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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교부시대의 논쟁>
박준원 2022-02-09 추천 1 댓글 0 조회 285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11 그리스도론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교부시대의 논쟁> (p.660)


교부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교리에 관심이 쏠렸는데 주로 동방교회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씨름했던 과제는 그리스도론의 뼈대를 세워, 신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론의 모델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 과제는 복잡하고 매우 중요한 점을 고려햐야 그 발전 단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초기의 발전 : 순교자 유스티누스에서 오리게네스까지

그리스도론 형성의 초기에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말하는 점은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였으며 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문제로 다루었습니다. 신성과 인성, 즉 둘 사이의 차이점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초기에 등장한 두가지 견해는 이단적인 것으로 거부되었습니다. 

첫째, 유대 종파인 에비온 주의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평범한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를 유대적인 범주에서 예언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공격당했으며 얼마 안 있어 사라졌습니다. 

둘째, 가현설(Docetism)입니다. 그리스어 도케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완전한 신이며 그의 인간성은 겉모습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2세기에 발전하다가 다른 견해의 등장으로 소멸되었습니다. 다른 견해들 중 하나를 이끈 사람이 순교자 유스티누스였습니다. 


2세기의 변증가 순교자 유스티누스(100-165)는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철학과 유대교 모두의 통찰을 구현하였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어하였습니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는 로고스이며 노모스이다>라고 하르낙은 논평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유대교의 율법인 토라(노모스)와 그리스어 말(로고스)을 강조한 그리스 철학 모두를 완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토아주의와 중기 플라톤주의에서 유행하던 로고스 개념을 변증론으로 이용하였습니다. 


<요한복음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 구절은 유스티누스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로고스의 씨앗 개념을 사용하였습니다. 신적 로고스는 인간의 역사 전체에 걸쳐 씨앗을 뿌려 놓았습니다. 따라서 비기독교인들도 당연히 부분적으로나마 이 로고스를 품은 씨앗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론?과 비교하면 좋은 내용) 그는 이러한 이교 철학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기독교가 완성하고 토대로 삼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스티누스는 <제2변증서>에서 구약성서에서 로고스는 신적 현션을 통해 일시적으로 알려졌지만, 그리스도는 로고스를 완전하게 계시하였다. <우리 인간을 위해 오신 그리스도는 로고스 원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완벽하게 나타내 보이신다. >


따라서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도의 도래를 알리는 서곡이며, 그리스도가 도래함으로써 철학이 이제까지 부분적으로만 알았던 것이 완성된다. 


오리게네스의(185-254) 저술을 통해 로고스 그리스도론은 온전한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그의 이론은 복잡하며 여러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이론은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성육신에서 그리스도의 인간 영혼은 로고스와의 연합합니다. 이 연합이 아주 밀접한 까닭에 그리스도의 인간 영혼은 로고스의 속성들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로고스와 성부가 영원히 공존하기는 하지만 로고스가 성부에게 종속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오리게네스는 또한 조명설의 계시이론을 받아들였는데 <하나님의 계시 행위를 하나님의 광선에 의해 계몽되는 일과 비교합니다. 이 광선은 빛이신 신적 로고스에서 나옵니다.> 오리게네스는 기독교 신앙 밖에서도 진리와 구원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다원주의와 비교)


2) 아리우스 논쟁

4세기에 들어와 나사렛 예수의 의미를 밝히는 분기점에 이르게 됩니다. 이 쟁점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큰 교회 사제였던 아리우스(250-336)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다르다, 성자는 성부보다 낮은 단계/등급?)

- 성자와 성부는 동일한 본질을 갖지 않는다.

- 성자는 비록 창조된 존재들 가운데서 기원과 등급이라는 면에서 첫째이고 가장 으뜸이 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창조된 존재일 뿐이다.

- 성자가 이 세상 만물의 창조자이며 그렇기에 세상보다 먼저 그리고 모든 시간에 앞서서 존재한 것이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성자는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아리우스의 근본 신념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피조물 가운데 첫째, 가장 탁월한 존재이지만, 신이 아닌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로고스인 그리스도는 창조의 작인이었지만, 로고스 역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성부는 성자보다 앞선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부만이 출생하지 않은 분이시며 성자는 피조물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성자를 다른 피조물과는 다른 등급으로 설명합니다. 즉, <성자는 완전한 피조물이기는 하나 다른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출생한 존재이기는 하나 출생한 다른 존재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의 주장은 성자가 다른 피조물들보다 우월하면서도 본질상 출생하고 창조된 본성을 그 피조물들과 공유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아리우스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존칭 어법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 아들은 피조물이며,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의지에서 나왔다.

-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은유이며, 다른 피조물들 가운데서의 등급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높임말이다. 성부와 성자의 동일한 존재나 지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 아들의 지위는 그 자체로 아들의 본질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아버지의 의지에 의해 생겨난 결과다.


