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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에 대해서(2)
박준원 2021-12-23 추천 1 댓글 0 조회 282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p.583~ 


10장 삼위일체론 

<삼위일체론의 역사>

1. 합리주의의 삼일체론 비판: 삼위일체론의 퇴보(1700-1900)

  합리주의에서는 삼위일체론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리하여 18-19세기에 와서 삼위일체론은 배후로 움츠러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급진적 영역에서 처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론이 성경 안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참된 교리가 아니라 후대에 잘못된 사변과 이론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후안 데 발데스)

  18세기 영국에 나타난 이신론자들은 삼위일체론은 신비일 뿐이며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을 믿으라고 강요함으로써 이성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점차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독교 변증가들은 심위일체론을 멀리하고 유일신론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칼 바르트의 선구적인 연구로 삼일일체론이 재평가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삼위일체론을 자신의 교의학의 기본 원리로 삼게되었고 삼위일체론이 크게 부흥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2. 삼위일체 유비: 시각화에 따른 문제점

삼위일체론의 난점 중 하나가 바로 시각화의 문제였습니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이치에 맞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아있었습니다. 성 패트릭은 토끼풀을 예로 설명했다고 합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그가 쓴 서신에서 삼위일체론을 다음과 같은 유비로 설명했습니다. 

1) 샘과 우물과 시내의 유비: 셋 모두는 동일한 실체, 물이라는 실체를 공유한다. 물줄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구분이 가능하지만 나뉠 수는 없다.

2) 목걸이의 유비: 많은 고리가 연결됨으로써 하나가 된다. 어떤 사람이 성령을 만날 때 그는 성부와 성자도 만나게 된다.

3) 무지개의 유비: 오직 한 줄기의 광선이 있지만, 여러 가지 색깔들이 균일하게 섞여 있다. 


[이콘] 구약성서의 삼위일체.안드레이 루블레프. 111.76x140.97cm.1411년경.모스크바 트레챠코프미술관

[출처] [이콘] 구약성서의 삼위일체|작성자 꼬보

 

3. 경륜적 삼위일체와 본질적 삼위일체

  고전신학에서 삼위일체의 세 위격은 신성 내의 구별을 가리키며, 구속 및 은총에 대한 인간의 경험과 구원의 경륜 속에서 드러나는 것들이며 하나님에 대한 인가의 경험과 구원사의 배후에는  한분 하나님,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줍니다.

  칼 라너의 <삼위일체 1970>에서 이 문제를 경륜적 삼위일체와 본질적 삼위일체의 관계로 다루고 있습니다. 본질적(내재적) 삼위일체란 시공간이라는 제한조건 밖에서 신성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경륜적 삼위일체란 구원의 역사 과정 자체 내에서 삼위일체가 열려지는 방식입니다.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이다라는 공리를 세웠습니다. 

1) 하나님은 그 본질에서 삼중적이며 하나님의 자기 소통은 삼중의 형태를 띤다.

2) 신적인 관계의 망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 망은 별개의 두 형태로 존재한다. 영원한 형태이며(초월), 역사적 형태(제한)이다. 


<삼위일체와 관련된 두 이단>

1. 양태론: 시대적 양태론과 기능적 양태론

  양태론이란 군주신론으로 불리며,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세 가지 다른 방식, 곧 세 가지 양태로 나타난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1) 하나님이 창조자와 율법 수여자의 모습으로 계시(성부)

2)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구주의 모습으로 계시(성자)

3)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분의 모습으로 계시(성령)

따라서 이 세 실체 사이에는 외양과 시대적 위치 외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습니다. 이 이론은 성부수난설과 관계가 있습니다. 

