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공부 9교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p. 64-67.
7) 은총론: 펠라기우스 논쟁
410년대에 영국 수도사로 로마에서 활동한 펠라기우스(354-420)가 인간의 도덕적 책임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로마교회의 도덕적 타락과 방종에 놀란 그는 구약성경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끊임없이 인격을 개선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펠라기우스의 반대자들(특히 아우구스티누스) 눈에는 인간적인 인격 개선의 노력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이 개입할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펠라기수스주의는 인간의 자율적 종교로, 곧 인간이 자기 구원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종교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펠라기우스주의: 인간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 아우구스티누스(오직 은총으로)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은총 개념을 중요시 여기지 않고 인간의 행함을 크게 강조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주의에 강하게 반대하였으며, 기독교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면에 하나님의 은총이 주도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에게는 구원의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데 필요한 자유조차 없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누리기는 커녕 죄에 물들어 왜곡된 의지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며 죄로 기울게 만든다. 이러한 죄성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뿐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은총을 열정적으로 주장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박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핵심 주제는 인간 본성의 타락입니다. 그는 창세기3장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에는 인간 본성이 그 본래의 원초적 상태로부터 타락했다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인간 타락한 인간은 더이상 선한 모습을 보여줄 수없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인간은 출생의 순간부터 죄에 오염되었다고 보았습니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타락은 우리가 선택하는 문제라고 주장한 데 반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죄가 인간 본성의 본래적 요소로 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모두 죄인이며 그런까닭에 누구나 다 구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 힘은 외부로부터 와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시키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을 인간의 공로와는 상관없이 은혜로 베푸시는 선물, 인간의 죄의 굴레를 깨뜨려 주는 선물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구속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구속은 오직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방편이 인간의 외부에, 곧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그는 강조합니다. 구원의 과정을 여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대한 펠라기우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펠라기우스는 구원의 방편이 인간에게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 포로가 된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구원은 선한 행실을 통해 손에 넣을 수 있으며, 이러한 선한 행실로 인해 하나님은 인간의 도덕적 업적에 대한 봉사의 의무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펠라기우스는 은총을 십계명이나 그리스도의 도덕적 모범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즉, 공로에 의한 구원으로 보았던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반대의견에는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달랐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본성이 약하고 무능력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구원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으며,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자율적이어서 하나님은 인간이 구원을 이루기 위한 지침들을 제시해주며, 인간은 아무런 도움없이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구원은 정당하게 손에 넣는 보상으로 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한 구원에 대한 예정론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사람을 미리 택하셨다는 교리로 어떤 사람은 구원하고 어떤 사람은 구원하지 않기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카리타고 공의회(418)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안한 은총과 죄에 대한 이론을 지지하고 펠라기우스주의를 단호하게 정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펠라기우스주의는 오랫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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