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관 시인의 신앙시 고찰 (박준원 목사, 한신대 대학원 Th.M 조직신학)

처음으로 이선관 시인에 대한 이름을 듣게 된 사연이 한교회 십자가 때문입니다. 제가 한교회에 2014년 8월에 부임하고 나서 한교회 신석규 장로님께서 ‘강대상에 있는 회색 나무십자가는 이선관 시인이 만들어 주셨습니다.’라고 십자가에 대한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선관 시인에게 장애가 있다는 점과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선관 시인이 만들어준 나무십자가에는 휴전선 철조망으로 만든 가시 면류관이 중앙에 걸려 있습니다.(황무현 마루대표님이 헌물해 주심) 통일을 늘 꿈꾸었던 시인이기에 그 철조망 가시면류관은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한교회 전점석 집사님께서 제게 이번 심포지엄에서 이선관 시인의 신앙시에 대한 발표를 권유해 주셨을 때 망설였지만, 한교회 나무십자가를 만들어 주신 분이 어떤 분이신가 궁금하기도 하고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그것도 좋은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발표를 준비하면서 이선관 시인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동안 행복했었고 그분의 삶과 사상이 제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이선관 시전집에 나와 있는 전체 시가 약 574편이고 성경적 내용과 신앙적 색채를 가지고 있는 제 나름의 기준으로 신앙시로 분류한 시가 29편입니다. 퍼센트로 보면, 약 5%입니다. 이선관 시인의 통일시, 환경시 등에 비하면 많은 편수는 아니지만, 29편의 신앙시는 그분의 신앙적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분량으로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29편 중 제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신앙시가 한 편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62세에 출간한 시집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에 수록된 ‘사랑은’이라는 시입니다.
사랑은
당신과 나 둘이 아닌
그렇습니다
맞네요
하나입니다
수많은 영성가들이 꿈꾸는 세상은 신과의 합일입니다. (특별히 정교회에서 추구하는 신앙을 神化Toesis라고 합니다.) 구분이 없어지고 경계가 없어지는 카이로스(만남의 시간, 충돌)에 대한 경험입니다. 불교적 언어로 말한다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길입니다.
노년에(?) 이선관 시인은 이러한 세계를 경험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신과 나 둘이 아닌/ 그렇습니다/ 맞네요/ 하나입니다’
제가 단순히 이 시 하나만 단편적으로 보았다면 그냥 평범한 시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선관 시인의 히스토리를 알고 보았을 때, 이 시가 평범한 시가 아닌 특별한 시로 다가왔습니다.
같은 시집에 수록된 ‘정금교회’라는 시에 보면, ‘나는 한 때 열심히 통신 신학원을 다녀 졸업을 한 적도 있었지’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집에서 신앙시들은 1~3편정도 수록되어 있지만 이 마지막 시집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에서는 7편이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선관 시인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그의 삶과 시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선관 시인이 36세에 출간한 <독수대>와 42세에 출간한 <보통시민>의 서두를 여는 글을 성경구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독수대> 서두
진리(인간양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인간회복)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인간선언)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요한복음 8:32
<보통시민> 서두
내가 너희들에게(인간) 이르노니
진리를 위해 아직 피흘리는데까지 이르르지 않았노라.
- 히브리서 12:4
(공동번역) 여러분은 죄와 맞서 싸우면서도 아직까지 피를 흘린 일은 없습니다.
이선관 시인이 추구한 진리는 성경적 진리와 시인 자신이 추구한 진리 사이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이 두 성경 구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성경말씀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자신의 고민을 담아 새롭게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인간양심, 인간회복, 인간선언 그리고 자기희생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신앙시가 없는 시집이 있습니다. 56세에 출간한 <지구촌에 주인은 없다>입니다.
그 시집 말미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책(나락 한 알 속의 우주/장일순) 십구 페이지를 읽고 또 읽고 또다시 읽어 보고서야 요즘 내가 교회 가기를 주저하는 이유를 미련스럽게 이제야 알았던 것이다.’
그에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해답을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책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새벽 제145호에 실린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예수 탄생’(장일순)의 한 대목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기독교의 모순을 발견합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 가기를 주저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선관 시인이 반복해서 읽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1장27-28절 ’하느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느님께서는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라는 말씀은 자연이 단순히 피조물로서 하느님이 내재한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연은 소위 탈신성화되었고 인간의 자의대로 이용되고, 자연과학의 추구대상이 되어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기는 하였으나 오늘날의 생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위기상황의 원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 ... 특히 근대 서양철학과 사상들은 철두철미하게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가져왔습니다. ... ... 근대 서양사상은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생태학적 위기와 기계와 기술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상실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인간은 자기집착에 빠져 자여이 인간과 한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위기에 놓였습니다. ... 자멸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 말씀이 하느님과 자연, 인간과 자연을 철저하게 이분법으로 분리시킴으로써(탈신성화)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생태학적 위기가 찾아오고 결국 인간의 자기파멸을 초래하게 되었음을 견지하게 됩니다. 교회 가기를 주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이 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신앙을 포기하고 주저 않지 않고 ‘사랑은’이라는 시를 통해 그가 분리가 아닌 합일에 이르는 길을 다시 발견하고 그 길을 올곧게 걸어가는 가운데 놀라운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마지막 시집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 7편의 신앙시와 유고시집 <나무들은 말한다> 6편의 신앙시는 이선관 시인의 신앙적 자유함이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적 자유함은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됩니다. 거리낌이 없는 것입니다.
