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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리스도 위격에 관한 교리(2)
박준원 2022-05-18 추천 1 댓글 0 조회 254

신학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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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의 교류> communicatio idiomatum

4세기 말에 교회 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속성의 교류 명제가 널리 인정되었다. 

(첫번째 명제)

1)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다.

2)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다.

이 두 언명이 동시에 참이라면,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두번째 명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았다.

따라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다. 

이런 식의 주장이 4세기 신학자의 정통성을 판별하는 수단으로까지 사용되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식의 논리가 어디까지 가능할까?

(세번째 명제)

예수는 십자가에 고난당하였다.

예수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였다. 


첫번째 두번째 명제는 교회 안에서 널리 인정되었지만, 세번째 명제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고난당할 수 없다는 자명한 원리 때문이었다. 

1)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하나님이 고난을 당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이라는 사실에 문제가 발생한다.

2) 네스토리우스: 당시 널리 사용하던 마리아의 칭호 테오토코스(하나님을 낳은 이), 이 말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네스토리우스는 보았다. 그는 마리아를 사람을 낳은 이(안트로포토코스), 그리스도를 낳은 이(크리스토토코스)로 부르지 않는가라는 주장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온당한 논점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후대의 신학에서 루터는 속성의 교류를 가장 철저하게 적용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렸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렸다.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루터가 현대 신학에 남겨준 유명한 유산 가운데 하나다. 달리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당하여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고난당하여 죽었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속성의 교류를 철저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돌프 폰 하르낙과 교부 그리스도론의 발전>

독일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자 아돌프 혼 하르낙은(1851-1930) 도그마(교의)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팔레스타인의 환경에 있던 원시 기도굑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헬레니즘 사고 양식과 담론 방식을 특징으로 삼은 역사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하르낙에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 자신이 바로 기독교이다. 이러한 근거는 역사성과 개인적 종교가정이다. 그는 헬레니즘 환경으로 복음이 이전함으로써 예수의 의미를 개념화하고 예수의 의미에 형이상학적 내용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르낙은 <교리사>에서 교리의 발전은 만성적인 퇴행성 질환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그는 구원론에서 사변적인 형이상학으로 변질된 일에서, 추상성으로 후퇴하는 그리스 철학의 성향이 작용하였음을 밝혀내었다. 

그는 이러한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 세가지 역사적 사실을 제시한다. 

1) 그리스도론은 나세렛 예수의 선포에 포함된 부분이 아니다. 예수 자신의 메시지에는 그리스도론이 없다. 즉 예수가 선포한 복음은 성부하고만 관계가 있지 성자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2) 기독교 사상사에서 그리스도론에 대한 관심은 구원론에 대한 관심 뒤에 온다.

3) 그리스도론에 대한 관심은 헬레니즘 문화(추상적 사변) 안에서 생겨났다.


하르낙의 이론은 교부시대 연구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가장 중요한 비판은 그가 헬레니즘의 본질을 너무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중세 그리스도론에서 성육신과 타락의 관계>

- 성육신의 동기에 대한 고전적 설명 요약

인간은 은총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으며 따라서 회복될 필요가 있다. 이 회복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고 십자가를 지는 구원 사역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성육신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신학자 오툉의 호노리우스(1106-1135 활동) 

성육신의 목적은 인간의 죄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성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성화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윣니이 필요한 것이요, 죄가 성육신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 베네딕트회 신학자 도이츠의 루페르트(1075-1129)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셨고 그 결과가 성육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성육신이란 인간의 죄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창조 사역의 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 이 논쟁에 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1225-1274) 판정 결과

그리스도의 오심은 타락의 결과라고 단정 지었으며, 다른 대안을 고려한다고 해서 얻을 것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였다. 

"성서를 두루 살펴보면, 성육신은 죄를 치유하기 위한 사역으로 정해진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성육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제한당하지 않기 때문에 죄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성육신하실 수가 있으셨다."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의 관계>

- 전통 신학에서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을 구분하여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이라는 별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논하지만, 점차 이런 식의 구분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은 두 영역의 밀접한 연관성이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이 어디서 왔는지 살펴보자. 

1)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

그는 물자체와 그 물체에 대한 인간의 지각을 구분하였다. 우리는 물체를 직접적으로 알 수 없고 그것을 지각하거나 그것의 영향을 파악하는 한에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칸트의 시각에서 볼 때, 예수의 정체성은 그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을 보고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위격은 그의 사역을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 알브레히트 벤야민 리츨의 <칭의와 화해에 대한 기독교 교리>에서 칸트 주장을 수용

어떤 사물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하에서만 그 본질과 속성을 파악하며, 또 그 사물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의 성질과 규모를 그 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을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리츨은 주장하였다. 

2) 아타나시우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구원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의 기능을 행할 수 있다면 그는 어떤 존재인가? 따라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은 두 가지 별개의 사유 영역이라기보다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판넨베르크(1928-)는 이 논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이 어떻게 밀접하게 연계되었는지 분명히 밝힌다.

"예수의 신성은 우리의 구속자이자 해방자로서의 그의 의미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멜란히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지는 그의 구원 행위를 보고 알 수 있다.) 이러한 결속은 현대 그리스도론의 확연한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신학에서 주장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격을 그의 구속 사역과 갈라서 생각하지 않는다. ㅅㅍㄹ라이어마허를 따라서 그 둘을 한 가지 일의 두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 이러한 논점의 중요성은 네트토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인성과 도덕적 모범 강조)과 펠라기우스의 구원론(인간 의지의 완전한 자유 강조)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 영국의 신학자 찰스 고어는 이 논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부적절한 그리스도의 인격 개념들은 인간 본성이 우너하는 바를 그릇 이해한 개념들과 한패가 되어 움직인다. 네스토리우스의 그리스도는 논리적으로 펠라기우스의 인간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네스토리우스의 그리스도는 펠라기우스의 인간에게 딱 어울리는 구세주이다."

- 우리가 예수를 어떤 인물로 이해하느냐는 우리가 타락한 인간 상황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 루돌프 불트만은 그리스도론을 단지 역사적인 한 인물로 존재했다는 사실로 축소하고는 케리그마를 그 역사적 인물에게서 끌어내고 또 덧붙일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 알로이스 비더만과 폴 틸리히는 그리스도 원리와 예수의 역사적 인격을 구분한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판넨베르크는 그리스도론을 예수 자신의 역사를 근거로 삼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구원론적인 사변에서 끌어내는 것이 아니냐는 비평을 하고 있다. 


<고대와 현대의 그리스도론 모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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