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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신구약문지방넘기)
박준원 2020-07-23 추천 1 댓글 1 조회 224

여호수아 (신구약 문지방넘기)

 

<역사서 서론>

1. 신명기 역사서 우리는 왜 멸망했는가?

구약에는 두 가지 역사서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에 이르는 신명기(사가) 역사서이고,

다른 하나는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에 이르는 역대기(사가) 역사서입니다.

신명기 역사는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한 후 왕국을 건설하고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기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들이 다스리는 사사시대(BC 1400~), 다윗과 솔로몬 왕이 다스리던 통일왕국시대(BC 1050~930), 남북으로 갈라진 분열왕국시대(BC 930~722/586)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1000년의 역사)

신명기의 마지막은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백성이 망했을까요? 왜 하나님의 성전이 이방인의 손에 무너졌을까요? 신명기 역사는 이러한 질문을 바닥에 깔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망한 것이라고 신명기 역사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신명기를 공부할 때 우리는 복과 저주의 도식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역사는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이스라엘 역사를 엮어나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신명기 역사를 전기 예언서라고 불렀습니다. 예언자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고 끊임없이 경고하는 즉, 예언자의 관점에서 해석한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판적 역사관, 날카롭다!)

2. 역대기 역사서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

신명기 역사는 나라가 망해서 포로로 끌려갔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역대기 역사는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를 포로귀환기라고 합니다. 이 시대는 모든 것을 새로 건설하고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신앙도 다시 회복하고 성전도 다시 짓고, 제사도 다시 드리고, 율법도 다시 배우고, 이렇게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때입니다. 이때에는 어떤 역사가 필요했을까요?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역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역대기 역사입니다. (소망의 역사관, 부드럽다!)

 

<여호수아>

1. 여호수아의 과제 땅의 정복과 분배

여호수아는 모세오경과 그 성격이 다른 책입니다. 모세오경은(창출레민신) 사건과 율법이 결합되어 있어 토라, 율법서라고 부르지만, 여호수아서는 율법 없이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에 역사서로 분류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모세를 잘 보좌했습니다. 시내산에서 기도할 때에도 여호수아만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서로 협력이 잘 되는 동역자였지만 성격은 전혀 달랐습니다. 모세가 지혜가 출중하여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신앙의 기반을 다져놓았다면, 여호수아는 가르치는 일보다 싸움에 능하여 주로 전쟁을 이끌었습니다. 모세가 문관으로서 지의 덕목을 갖추었다면 여호수아는 무관으로서 용의 덕목을 갖추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두렵고 불안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모세를 지켜 준 것처럼 너를 지켜주리라. 말씀하시면서 가능한 한 모든 격려를 쏟아 부어주십니다.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전에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납니다. 군대장관은 여호수아에게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발을 벗어라 명령을 내립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일은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인 여호수아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하는 일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여호수아에게 온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주제는 땅의 정복과 분배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이스라엘 열두지파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이 기본적인 줄거리입니다.

문제는 가나안 땅에는 이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임자 있는 땅이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불가피하게 가나안 원주민들과 전쟁을 치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수많은 전쟁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 가나안의 점령 여리고성과 아이성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세밀한 준비를 합니다.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두루 살펴보고 민심의 동향을 파악합니다. 정탐꾼들이 여리고 성에 사는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임무를 마칩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넙니다. 십계명 동판이 들어 있는 법궤를 든 제사장들이 앞장을 섭니다. 제사장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넘실거리던 요단강물이 멈추어 버립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기적을 또다시 목격하게 됩니다. 요단강을 건넌 백성들은 강 한가운데서 가져온 12개의 돌을 가지고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 후에 백성들은 광야에서 행하지 못했던 할례를 집단적으로 받습니다. 할례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를 몸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첫 번째 관문은 여리고성입니다.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중성벽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성벽과 성벽에 틈이 생긴 공간에 집을 살았다고 하고, 기생 라합의 집도 그런 집이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너무 견고해 보이지만 여리고 성을 피해서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 전쟁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방식은 아주 특이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백성들을 모아서 매일 여리고 성을 한 바퀴 돌게 합니다. 제사장이 법궤를 들고 앞장서서 가고, 그 뒤를 백성들이 따라갑니다. 백성들은 침묵하고 제사장만 계속 나팔을 붑니다. 그렇게 6일 동안 성을 돈 다음 7일째, 성을 일곱바퀴 돌고 나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백성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릅니다. 그 순간 철벽같던 여리고 성이 와르르 허물어져 버립니다.

