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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에 대해서(1)
박준원 2021-11-24 추천 0 댓글 1 조회 286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p.562~ 


10장 삼위일체론 S

신학에서 가장 난해한 분야가 삼위일체론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공부하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신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삼위일체론의 기원과 기초를 살펴볼 것입니다. 


<기독교 삼위일체론의 뿌리>

직관에 반하는 개념인 삼위일체교리가 어떻게 교회에서 시작되었을까요?

1. 삼위일체론의 명백한 불합리성

토머스 제퍼슨(미국3대 대통령 1743-1826)은 삼위일체론은 다신론으로 타락한 것이며, 이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뿐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형이상학의 미친짓이다!) 

이러한 비판을 받는 심위일체론 즉, <하나 안에 셋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언어로 초월적인 것을 다루가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실재를 파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에 관련한 그림이야기>


바다를 비우기 위해 자기가 파낸 모르 구덩이에다 물을 옮겨 담는 아이를 보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광대한 바닷물을 어찌 이 작은 구덩이에 담을 수 있겠는가? 그러자 소년도 똑같이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의 광대한 신비를 책 한권 분량에 담아내려고 하는가?​


하나님에게 속한 일을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논점을 <그것을 이해했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신학은 신비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는 것을 피하고자 해왔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 침묵 속으로 도망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신학이란 신비에 맞서 이성으로 씨름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술인 삼위일체 G

신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형성되었고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론의 형성과 연계되어 발전하였습니다. 예수가 하나님과 유사본질이 아닌 동일본질이라는 것에 합의하였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이제 신이 둘이 되는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기존 개념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교회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점을 강조 할수록,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를 밝혀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영국 신학자 존 리처드슨 일링워스(1848-1915)는 특히 성육신을 성찰하는 데서 삼위일체론이 나왔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3. 기독교의 하나님에 관한 진술인 삼위일체

성육신은 나사렛 예수 안에서 몸을 입은 하나님의 독특한 본성과 성품과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론은 초월적이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었고 나아가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 안에 내주하는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일링워스는 삼위일체론은 기독교의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함축한 의미를 탐구하는 데서 나온 것으로 고대 철학 체계에서 나타난 비인격적인 신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삼위일체론의 주제는 구원의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인격과 인간의 인격의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논의의 출발점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임재와 행위에 대한 신약성경의 증언입니다. 이레나이우스가 볼 때, 구원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의 전 과정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행위를 증언합니다. 그는 <구원의 경륜>을 고안해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인간의 구원을 관리해 온 방식을 말합니다. 

구약의 신은 창조자의 신이며 신약의 구속자 하나님과는 전혀다르다고 주장한 마르키온은 신약을 받아들이고 구약은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레나이우스는 이 개념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구원의 과정 전체는 동일한 한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1) 창조되지 않은 아버지 하나님, 그분은 제한당하지 않으시고 눈으로 볼 수 없는 한분 하나님이시며 우주의 창조자시다. 이것으 우리 신앙의 첫째 조항이다. 

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때가 무르익었을 때 만물을 그에게로 모으기 위해 인간이 되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모습으로 인간들 한가운데로 오셨다. 그래서 죽음을 당하고 생명을 베풀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교젤르 회복하셨다. 

3) 그리고 성령, 그분은 때가 되자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인간 본성에 부어지셨다. 온 세상을 거두어 하나님 보시기에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 

 

4.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슬람의 비판 Y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이 있다는 믿음을 공유합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슬람 사람들은 삼위일체론이 하나님의 유일성을 훼손했다고 공격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왜곡하여 결국에는 신이 셋이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한분 하나님,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만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은 자신을 독특한 성품과 본질을 지닌 하나님으로 계시하며, 이 사실을 믿는 신학은 비록 직관에 반하는 것으로 비쳐질지라도 그것을 최선을 다해 숙고하고 표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고 직접적으로 알려집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확정된 후 신학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기에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고 드러내시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삼위일체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해 기독교 전통이 규명해 온 풍성한 지식에서 뽑아낸 정수이자 그 지식을 밝혀주는 빛입니다. 

다음에는 성경적 근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삼위일체론의 성서적 기초>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세례)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기도와 축도)

성부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계시됩니다. 신약 속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동일한 삼위일체적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화하여 나타나는 세가지 주요 개념이 구약속에서 확인됩니다. 

1) 지혜: 하나님을 지혜로 인격화한 것은 욥기 잠언 전도사 같은 지혜문학에서 두드러집니다. 지혜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하나님에게 의존해 존재하는 인격체처럼 다룹니다. 

2) 하나님의 말씀: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만 하나님과는 독립하여 존재하는 실재처럼 다룹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인도와 심판과 구원을 전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3) 하나님의 영: 구약에서 피조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가르키는 말로, 하나님의 영이라는 구절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예정된 메시아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하나님을 실체화한 이 세 개념은 삼위일체론은 아니지만, 이 세 개념은 초월적이고 내재적인 하나님이 피조물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는 양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서 속에 계시되고 신앙인의 지속적인 경허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행위 양태를 끈질기고 비판적으로 성찰해 온 과정에서 열매 맺은 것이 바로 삼위일체론입니다. 


