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공부 18교시입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117페이지부터 보겠습니다.
오늘부터는 1500년부터 1750년에 이르는 종교개혁 시대를 다룹니다.
신학은 중세를 거치면서 많은 발전과 변화를 이루었지만 15세기를 지나면서 지적 활력이 떨어지고 (신학적) 피로감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르네상스(근원으로 돌아가자/신약성경원전에 대한 관심)가 힘을 얻으며 새로운 신학 패러다임에 대한 요구가 거세졌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로 신학은 서유럽을 중심으로 16세기 초에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 운동을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이라고 부릅니다.
1. 종교개혁이 시작되다
16세기 신학에 중요한 새시대가 열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좀 더 성서적인 근거로 되돌리고자 애쓴 결과로 개혁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입니다.
처음 종교개혁은 유럽 내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형성하는 결과를 낳고 가톨릭교회의 쇄신과 개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 사이의 갈등 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교회들 사이의 갈등도 심화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시대를 개신교의 종교개혁과 종파에 따른 유럽의 탄생, 가톨릭 종교개혁의 강화, 종교전쟁들을 중요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후반에는 서구 기독교가 유럽의 울타리를 벗어나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 매사추세츠에 도착, 스페인 선교사들이 남아메리카에 상륙한 일은 기독교 확장의 시대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2. 종교개혁인가 종교개혁들인가
종교개혁은 서유럽에서 마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과 같은 개인들이 중심이 되어 그 지역의 교회를 도덕적, 신학적, 제도적으로 개혁하고자 일으킨 운동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가톨릭의 종교개혁과 급진 종교개혁, 제2차 종교개혁을 포함하여 종교개혁들, 복수로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1525년경까지는 종교개혁이 독일 북동부 지역에서 마틴 루터와 비텐베르크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1520년대 초반에 스위스의 취리히에서도 독자적인 개혁운동이 이루어지면서 마침내 제네바(당시는 독립도시국가)와 장칼뱅이 연계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주제는 나라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발전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종교개혁에 대응하여 내부를 단속하여 질서를 다져갔습니다. 1545년 교황 바오로3세가 트리엔트 공의회를 소집하여 가톨릭의 사상과 실천을 명료하게 다듬고 개혁파 사람들에 맞서 가톨릭의 사상들을 옹호하고자 하였습니다.
1600년대 많은 사람들이 북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되면서 개신교와 가톨릭이 이 지역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청교도정신에 의해 세워진 학교가 하버드대학이었습니다. 예수회도 인도, 중국, 일본 등지에서 강력한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신학은 서유럽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 현상이 되어 갔습니다.
3. 종교개혁의 다양한 세력들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운동은 복잡한 특성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문헌들 속에서 여섯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 독일의 종교개혁: 루터교회를 낳은 운동
2) 스위스의 종교개혁: 칼뱅주의로 불리는 개혁주의 기독교를 낳은 운동
3) 급진 종교개혁: 재세례파라고 불리는 운동
4) 영국의 종교개혁: 성공회로 불리는 기독교를 낳은 운동
5) 가톨릭 종교개혁: 반종교개혁 운동으로 불림
6) 프로테스탄트 내부 운동: 제2차 종교개혁으로 불림
넓은 의미로 종교개혁은 이러한 여섯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는 스파이어 의회(1592.2)에서 독일의 루터파에 대한 관용을 거두기로 결정한 사건의 여파로 생겨났습니다. 4월 6명의 독일 군주와 14개 도시가 힘을 모아 이 억압적 결정에 저항하고 양심의 자유와 종교적 소수파의 권리를 옹호한데서 유래했습니다. 이러한 저항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라틴어
다음 시간에는 이 여섯가지 운동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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