여리고 성은 쉽게 점령했는데 문제는 아이성에서 발생합니다. 작은 성으로 마음만 먹으로 쉽게 함락할 수 있는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참패를 당합니다. 아간이 전리품을 몰래 숨겨놓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간 한 사람이 죄를 지었지만 그 징벌은 이스라엘 공동체 모두가 당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개인과 공동체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의 죄이고 한 사람의 불순종이 공동체 전체의 불순종으로 간주합니다. 결국 아간을 심판한 후에야 겨우 아이성을 정복합니다.

 

3.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도 되는가?

여호수아서를 읽다보면, 시험에 드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전쟁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여리고와 아이성을 점령한 후에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칼로 쳐 죽여도 되는가? 노인, 어린이까지, 소나 양도 모두 죽이는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진멸하여 희생제물로 바칩니다. 히브리어로 이것을 헤렘이라고 합니다. 이런 전쟁을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헤렘을 지시하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무자비한 살육과 전쟁을 행하라고 요청하시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답은 없습니다. 전쟁은 어떤 의미로든 정당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전쟁을 합리화시키려고 논리적으로 접근하지만 전쟁은 선한 것이 아님에는 분명합니다.

구약은 완벽한 책이 아닙니다. 구약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 수정해서 율법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구약을 완전하다는 전제하에 전쟁을 합리화하려고 하면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전쟁의 실제적 의미 대신 전쟁의 영적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더 올바른 태도일 수 있습니다. 그 전쟁 속에 담겨 있는 신앙적, 영적 의미만은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오종윤목사님 의견)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전쟁은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족의 대결은 여호와 하나님과 가나안 이방신과의 대결이고 하나님 유일 신앙과 우상 숭배와의 대결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원주민을 전멸하는 것은 이방인의 우상 숭배와 그릇된 신앙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점은 세상 사람들이 즐겨하는 미신과 우상숭배, 세상적인 가치관과 잘못된 습관(악습)을 털끝만치도 용납하지 말고 말끔히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 헤렘의 영적인 의미입니다.

4. 땅을 분배 하다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점령한 후에는 승승장구하며 가나안 땅을 휩쓸어 갑니다. 기브온은 아예 투항을 하여 이스라엘 종살이를 자청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에 일부만 제외하고 대부분 땅을 차지하는데 성공을 합니다. 이제 12지파에게 나누어 주는 일만 남았습니다.

13장부터는 땅 분배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가장 지루한 부분 세 곳이 있습니다. 족보이야기, 사람명단이야기, 땅분배이야기입니다. 지루하지만 모두 중요한 내용이기에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는 각 지파별로 땅의 경계선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이고, 그 안에 어떤 성읍이 들어가는가 하는 세밀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12지파가 어느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면 됩니다.

땅의 지명들이 우리는 지루하지만, 땅을 분배받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생사가 달린 중요한 문제이기에 설레고 심장이 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되어 읽으면 좀 더 실감이 나게 될 것입니다.

땅을 나눌 때 몇 가지 일들이 발생합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가 여호수아에게 땅을 더 달라고 요구합니다. 유난히 덩치가 큰 요셉지파였기에 큰 땅을 주었음에도 모자란다고 더 달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산간지방을 정복해서 그 땅을 차지하가로 권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불만을 품고 투덜댑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땅 분배를 마쳤습니다.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었을 것입니다.

(21:45) 주님께서 이스라엘 사람에게 약속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어긋남이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

창세기부터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땅을 여호수아서에 이르러 비로소 성취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모세오경 대신 여호수아서를 포함해서 모세육경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5.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3-24장에는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백발이 성성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세겜에 모아놓고 마지막 힘을 다해 고별 설교를 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모압평지에서 다음세대를 걱정하며 고별설교를 했듯이 여호수아도 처음이자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전쟁 때문에 백성들에게 설교하고 신앙교육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 여호수아가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교의 핵심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라는 당부입니다.

 

(24:14-15)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당신들은 이제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섬기십시오.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당신들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의 마음은 뭉클했을 것입니다. 백성들도 여호수아처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겠노라 다짐하고 그 증거로 커다란 돌을 하나 세워놓습니다. 세겜에서 불같은 설교를 마치고 여호수아는 눈을 감습니다.

 

여호수아의 일생은 한결같습니다. 일관성, 초지일관, 처음처럼이라는 말로 그의 생애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참모로부터 가나안 정복전쟁과 땅 분배에 이르는 대장정의 길을 변함없이 하나님만 섬겨왔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특별한 실수나 허물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이었고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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