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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7 한교회 수요예배(사도행전강해)
박준원 2026-01-07 추천 0 댓글 0 조회 8

믿는 사람이 모든 물건을 통용하다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2)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1. 어떻게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을 따라 나눠주며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 당시 사도들과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금방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내가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마' 약속하고 가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곧 오시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 오늘 저녁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직접 들었다면, 당장 주님이 세상의 심판주로 오셔서 종말이 왔다면, 통장에 수십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물질 자체에 대한 관점이 바뀌게 됩니다. 

- 초대교회의 이러한 독특한 공동체는 이러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론적 신앙은 굉장히 중요한 신앙 원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2. 초대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이러한 종말론적 신앙 때문에 물질 문제로부터 자유했다는 점입니다. 당장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땅의 가치들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무인도에서는 금은보화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스개 소리입니다면, 어떤 분이 금은보화를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베드로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에는 바닥이 황금으로 깔려있는데, 가져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 두고 오십시오. 돈은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돈은 절대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이러한 종말론적 신앙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신앙원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종말론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는 순간, 부활의 보증, 천국의 영광을 보장 받은 백성들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이고 우리는 영원한 세상에 잠시 후면 들어가게 됩니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이 땅에서 100년 이라는 정말 찰나의 순간을 살아갈 뿐입니다. 

종말론적 신앙이란 세상이 끝난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 세상의 가치와 체계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끝이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으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못하고 사방 각지에서 모여들었습니다. 구원받는 자의 수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 종말이 온다면, 니꺼 내꺼 따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썼습니다. 

우리도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할까요? 

사람들은 종말론적 신앙을 머리로 이해하고 이론적으로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붙들고 놓지를 못합니다. 


초대교회의 물질을 아낌없이 서로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종말론적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끝나는 시간이 올 것이고, 마치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종말론적 신앙이 확고해질 때 우리 삶의 모습은 달라지게 됩니다. 


2장46절 말씀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선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우리는 앞서 종말론적 신앙이 물질의 문제, 돈의 문제로부터 자유하게 만들었다면, 

둘째, 종말론적 신앙은 우리 생활의 내용을 변화시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성전과 집, 두 개의 공간이 나옵니다. 이 두 공간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전에서의 삶이 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엄마는 교회에서는 천사같은데, 집에 오면 너무 무서워요!

우리 아빠는 매일 교회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집에 오면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며 마구 욕을 하세요. 

우리의 신앙은 교회와 가정, 일터에서 동일한가? 다른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칠 수 없는 지독한 질병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직계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도직을 끊임없이 의심받았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자, 반대파 사람들이 바울을 비난하며 열심을 다하여 복음을 전파합니다. 열받을 법도 하지만 바울은 이나 저나 복음만 전파되면 나는 기쁘다라고 고백합니다. 


빌1:18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의 기쁨은, 내가 감옥에 있느냐 자유하냐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 기준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존심이 상하면 예수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예수를 팔아서라도 나의 자존심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 자존심이 세워지면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간증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팔아 나를 세우는 지극히 교만한 기쁨입니다. 


바울의 인생의 목적과 기쁨의 근거는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바울의 이 기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자기 주장이 꺾이고 자존심이 상하면 하나님이 마치 실패한 것처럼 여깁니다. 

부르르 떨며 분해합니다.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는 백성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서는 안됩니다. 

시비가 붙었을 때는 져주어야 합니다. 손해보아주어야 합니다. 백번 양보해야 합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간으로 시비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고달프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쉽습니다.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무슨, 너가 가는 천국이라는 난 안간다! 끔찍하다. 

거기까지 같이 가서 너를 만날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리스도인은 무례하지 않게, 상식을 지키면서 칭찬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너그럽게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소문이 납니다. 

초대교회처럼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풍성하게 채워집니다. 


오늘 종말론적 신앙관을 통하여 

먼저 물질관을 바꾸야 합니다. 

종말론적 시각을 가지고 물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예배의 삶이 가정과 직장과 사회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결심과 실천이 열매를 맺어 갈 때 

칭찬을 받아 구원받는 백성들이 날마다 더하게 될 줄 믿습니다. 


적용)

1. 나의 물질관은 어떠한가요?

이 세상이 전부인것처럼 손에 모든 것을 움켜쥐고 살아가나요

아니면 잠시 후면 떠날 것처럼 철저하게 나누며 살아가나요


2. 나는 예배와 삶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나요

예배와 삶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나요


(송태근 목사, 쾌도난마 사도행전 참고자료)

  

 

 

사도행전 2장 43~47절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탄생한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본문입니다. 이 구절은 오늘날 교회가 지향해야 할 본질적인 모델(Model)을 제시합니다.

 

성령 충만한 공동체의 4가지 특징

1. 거룩한 경외심이 있는 공동체 (43절)

성경구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강해: 여기서 '두려움'은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경외심(Awe)**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임한 공동체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적으로 느껴지며, 그분의 권능(기사와 표적) 앞에 인간적인 교만이 사라집니다.

 

핵심: 우리 예배와 모임 속에 하나님을 향한 떨림과 기대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2. 소유를 뛰어넘는 사랑의 공동체 (44~45절)

성경구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강해: 초대 교회의 유무상통(有無相通)은 강제적인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성령의 사랑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형제의 필요를 채워준 것입니다.

 

핵심: 진정한 은혜는 지갑의 회심으로 나타납니다. '나' 중심의 소유 개념이 '우리' 중심의 나눔 개념으로 변화되는 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입니다.