<삼위일체론의 역사> J

16세기 급진적 신학자들은(미겔 세르베투스) 삼위일체 교리가 성서 속에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이 교리가 성경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1. 삼위일체 용어들의 출현

삼위일체론의 용어 중에 <세 위격, 하나의 실체>라는 구절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용어들이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크게 기여한 신학자가 바로 테르툴리아누스(160-225)입니다.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900여개의  라틴어 중 특히 세단어가 중요합니다. 

1) 트리니타스 :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테르툴리아누스가 고안하였으며 서방교회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2) 페르소나 : 그는 그리스어 휘포스타시스를 라틴어 페르소나(위격)로 번역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영어 person) 페르소나는 로마시대 배우가 쓰는 가면을 뜻하며, 어떤 사람이 맡은 역할이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의 실체, 세 위격>이라는 개념을 인간 구속의 거대한 연극 속에서 한분 하나님이 서로 구분되지만 연관을 지닌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수브스탄티아 : 그는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 속에서는 본래 복잡하지만 신성 내에서는 단일성을 지닌다는 개념을 말하기 위해 수브스탄티아(실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실체는 삼위일체의 세 위격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삼위일체 개념들의 등장

테르툴리아누스는 삼위일체 신학에 독특한 용어를 제공하고 독특한 형태로 다듬는 일에도 공헌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이시다. 구원의 경륜은 하나님이 피조물 속에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실체>는 구원의 경륜의 세 가지 측면을 하나로 통일하고는 것이고, <위격>은 그것들을 구분 짓는 것입니다. 세 위격들은 독특하지만 나뉘지 않으며, 다르지만 서로 독립하거나 갈라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세 위격이 인간 역사 속에서 단일성을 잃지 않고, 구별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행동하신 결과입니다. 


이렇게 4세기 후반에 이르러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성부와 성자가 하나의 본질을 지닌다고 인정함으로써 아리우스 논쟁이 해결되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성령은 성부와 또는 성자와 어떤 관계인가? 라는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성령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카파도키아 교부들 중 카이사레아의 바실리우스는 삼위일체 신학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성령의 신성을 옹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등하고 신성을 지난다는데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삼위일체 모델을 고안하는 것만 남게 되었습니다. 


동방교회 신학은 세 위격의 독특한 개별성을 강조하면서도 성자와 성령이 모두 성부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세  위격의 단일성을 보호하는 경향을 띠었습니다. 세 위격은 존재론적 관계에 기초합니다. 성부에 대한 성자의 관계는 태어남과 아들됨이라는 용어로 정의됩니다. 

서방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접근법을 버리고 세 위격을 관계적인 용어로 설명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필리오케 논쟁, 아들로부터) 

서방교회의 견해는 하나님의 단일성에서 출발하고 세 위격의 관계를 셋 사이의 상호 교제라는 측면에서 해석하였습니다. 


1) 페리코레시스(상호내주, 상호침투) 

이 그리스어는 6세기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삼위일체의 세 위격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을 가르킵니다. 이 개념은 세 위격이 개별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각 위격이 다른 두 위격의 삶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존재 공동체로 설명)

이 개념은 기독교 정치사상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는 신성 안의 동등한 세 위격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관계는 공동체 내의 인간관계를 다루며 기독교의 정치 사회 이론을 세우는 모델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전유(귀속)

이 개념은 페리코레시스와 관계가 있으며 그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양태론자들은 하나님이 구원 경륜 속의 다른 시점에 다른 존재의 양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시점에는 성부로 세상을 창조하였고 다른 시점에는 아들로 존재하여 세상을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전유의 교리에서는 삼위일체의 사역은 하나이며 하나님의 모든 외적 활동에는 삼위일체의 모든 위격이 참여한다고 주장합니다. 창조사역은 성부, 성자, 성령의 공동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의 행위들이 하나임을 주장하면서도 또한 세부적인 면에서는 서로 구별된다는 점을 인정하였습니다. (창조는 성부의 고유한 사역이고 구원은 성자의 고유한 사역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존재공동체를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찬스 웨슬리(1707-1788)는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찬송가를 통해 제시하였습니다. 그에게 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시에 신학 교육의 수단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삼위일체를 주제로 24곡의 찬송 모음집을 출판하였습니다.(1746)


온 인류의 아버지, 영원토록 주님을 경배합니다. 

자비로이 예수님 보내시어 구원하시고 복주시니, 

주의 선하심을 찬미합니다. 

예수 안에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오 주님의 사랑이신 아드님, 우리 위해 죽으셔서

저주를 폐하시고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의 감사를 받으소서. 그 크신 권능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사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오 사랑의 성령님, 권세와 능력의 주님,

당신의 일하심을 전하며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 안에 계셔 주님의 보혈을 알려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시고 둗세게 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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