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신구약문지방넘기/오종윤목사)
1. 먼저 생각해보기
1)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분개한 까닭은?
2) 바울은 율법을 무엇을 비유하나요?
3) 갈라디아서를 '자유의 대헌장'으로 부르는 이유는?
4)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는?
2. 내용 들여다보기
1) 갈라디아 지역에 무슨 일이?
갈라디아서는 한 지역의 여러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은 사도 바울이 상당히 공을 들여서 전도한 지역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중병이 걸려 생사를 오고갈 정도로 쇠약했지만 죽을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한 갈라디아 지역 사람들은 큰 받동을 받았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렸고 열심을 다해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음 아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저버리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바울은 몹시 분개했습니다. 바울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 갈라디아 지역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2) 흥분한 바울, 저주를 선포하다.
사람이 흥분하면 말이 빠르고 호흡이 거칠고 목소리가 커지고 극단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편지에 감사의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바울 서신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 공식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그 공식이 깨집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상황이 다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사 대신 저주의 말이 두번씩이나 쏟아집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9)
저주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두번씩이나 사용한 것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격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 갈라디아서의 논쟁: 율법이냐 믿음이냐
갈라디아서에서의 논쟁은 교회 역사상 가장 불꽃 튀는 대논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율법이냐 믿음이냐의 논쟁은 기독교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논쟁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논쟁에 있어서 만큼은 양보나 타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극단적이고 초강경한 자세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율법이냐 믿음이냐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율법으로 구원받느냐 믿음으로 구원받느냐입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유대교의 근간을 흔드는 주장입니다. 유대교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쳐왔습니다. 율법은 유대교의 핵심입니다. 특히 할례는 율법 중의 가장 중요한 규례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율법을 뽑아 버리고 그 자리에 믿음을 심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대답은 '예수님을 믿으로써'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세례문답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진리가 되기까지에는 사도 바울의 공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써 구원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확고부동한 진리였습니다.
4) 의인론
이러한 유대교의 교리에 반기를 들고 사도 바울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핵폭탄급 주장이었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이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자신이 전도하고 개척한 이방인의 교회에 이 진리를 전했습니다. 이것을 <의인론>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구원받는다는 말을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 혹은 하나님에게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표현을 합니다. 한자로 쓰면 의로울 의에 인정할 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그 희생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의인론이고 로마서의 주제도 의인론입니다. 두 편지는 쌍둥이와도 같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 썼고, 로마서는 차분한 상태에서 썼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선교 중 다급하게 썼고, 로마서는 선교 활동을 모두 마치고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 있게 썼습니다. 그러나 두 서신서 모두,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형제 서신서입니다.
5)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갈라디아 지역 교회에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주장하며 갈라디아 교인들을 부추겼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라고 표현합니다.(갈2:4) 이들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주장에 동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떠난 다음 몰래 교회에 침투하여 바울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거짓 형제들의(율법주의자들) 주장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으려면 먼저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하고 그 다음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바울은 이방인들은 율법과 할례와 상관없이 바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영향을 받았는가?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어설프게 배워 엉뚱한 것을 가르친다고 주장하지만, 바울은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배우거나 영향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첫째,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 예루살렘에 간 적이 없고 아라비아와 다메섹에 머물렀습니다. 3년 뒤 예루살렘에 간적이 있지만 보름정도 머물렀기에 영향을 받을 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둘째, 14년 뒤 바울은 고익적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사도들을 만났습니다. 예루살렘 회의 때는 사도들이 바울을 자기들과 동등한 사도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셋째, 바울은 베드로에 관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 신자들과 식사를 할 때,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오니까 슬그머니 사라져버렸습니다. 바나바도 덩달아 나갔습니다. 이방인 신자들과 식사했다고 공격당할까봐 그랬겠지만 교회 지도자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베드로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새파란 후배가 대선배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다는 것은 대단한 담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베드로를 공개비판할 바울이 사도들에게 배웠다,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일 뿐이었습니다.)
6) 율법은 초등교사
바울은 율법과 믿음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후견인과 청지기의 비유입니다.(갈4:7)
상속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후견인이 그의 재산을 관리하다가 성년이 되면 그 상속자에게 재산을 양도합니다. 후견인은 율법이고 성년이 된 상속자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율법은 그리스도에게 구원의 권리를 양도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다음은 초등교사의 비유입니다.(갈3:24-25)
초등교사는 헬라어로 파이다고고스, 노예 교사를 말합니다. 로마시대에는 노예 중에서 지혜가 있는 노예에게 주인의 어린 아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겼습니다. 학교 가기 전에 아주 기초적인 글쓰기, 덧셈뺄셈 등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노예교사는 자신의 임무는 끝나고 정식 교사에게 아이를 넘겨주어야 합니다. 노예교사가 율법이라면 정식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율법은 모든 권한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겨주어야합니다. 바울의 설득력있는 탁월한 비유에 감탄하게 됩니다.
여전히 율법을 구원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인을 율법의 종으로 만들려는 처사입니다. 바울은 율법의 종노릇을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라고 권합니다. 이 때문에 갈라디아서를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7) 성령의 열매
이제는 실천사항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자녀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교리와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천과 행함도 중요합니다. 바울의 편지는 항상 실천사항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삶의 지침을 설명합니다.
(갈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이라.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8) 예수님의 흔적, 스티그마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이 말하는 예수님의 흔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몸에 입은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이 내려친 돌에 머리를 맞아서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내다 버렸습니다. 그 때 입은 상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 말씀 묵상
1) 여러분은 복음을 확신합니까? 그 확신은 바른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은 혹시 헛된 가르침이나 미신적인 생각에 얽매인 적은 없었습니까?
3)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묵상하고 여러분이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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