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 로마서를 들어가기 전에
1) 의인론이란 무엇입니까? 2) 기독교인이 겪는 갈등은 무엇입니까?
3) 의인론과 성화론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4) 기독교인에게 서술형과 명령형의 의미는?
2. 내용해설
1) 로마서는 바울 편지의 종합편입니다.
- 처음 순서인 까닭은? 로마서는 바울의 가르침을 총망라한 바울 서신의 대표적인 편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서가 처음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 언제? 왜?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이 다 끝날 무렵에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썼습니다. 기나긴 전도 여행을 마친 후 잠깐 쉬는 틈에 기록하였고 로마 교회의 도움을 받아서 땅 끝까지 전도하기 위해서 로마서를 섰습니다.
바울은 세 번의 전도여행을 통해 갈라디아, 헬라, 소아시아 지역을 다 전도했습니다. 이제는 저 멀리 지중해 끝에 있는 스페인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곳이 땅 끝입니다. 바울은 이 땅 끝을 전도하기 위해 로마교회를 발판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 누가?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오순절 날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했고 사도들은 각 나라 말로 설교를 했습니다. 이 때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각기 자기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로마에서 온 사람들도 로마에 돌아가 전도를 해서 교회를 세운 것이 로마교회입니다. 자생적으로 세워진 로마교회에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잘못된 신앙을 갖게 될 것을 염려하여 바울은 기본적인 신앙교육을 로마 교인들에게 전해주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일치된 교리 가운데 로마교회의 지지와 후원을 받아 땅끝 전도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2) 로마서 핵심 : 믿음으로 의롭게 됨
로마서는 1-11장은 교리 부분으로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12-16장은 실천 부분으로 구원받은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룹니다. 로마서는 교리와 윤리, 이론과 실천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먼저 앞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의 핵심용어인 ’의롭다 하심음 얻는다‘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들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의인론(義認論)이라고 합니다. 의로운 사람인 의인(義人)의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의인(義認)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질문)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은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이것은 이단인 구원파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죄인이면 천국에 못간다고 반문합니다. 의인이라고 대답하면 의인이 된 증거, 몇 날 몇 시에 구원을 받았느냐고 반문합니다. 궁지에 몰리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루터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
우리는 본성상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과 구원받는다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3) 로마서의 주제: 병주고 약주고
로마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로마서를 묵상하다가 <병과 약>이라는 주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병원에 가면 두 가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게 되고 그 다음에는 어떤 약을 써야 낫는지를 알게 됩니다.
로마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병들었다고 진단합니다. 병도 단순한 병이 아니라 죽을 병입니다. 병은 죄를 상징합니다. 심각한 병에 걸리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죄를 지으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바울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분합니다. 유대인도 병들었고 이방인도 병들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죽을병이 들었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방인은 우리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를 댈수도 있지만, 바울은 양심의 증거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법을 양심에 새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우리 안에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양심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마음에 새겨 놓은 법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해 결국 구원 얻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릴 거시 없이 천하의 모든 사람이 다 죽을병에 걸려서 신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4) 병을 치료할 약! 율법이 아니라 믿음
우리 몸에 중병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약이 필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약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약과 바울이 생각하는 약이 다릅니다.
(롬3:20-2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여기에 율법과 믿음이 나옵니다. 이것이 두 가지 약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 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못 지켰습니다. 구약성경이 그 증거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까지 끝임 없이 반복해서 범죄 합니다.
율법학자였던 바울은 결국 율법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율법 대신 바울은 믿음이라는 약을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7장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법을 설명하기 위해 재혼한 여인의 비유를 듭니다.
결혼한 여인이 남편이 살아 있을 동안 다른 남자와 사귈 수가 없습니다. 만약 남편이 죽으면 가능해집니다. 재혼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남편은 율법을 의미하고 전남편이 죽었다는 것은 율법이 그 효력을 잃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율법이 죽었기 때문에 새로운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함 셈입니다.
5) 성령의 법을 따르는 생활
질문) 예수님을 믿고 나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나요?
여전히 과거의 습관과 성품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람들이 완전히 변화한다면 세상은 놀라운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돌아서면 은혜가 다 쏟아집니다. 부부싸움 하면서, 일하면서, 운전하면서... 우리가 받았던 놀라운 은혜들은 금방 물새듯 사라져버립니다.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7:19)”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고 싶지만 행동은 악으로 치닫는 모순을 발견합니다. 바울은 이 치열한 내적 싸움을 겪으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하고 탄식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무수한 탄식을 쏟아냅니다.
어떻게 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길은 한 가지 뿐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기독교인의 삶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법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법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생명과 평안을 얻게 됩니다.
6) 병 고친 이후의 삶: 성화론
로마서 후반부 12장부터는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죽을병에 걸렸지만 명약을 구해서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렇다면 병을 치료한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전처럼 욕망에 따라 흥청망청 살아야 할까요?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난 사람은 살아가는 태도가 이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생의 2막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선 살아있는 사실에 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음식도 조심하고 생활습관도 고치고 조심스럽게 살아갑니다.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로마서 후반부에서는 이 부분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에는 의인의 단계와 성화의 단계가 있습니다.
의인의 단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고 성화의 단계는 예수님을 믿은 뒤에 예수님의 거룩함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인의 단계는 순간이지만 성화의 단계는 평생입니다.
운전면허를 땄다고 바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수 없습니다.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30년 무사고 경력을 가지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말라! 운전 경력!
사고의 위험이 늘 있기 때문에 방심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운전면허를 땄다는 것은 의인의 단계이고 운전을 한다는 것은 성화의 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때문에 의인의 단계 없이 성화의 단계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7) 서술에서 명령으로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 말씀은 명령입니다. 로마서 앞부분은 서술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 값없이 구원해 주셨다. 죄에서 건져 주셨다. 모두 서술형으로 되어 있지만, 후반부는 이러저러하게 살아라! 명령형으로 바뀝니다. 우리의 신앙은 서술형에서 명령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갑 없이 구원받았다면 구원의 감격 속에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8) 마지막 인사
로마서의 마지막 16장은 긴 안부 인사입니다. 한사람씩 이름을 불러가면서 인사를 합니다. 이 안부 인사에는 성도의 친교와 사귐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안부 인사를 통해 바울의 뜨거운 사랑과 친교의 애틋함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코이노니아(사귐)이라고 불렀습니다.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는 이러한 성도의 교제의 맛을 느끼고 누리가 어렵습니다. 또한 안부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은 바울의 선한 동역자들입니다.
바울은 결코 혼자 힘으로 선교사역을 감당 할 수 없었습니다. 물질로 돕고 기도로 돕고 헌신으로 돕고 여러 모양으로 바울을 도와준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수고와 땀을 잊지 않고 기도할 때마다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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