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9 오후7:30 한교회 수요기도회 : 팀 켈러의 기도 공부
5부 이렇게 기도하라
1장 감사와 찬양이 먼저다 / 2장 고백과 회개는 필수다
3장 하나님 뜻대로 간구하다 / 4장 매일기도하다
1. 감사와 찬양이 먼저다: 기도하려면 하나님을 먼저 충분히 생각하라
기도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먼저 ( )를 향한 기도입니다. 주님께 초점을 맞춘 찬양과 감사가 여기에 속합니다. ‘경외하는 기도’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다음은 ( )을 향한 기도입니다. 자기 성찰과 고백으로 죄를 더욱 깊이 깨달은 후에 한층 절절하게 은혜를 체험하며 사랑을 확신하는 과정입니다. ‘친밀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 )을 향한 기도입니다. 자신과 세상에 사는 다른 이들의 필요에 집중하며 간구하고 중보하는 기도로 여기에는 끈기가 필요하며 씨름과 갈등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기도의 첫 단추>
주기도문에는 ( )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찬양은 기도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흠을 깨닫고 고백하게 됩니다. 또한 주님의 크고 위대하심은 간구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주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 그분께 나아가 온갖 필요를 다 아뢰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우리의 기도를 바로잡아 줍니다.
설교시간에 우리가 기도할 때 간구보다 찬양을 드려야 함을 선포한 2주 후에 어떤 여성도님께서 간증을 들려주었습니다. ‘예전에는 다짜고짜 기도제목들부터 꺼내 놓았는데, 골칫거리들을 아뢸수록 마음은 더욱 불안해지고 무거워졌습니다. 지금은 먼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고 지혜로운 분이신지, 여태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기도에 응답하셨는지 깊이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주님 손에 맡깁니다. 그랬더니 짐을 짊어지는 게 아니라 벗어 버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간증을 듣고 저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찬양과 경배는 하나님과 올바르게 교통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며 기도를 이끌어 내는 자극제이기도합니다.
<찬양의 건강학>
찬양이 중요한 이유는 해로운 부분들을 바로잡고 영적으로 건강한 내면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루이스의 [시편사색]이라는 책에서 찬양의 중요성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찬양을 요구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스스로 거룩하시다 면서 끊임없이 그걸 확인받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사람은 손가락질 당하기 십상이다.’ 그는 그 이유를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명작을 볼 때, 어떤 풍경을 볼 때, ‘멋지다!’라는 감탄에는 어떤 뜻이 들어 있는 것일까? 그러한 대상들을 존중하고 감탄하는 행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감탄을 잃어버린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을 아닐까?’
루이스는 분명하게 그 의미를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답고 훌륭한 것들보다 훨씬 더 위대한 분이라면 주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는 그저 깨어 있다는 현실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루이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찬양의 놀라운 점은 나로부터 훌쩍 벗어나게 한다는 점’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대단한 것을 보면, 거의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알리고 칭찬해서 인정받고 싶은 법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인간은 즐거워하는 대상에 찬사를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찬송은 기쁨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의례적인 인사체레가 아닌, 기쁨은 표현으로 완성된다. (표현이 어설퍼도 상관없다.)”
그는 또한 찬양하면 삶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겸손하며 균형잡힌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찬양을 하는 반면, 매사에 짜증을 내고 불평불만을 일삼는 이들은 좀처럼 찬양할 줄 모른다. 훌륭한 비평가들은 결함 속에서도 칭찬거리를 찾지만, 수준 낮은 비평가들은 위대한 작품을 형편없이 평가한다.”
<사랑을 쏟을 대상을 재설정하라>
찬양과 경배가 중요하며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찬양/고백/간구 세 가지 종류의 기도 가운데 찬양만이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인 사랑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준다고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이란 모두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무언가에 집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집착을 사랑으로 인식하고 경험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죄의 영향을 받아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랑은 엉뚱한 곳을 향하게 됩니다. 사랑하지 말아야 할 걸 사랑하거나 사랑해야 할 걸 사랑하지 못하거나 덜 사랑해야 할 걸 더 사랑한다든지, 더 사랑해야 할 걸 덜 사랑한다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자녀보다 출세를 더 사랑하면 가족 관계는 무너져 버립니다. 경영자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사람들을 착취하게 됩니다.
인간이 마주한 이 비참한 현실은 하나님을 가장 높은 자리에 두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위해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마음에 안식이 깃들 수 없습니다.”(고백록) 세상에서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기대의 무게가 상대를 으스러트리고 마침내는 자신까지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어디를 바라보든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다면, 슬픔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 밖에 있는 것들과 그게 닿게 될 바깥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처럼 보일지라도 반드시 그리 되게 마련이다.”(고백록)
<감사의 중요성>
찬양과 감사는 어떻게 다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감사는 찬양의 한 갈래로 봐야 합니다. 찬양이 하나님의 성품을 경배하는 일이라면, 감사는 주님이 행하신 일을 찬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135편은 주님을 찬송하라고 명령하고 136편은 그분께 감사하라고 외치지만, 두 노래의 메시지는 거의 겹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가 중요한 이유는, 영적으로 아쉬울 게 없으며 제 힘으로 뭐든지 해나갈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사는 생활태도야말로 우주적인 배은망덕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장 잘 알고, 평생 바른 길을 가며 위험을 피하거나 이겨 낼 힘을 가졌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망상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길 싫어합니다.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부정합니다. 그랬다가는 주님께 매여서 뜻대로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음에 도사리는 죄가 이처럼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쥐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데 집착하게 만드는 탓에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의 깊이와 폭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대목에서도 좀처럼 감사하지 못합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강탈하는 건 물론이고 제 삶에서 전능하신 주께 끊임없이 감사할 기쁨과 위안을 박탈해 버립니다.
감사하고 찬송하는 데 서툴지라도 찬양이 기도의 첫 단추라는 점은 변함없이 중요합니다.
루이스의 [개인기도]에서 찬양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모든 기쁨을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광의 단초로 보고 찬양의 통로로 삼으려 노력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베풀어 주시다니, 하나님은 얼마나 선한 분이신가?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이를 지으시고 내게 주셨을까?를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또한 가장 어려울 때 경배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결국 행복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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