나무들은 말한다
해마다 연말 가까이 한 달 전부터
예수가 탄생했다는 성탄절을 맞아
밤마다 나무에 대낮처럼 불이 켜진다
나무들은 말한다
하느님이시여
당신 아들 탄생도 좋지만
제발 잠 좀 자게 해주십시오
얼마나 놀라운 상상력입니까? 성탄절 즈음이 되면 온갖 나무에 전구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 광경을 본 시인은 나무와 하나가 되어 한밤중 내내 밝은 전구 때문에, 당신의 아들 예수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나무를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나무와 하나가 되고 그가 꿈꾸었던 신앙의 완성입니다. 둘이 아닌 하나로 완성됩니다.
신앙시를 구분할 때, 1차적으로는 제목으로 분류를 해보고 하나씩 읽어가면서 2차적으로는 내용으로 분류하면서 신앙시를 모아 보았습니다. 유고 시집에서 제목이 도법스님이 있습니다. 당연히 불교적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신앙시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이 시에는 날카로운 현대교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도법스님
책 제목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였어
내용을 요약하면
지금 여기의 진실을 외면한 채
허상과 욕망을 쫓고 있지 않는가
한국 불교와 승단을 비판한 책 내용이었어
나 또한 말하고 싶으니
...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한 번 더 죽여라는
책을 내고 싶으이
안으로는 성장제일주의 대형화한 경쟁
이웃사랑 결핍 대형교회의 목사직 세습 기복신앙
제왕적 목사 중시의 불투명한 재정 운용
밖으로는 기독교의 고향인 이스라엘이
핵을 이삼십여 개 보유하고 있는 데도
제대로 항의 한번 안 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지속불가능한 보수적인 신앙인이여
이 땅의 예수를 믿는 기독교 신자들이여
유고시집의 또 다른 시입니다.
설마 하느님은 아니겠지
부자를 부자로 자꾸자꾸 만들어 주고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로 자꾸자꾸 만들어주는
전지전능하신 그분이
설마 하느님은 아니겠지
한국의 문화신학자인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는 새길교회 창립18주년 정기포럼 ‘한국기독교, 어디로 갈 것인가’(2005)에서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본주의 세계관의 노예화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량주의적 정신이 한국교회를 질식시키고 있으며, 물량주의에 오염되었음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서문자주의에 치우친 보수적 경향이 교리적 독선과 종교지도자들이 종교를 빙자해 명예욕과 야욕을 채워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타종교를 배타적으로 보기보다는 우리 조상들이 믿어왔던 고난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전통종교와의 대화와 화해가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김경재 교수는 생명평화마당 포럼 ‘생명과 평화’(2011)에서 한국교회의 1차적 사명은 교세확장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 공동체 실현이며 십자군적 영성이 아니라 십자가의 영성이며, 개교회 중심의 성장 운동을 중단하고 모든 교회가 월 헌금 총액의 10%를 생명과 평화 운동에 사용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신학자가 견지하는 한국교회의 문제를 이선관 시인은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관의 노예화(성장제일주의, 제왕적 목사, 부자를 부자로), 지나친 보수화(지속불가능한 보수적인 신앙인이여)로 함몰된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김경재 교수는 호남신대에서 특별강연으로 했던 <한국교회의 영성이해, 그 성찰과 해석학적 조명>이라는 논문(2010)에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앞으로 지향해야할 네 가지 영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십자군의 영성에서 십자가의 영성으로, 감정/지식적 영성에서 감성/지혜적 영성으로, 이원론/배타적 영성에서 전일적/포괄적 영성으로, 인간중심적 영성에서 생태중심적 영성으로 전환시켜 가야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경재 교수의 네 가지 영성관에서 본다면, 이선관 시인의 영성은 이미 인간중심적 영성을 넘어 생태중심적 영성을 견지하고 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성경적 진리와 자신만의 진리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사랑했던 시인, 그리고 그 자연과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시인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인류의 위기가 다가오는 지금, 생태중심적 영성을 회복하는 일이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어야 할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겨 있는 이선관 시인의 시 한편이 우리를 생태중심적 영성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안내해 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들어줄 이선관 시인의 시 한편을 남겨 두고자 합니다.
아니다
누가 지구촌의 주인이
사람이라 하였는가
창조주는
제일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했다 하지 않았는가
* 신앙시 리스트(이선관 시전집 페이지)
<기형의 노래>
원죄이전(66)
에덴은 아직 멀었습니다(68)
무죄(82)
<인간선언>
기도(121)
<독수대>
요한복음8:32(165)
또 하나의 도그마(188)
욥기(216)
<보통시민>
히브리서12:4(221)
하나님을 한 번 만나고 와야겠습니다(258)
지나가는 사람들(274)
<살이 살과 닿는다는 것은>
아이들을 위하여(286)
삶은 신앙입니다(328)
산다는 것은(368)
<창동 허새비의 꿈>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이르기를(475)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
내 작은 기도 하나(591)
<배추흰나비를 보았습니다>
이현주목사(721)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
기도(755)
역시(756)
창조론(757)
사랑은(781)
우리는(786)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785)
정금교회(797)
<나무들은 말한다>
나무들은 말한다(824)
조물주의 섭리(830)
아니다(831)
도법스님(857)
예수가 거한 곳은(876)
설마 하느님은 아니겠지(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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