따라서 아리우스는 하나님과 창조된 질서를 철저히 구별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신이 역사 속으로 들어오고 인간의 몸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변할 수 있는 하나님의 관념은 아리우스에게 이단적인 것이었습니다. 성자의 신성은 유일신 신앙과 하나님의 단일성이라는 근본적 주제들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의 논증에 따르면,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아들이 아버지를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리우스는 그리스 철학의 일신론에서 나온 틀 안에서 나사렛 예수를 해명하려고 하였으며, 그 때문에 성육신 관념을 하나님의 불변성 및 초월성과 모순되는 것으로 여겨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는 책임 있는 성서 주석과 철학적인 체계를 신중하고도 적절하게 하나로 묶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아리우스를 끈질기게 비판했던 아타나시우가(293-373) 보기에, 아리우스는 기독교 신앙의 내적 일관성을 무너뜨리고, 기독교 신앙과 예배의 관계를 파괴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첫째, 아타나시우스는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피조물은 결코 다른 피조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창조자만 창조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는 문제의 일부이지 문제의 해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타나시우는 아리우스주의자들이 맞대응하기 곤란한 논리적 주장을 펼칩니다. 즉, 신약성경과 기독교예전 전통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아타나시우는 주장합니다.  그의 논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피조물은 결코 다른 피조물을 구속할 수 없다. 

- 아리우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다. 

- 그러므로 아리우스의 주장대로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속할 수 없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가 인간 구주라는 개념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한 두번째 논점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그에게 기도한다는 점이었습니다. 4세기에는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일이 기독교 공적 예배의 표준적인 특징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면, 기독교인들이 피조물을 예배하는 우상숭배에 빠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회 안의 평화를 위해 아리우스 논쟁이 해결되어야만 했습니다. 

아리우스는 예수를 예배하는 관행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아타나시우스와 동일한 결론을 끌어내는 데는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동일 본질의(동일한 존재인) 뜻인 호모우시오스(homo-

ousios)라는 말이 381년 니케아 신조에서 선언되었습니다. 그후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등 주류 기독교 내에서 정통 그리스도론의 표준으로 인정받았습니다. 


3) 알렉산드리아 학파

아타나시우스가 속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그리스도를 설명하면서 강조한 것이 인간의 구주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신이 되게 함으로써 인간을 구속합니다. 

그들의 그리스도론의 뼈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간의 본성이 신이 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본질과 연합해야 한다.

-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으로 인간 본성과 연합해야 한다. 

- 바로 이 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을 통해 일어났다. 

- 한마디로 인간이 하나님이 되도록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로고스가 인간의 본성을 취한다는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인간 안에 거하는 로고스(구약의 예언자들)와 인간의 본성을 취하는 로고스(성육신)를 구별하였습니다. 성육신을 표현하는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구절과 성탈절이 강조되었습니다. 성탄은 로고스가 세상으로 온 것과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인간 본성을 취한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378-444)는 성육신을 통한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강조하였습니다. 로고스는 인간의 본성과 연합하기 전에는 몸이 없이 존재했으며, 연합한 이후에는 오직 하나의 본성만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안티오키아 학파는 그리스도 안의 두 본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라오디케아의 아폴리나리우스(310-390)는 로고스가 완전하게 인간 본성을 취했다는 믿음에 대해 염려하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로고스가 인간 본성의 약점에 오염되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적인 정신과 영혼이 하나님의 정신과 영혼으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329-389)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습니다. 그는 성육신에서 그리스도가 인간 본성을 온전히 취한 것이 구속에서 중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인간의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정신 나간 사람들이요 구원받을 자격도 없다. 그리스도가 취하지 않은 것은 치유받을 수가 ㅇ벗으며, 구원을 받는 것은 그의 신성과 연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4) 안티오키아 학파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구원론의 문제를 다루는 데 일차적인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철학의 개념을 사용하여 인간의 온전한 구속과 어울리는 그리스도상을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로고스 개념을 통하여 성육신을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이 점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취하였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순수 구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주로 도덕적인 것이 었으며, 그리스도 철학 개념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그리스도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간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상태에 있으며 자신의 힘으로는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 만일 구속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반드시 인간 편에서 새롭게 순종함으로써만 가능하다.

- 인간으로서는 죄의 굴레를 깨뜨릴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한다. 

- 이러한 까닭에 신성과 인성이 일치된 이가 구속자로 오시며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적극적으로 옹호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동시에 한 사람의 진정한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단일성을 부정하는 것이라 알렉산드리아학파가 반박하자, 안티오키아학파는 자신들의 단일성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지닌다는 점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본성과 신적 본성이 완전한 결합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완벽한 단일성은 그가 두 본성을 지닌다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350-428)는 이 점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로고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데, 로고스 하나님이 예수를 취하고 그를 자기와 연합시켰다. 그리고 인간 예수가 성자 하나님과 확고한 연합을 이루었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그를 경외하고 예배한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386-451)도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가르키는 통칭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그가 그리스도라는 점에서 나뉠 수 없지만, 그가 하나님이며 또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알렉산드리아학파는 로고스는 일반적인 인간 본성을 취한다고 보았고

안티오키아학파는 로고스는 구체적인 인간을 취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테오도루스는 그의 저서 <성육신에 관하여>에서 <인간에게 내주할 때에 로고스는 취한 대상(인간) 전체를 자기 자신과 연합시켰으며 또 그 인간으로 하여금 내주하는 이, 곧 본성상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가 지닌 존엄성을 남김없이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 본성과 신적 본성은 어떤 관계일까요?

알렉산드리아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뒤섞거나 혼동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안티오키아학파는 확신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 두 본성의 독특한 정체성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둘의 관계를 개념화하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 이 둘은 결코 서로 섞이거나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 두 본성은 독특성을 유지한 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하나로 결합한다.

- 위격의 연합,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것이다. 


테오도루스의 <교리 교육론> 가운데 기뻐하는 뜻에 따른 연합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이 그들이 둘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성육신에서도 똑같이 둘의 본성에서는 둘이요 결합에 의해서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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