  양태론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시대적 양태론: 하나님의 역사의 한 시점에서는 성부, 다른 때는 성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사벨리우스주의: 인간의 몸과 혼과 영으로 설명, 성부는 몸이고 성자는 혼이며, 성령은 신성이다. 열은 성령, 빛은 성자, 성부는 본질이다. 성자는 광선처럼 방사되어 세상에서 복음전파와 인간 구원에 관련된 일을 완수하고 태양 속으로 되돌아가듯 하늘로 돌아갔다. 성령은 개인들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

2) 기능적 양태론: 하나님이 동일한 때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며, 세 위격이란 다른 행동 양태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자, 성자 하나님은 구속자, 성령 하나님은 성화하시는 분, 한분 하나님의 세가지 행위) 


2. 삼신론

삼신론은 삼위일체를 각자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며 동등하면서도 모두가 신성한 세 존재를 모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블라비우스는 그레고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 세 위격, 하나의 실체라는 공식은 삼신론으로 기우는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똑같은 인간성을 가진 세 사람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삼신론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레고리우스는 신격이라는 말은 본질이 아니라 작용을 뜻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삼위일체 세 위격의 작용을 보고서 각 위격의 독특한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지만, 신격은 이러한 행위들의 결과라는 점에서 단일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교부시대에 제11차 톨레도 공의회(675)에서 가장 명료한 삼위일체론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즉, 삼위일체를 삼중적이라고 해서는 안되고 삼위일체라고 해야 한다. 한 분 하나님 안에 삼위일체가 존재한다고 해서도 안된다. 성부는 성자와 관계를 맺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 모두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관계에서 셋을 위격이라고 보르지만 우리는 한 본성을 믿는다. 세 위격을 믿지만, 세 실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한 실체와 세 위격을 믿는 것이다. 

  핵심은 성부는 성자와 관련해서 성부이고, 성자는 성부와의 관계에서 성자이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에서 성령이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오직 그분 자신을 가리킨다.


3. 필리오케 논쟁

  니케아 신조(325)는 동방과 서방을 포함해 로마전체가 신학적 견해를 하나로 모은 합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안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것입니다. 여기에 합의된 내용 중 <성령을 아버지로부터 나오신>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9세기 서방교회에서 이 구절을 수정해 <성령을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리고 아들로부터>를 뜻하는 라틴어 <필리오케>가 첨가되어 사용되어 표준화되었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서방교회의 <성령의 이중발현>이라는 개념이 문제였습니다. 신학적인 문제와 동시에 건드려서는 안되는 신조의 문구를 건드린 것입니다. 이러한 악감정이 원인이 되어 1054년 동과 서로 교회가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기본 쟁점은 성령이 단지 아버지로부터 나오느냐(동방) 아니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느냐(서방,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교부들은 성자와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성자는 성부에게서 출생하고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현한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을 말씀과 숨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부가 말할 때, 말과 동시에 숨도 내 쉰다. 


동방교회: 성부가 성자를 낳고 성령을 내쉰다.

서방교회: 성부가 성자를 낳고 성부와 성자가 성령을 내쉰다.

 

  카파도키아 교부들 또한 성자와 성령을 구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성자와 성령 두 아들을 두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 모두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동방교회는 성령의 이중발현이라는 서방교회의 개념을 불신앙에 빠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신학자 중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는 성령이 성자에게 속한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고 이러한 개념들이 서방교회 안에 빠르게 발전하였습니다. 프아티에의 힐라리우스는 <삼위일체론> 논문에서 신약성경이 성령은 성부로부터만 만오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현한다는 이러한 견해를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그 근거로 요한복음20:22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한 구절이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성자는 성령 없이 존재한 적이 없다. 성자는 출생하며, 그렇게 해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고, 이 공동 선물은 아버지에게서처럼 아들에게서도 나온다. 그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를 연결하는 <사랑의 끈>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교제와 사랑의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동방교회는 신성의 유일한 원천인 성부의 독특한 지위를 보호하는데 있었습니다. 성자와 성령의 신성이 보호받을 수 있는 이유도 성부로부터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자와 성령은 별개이면서도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서방교회는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현대 러시아 신학자인 블라디므리 로스키(1903-1958)는 <성령의 발현>이라는 글에서 서방교회의 이론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을 비인격화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을 그릇되게 강조하였고 하나님을 비인격적인 원리로 끄러내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서방교회는 성자와 성령을 적절하게 구별하면서도 상호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확고히 하는데 있었습니다. 위격 개념을 관계적인 관점에서 이해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성령도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게 되었습니다. 후기의 서방신학자들도 하나님 안에 신성의 두 원천이 있다고 전제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습니다. 11차 톨레도 공의회에서 이 점을 명확하게 밝혔으며 이후 리옹 공의회(1274)에서는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지만, 두 개의 근원이 아니라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불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동방과 서방은 합의점에 다다르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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