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리치의 줄리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영성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교회사 속의 영성가들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잠시 쉬어간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들어주길 바랍니다. 자료는 노리치의 줄리안과 함께 하는 30일 묵상(바오로딸, 리처드 칠슨 엮음, 지은정 옮김)의 내용을 주로 참조하였습니다.
지도를 참조해 보시면 노리치는 지리상으로 런던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14세기 말에 살았던 영국 최초의 여류작가, 노리치의 줄리안(1342-1416)은 영성적 삶을 사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영성가이지만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녀의 진짜 이름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노리치에 있는 성 줄리안 교회에 옆에 그녀의 집이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그 성당에서 연유된 것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그녀는 단 하나의 작품만을 남겼는데 두 가지로 각색되어 있습니다.
'계시'라는 작품은 그녀가 1373년 5월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환상에 기초한 것이 첫번째 작품
이며 20년 후 그녀가 보았던 환상의 의미를 더 잘 해석한 두 번째 작품이 나오게 됩니다.
그녀는 노리치의 교회에 붙어 있는 작은 오두막에 은둔해서 살았지만 세상을 등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원이 딸린 집으로 가축과 사유재산도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대부분 기도와 묵상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영적지도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늘 고독하게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를 돕는 하녀도 있었고 손님도 찾아왔으며 동물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노리치는 분주하고 문제투성이의 항구도시였습니다. 전염병이 몇 차례 도시를 휩쓸었고 가난과 굶주림이 있었습니다. 두 명의 교황이 대립하여 크게 분열되었고 프랑스의 왕위계승과 영토문제 등으로 1337년에서 1453까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이 격렬하였습니다. 존 위클리프(1330-1384, 최초 영어성경번역완역)가 교회개혁을 부르짖자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이러한 사태들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집 건너편에 있어서 많은 책을 빌려 보았고 수사님들과 영적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 지역에는 교회 개역을 일으켰던 베긴회라는 여성신앙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줄리안은 하나님께 세가지 은혜를 구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수난을 특별한 방법으로 기억되기를 청했습니다. 똑같은 고통이 아닌 주님의 고통을 절실히 공감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둘째, 심한 질병으로 고통받기를 원했습니다. 이 고통을 이겨냄으로 완전히 하나님의 영광에 바쳐지기를 원하였습니다.
셋째, 회개의 상처, 연민의 상처, 염원의 상처(하나님의 뜻에 대한)라는 세가지 상처를 청했습니다.
이러한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졌습니다. 계시라는 책에 그녀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에 대해 쓰여있습니다. 이 세가지 상처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환상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줄리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줄리안의 큰 질병이 그녀에게 중요한 회심의 경험이 되었듯이 모든 그리스도교적 회심은 일차적으로 죽음과 부활로써 특징지어집니다. 모든 죽음의 체험은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고 과거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이런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은 새로운 시작이 되며 이는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입니다. 죽음의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쓸데없는 것으로부터 가장 본질적인 것을 추려내게 합니다.
줄리안의 시대에 교회의 가르침은 너무 애매하고 서로 달라서 복음이 도대체 우리에게 어떻게 해방을 주는지를 불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떄 줄리안은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해방은 바로 부활에서 온다는 것을 맹백하게 제시해 주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책에서 그녀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자기에게 계시하셨음을 확신하였고 당시 교회의 가르침(율법과 정의)과는 달리 구원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줄리안이 '계시'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그녀는 하나님의 아버지상에 어머니적인 차원을 더하였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모성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자비에 대해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심판자나 무서운 왕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줄리안은 예수님의 모습이 이런 하나님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줄리안은 우리에게 기쁨의 선물을 줍니다. 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울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인간이 되어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몯느 피조물에서 매순간 흘러 나오는 그 사랑과 아름다움에 눈을 떠보십시오. 줄리안은 비록 작은 오두막에 살았지만, 그녀로부터 솟아나온 기쁨은 흘러넘쳐 주변을 밝게 했습니다.
다음은 그녀의 책 '계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죄에 대하여)
* 하나님께서는 내가 전부터 갖고 있던 열망을 되살아나게 해주십니다. 나는 나의 인생길에 죄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환상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선으로 밝혀질 것이고 종국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끝은 아름답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모든 문제를 죄로 표현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온갖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주님의 부드러운 사랑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가 고통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끝에 가서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수님은 인간이시면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완전한 행복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기 위해 사랑으로 고통을 받고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너를 위해서 고통 받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고, 축복이고, 영원한 즐거움이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그리워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그분을 그리워합니다. 이러한 그리움 없이는 그 누구도 축복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하심에서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비로 대하시며, 우리를 소유하고 싶어하십니다.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기도를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첫째, 우리는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기도를 시작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근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가장 잘하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하십니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와 일치할 때 우리는 가장 잘 기도하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기도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기도의 열매는 모든 점에서 우리가 주님과 일치되어 주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관대하게 신뢰하며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찾아와야만 우리는 간구할 수 있게 됩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하시는 일을 보고 그 일을 하시도록 기도드리는 것이 그분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유익이 됩니다.
이와 같이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그 모든 것을 다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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