 

3. 모이기에 힘쓰는 기쁨의 공동체 (46절)

성경구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강해: 이들은 대그룹(성전) 예배와 소그룹(집) 교제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성전: 공동의 신앙 고백과 찬양의 자리

 

집: 삶을 나누고 식탁 공동체를 이루는 긴밀한 사랑의 자리

 

핵심: '기쁨'과 '순전함'이 비결입니다. 의무감이 아니라 구원의 감격이 그들을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4.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공동체 (47절)

성경구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강해: 교회 안에서의 뜨거운 사랑은 교회 밖으로 흘러넘쳐야 합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것은 교회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세상의 본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핵심: 부흥은 인간의 전략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다워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결론 및 적용]

초대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성령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살아있습니까?

형제의 아픔과 필요를 내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보며 하나님을 궁금해하고 있습니까?

 

예화,  초대 교회의 '식탁 교제'를 오늘날의 소그룹이나 구역 모임에 연결해 보세요.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며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영적 행위였음을 강조하면 좋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47절에 나타난 핵심적인 헬라어 단어들을 해설해 드립니다. 이 단어들은 당시 초대 교회의 영적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1. 포보스 (φόβος) - "두려워하는데" (43절)

의미: 공포(Fear)가 아니라 '거룩한 경외심' 또는 **'경건한 떨림'**을 뜻합니다.

 

해설: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사도들을 통한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압도당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신앙의 기초가 되는 감정으로,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영적 긴장감을 의미합니다.

 

2.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 - "통용하고" (44절)

의미: '공통', '친교', '나눔', **'동참'**을 뜻합니다.

 

해설: 44절의 '통용하다'는 '모든 것을 공동의 것(코이나, κοινά)으로 삼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한 사교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운명을 같이하는 운명 공동체적 연합을 상징합니다.

 

3. 호모디마다돈 (ὁμοθυμαδόν) - "마음을 같이하여" (46절)

의미: '한 마음으로', '일치된 열정으로' (homos: 같은 + thymos: 마음/열정).

 

해설: 사도행전의 핵심 단어 중 하나입니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의 목적과 열정을 갖게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지휘 아래 화음을 맞추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4. 아펠로테스 (ἀφελότης) - "순전한 마음으로" (46절)

의미: '매끄러움', '단순함', '거칠지 않음'.

 

해설: 원래 이 단어는 '돌밭에서 돌을 다 골라내어 매끄러운 상태'를 뜻하는 농사 용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계산적인 마음이나 이기적인 동기가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5. 카리스 (χάρις) - "칭송을 받으니" (47절)

의미: '은혜', '호의', '아름다움'.

 

해설: 우리말 성경에는 '칭송'으로 번역되었으나, 원문은 **'백성들로부터 은혜(호의)를 가졌다'**는 표현입니다. 교회의 삶이 세상 사람들 눈에 매력적이고 은혜롭게 비춰져서, 세상이 교회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1. 마음을 여는 예화 (Illustration)

[예화 1: '나'의 소유에서 '우리'의 소유로] 과거 영국의 한 교회가 화재로 전소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슬픔에 잠겼지만, 곧 자기 집의 가구들을 가져와 임시 예배처소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한 성도가 자기가 가져온 의자에 이름표를 붙여놓았습니다. "이것은 내 의자이니 나만 앉겠다"는 뜻이었죠. 그때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내 것' 위에 붙은 이름표가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것'이라는 이름표가 붙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무상통은 내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의 주인이 '나'에서 '주님'으로 바뀐 사건입니다.

 

[예화 2: 숯불의 원리 (모이기에 힘쓰는 공동체)] 숯불은 한데 모여 있을 때 강력한 화력을 내뿜고 오래 탑니다. 하지만 아무리 뜨겁게 타오르던 숯덩이라도 하나를 따로 떼어놓으면 금방 식어버리고 재가 됩니다. 초대 교회가 날마다 모이기에 힘썼던 이유는 서로의 열기를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이라는 차가운 환경 속에서 우리가 신앙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동체와 함께 모여 불을 지피는 것입니다.

 

2. 깊은 묵상 포인트 (Meditation)

'기사와 표적'보다 앞서는 '경외함' (43절): 오늘날 우리는 기적과 응답만을 구하곤 합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기적이 일어나기 전 이미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포보스)'이 있었습니다. 기적은 경외함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이용하려 합니까, 아니면 그분의 임재 앞에 엎드려 있습니까?

 

'성전'과 '집'의 균형 (46절): 초대 교회는 공적인 예배(성전)와 사적인 친교(집)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거룩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이기적으로 변하진 않나요? 진정한 신앙은 교회 건물을 넘어 우리 거실과 식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칭송받는 교회, 구원받는 사람 (47절):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시지만, 그 통로는 '백성에게 칭송받는 교회'였습니다. 전도는 말의 기술이 아니라 교회의 '매력(카리스)'입니다. 세상이 우리 교회를 보며 "저 사람들과 함께라면 나도 행복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3. 실생활 적용 (Application)

[개인적 적용: '순전함' 회복하기]

식탁의 회복: 이번 주에 구역 식구 혹은 소외된 이웃 한 명을 집으로 초대하거나 정성스러운 식사 대접을 해보세요. 거창한 음식이 아니더라도 '아펠로테스(순전한 마음)'를 담아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언어의 성전 세우기: 47절의 "하나님을 찬미하며"라는 구절처럼, 이번 주간 불평 대신 하루에 3번 이상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축복하는 말을 선포해 보세요.

 

[공동체적 적용: '통용'의 실천]

나눔 박스(Sharing Box) 운영: 교회 로비에 '필요한 분은 가져가시고, 남는 분은 채워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생필품 나눔 박스를 설치해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무상통 정신을 현대적으로 실천)

 

'내 것'의 경계 허물기: 내가 가진 재능이나 물건 중 공동체를 위해 기쁘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를 정해 실천해 보세요. (예: 차량 봉사, 재능 기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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