나 어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서만은 예외입니다. 요나서는 예언자에 대한 말씀보다는 요나의 행적을 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두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주신 사명이 잛게 기록되었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1:1-2)'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3:1)'만 기록되어 있고 요나 또한 니느웨에 가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단지 이 말만 전합니다.
그러나 요나의 행적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요나는 배를 타고 도망갑니다. 풍랑을 만나 바다 속에 던져져서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회개를 하고 니느웨로 가 말씀을 전하니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를 합니다. 그러자 기분이 몹시 상한 요나는 불평하며 초막을 짓고 낮잠을 잡니다. 그 후 박 넝쿨이 말라버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나서는 예언자의 말씀보다는 특이하게 예언자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 요나가 니느웨를 미워한 까닭은?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그 당시 앗수르는 강대국이었고, 주변 여러 나라들을 정복해서 굴복시켰습니다. 특히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나라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앗수르는 동족을 멸망시킨 원수의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떠올리면 어떤 분노가 솟구치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앗수르를 떠올리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런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니, 요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심판받아 멸망하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니느웨 백성을 향해 회개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니 요나는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요나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자화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누가,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누가 쉽게 순종을 했을까요?
3. 요나의 수준은 이스라엘의 수준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합니다. 다시스는 스페인입니다. 니느웨는 동쪽 끝이고 다시스는 서쪽 끝입니다. 요나는 동쪽으로 가라니까 반대방향인 서쪽으로 도망간 것입니다.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난리가 난 상황에 요나는 배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선장이 풍랑 속에서 잠자고 있는 요나를 책망합니다.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선지자가 책망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요나는 고백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배를 탔기 때문에 풍랑을 만난 것이니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요나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옹졸한 마음을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큰 물고기가 와서 요나를 삼킵니다. 요나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육지에 토해집니다. 물고기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4. 소떼의 금식기도
요나가 드디어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3:4)'
니느웨 성은 사흘 길이나 되는 큰 성읍인데 요나는 단 하루만 걸으며 하나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요나는 여전히 선포하기 싫은 태도를 보여줍니다. 분위기를 보면 하나님 말씀도 건성으로 전한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니느웨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3:7)'
소나 양이 뭘 안다고 그것들에게까지 금식을 하게 합니까? 그만큼 니느웨 성 전체가 철저히 회개했다는 증거였습니다.
5. 요나는 복음서
니느웨 성에 일어난 회개의 역사를 보고 요나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기분이 상해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합니다. 요나는 원수 니느웨 백성들이 멸망당하기를 바랐는데 자신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으니 속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4:4:)'
요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성읍 동쪽에 가서 초막을 지어놓고 니느웨 성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때 박 넝쿨 하나가 자라더니 요나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벌레 한 마리가 갉아먹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들고 그늘도 사라집니다. 하필 뜨거운 동풍까지 불어옵니다. 또 다시 요나는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요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나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12만명이요, 짐승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는 여기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요나의 답변이 없습니다.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무섭고 죄에 대하여 무자비하리만큼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도망가는 요나를 직접 징벌하지 않으시고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강제나 억압보다 설득하고 타이르는 방법을 택하십니다. 요나서의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과 은혜의 모습에서 일치합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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