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신구약문지방넘기/ 오종윤목사)
1. 흠없는 욥에게 왠 고난?
욥기는 42장까지 있는 방대한 책입니다.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장은 서론, 42장은 결론, 3-41장은 본론입니다.
서론의 내용은 욥이 고난을 당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욥은 동방의 부자입니다. 욥은 재산만 많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데도 흠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욥에 대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1:1)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녀들에게도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아들 일곱, 딸 셋으로 열명 모두 우애가 좋았습니다. 욥은 잔치 다음날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면서 혹지 모르고 지은 죄가 있다면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욥에게 엄청난 재난이 쏟아집니다.
강도떼의 습격을 받아 가축떼를 전부 빼앗기고, 집이 무너져 열명의 자녀들이 몰살당하고 욥은 악창이 나서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어댑니다. 한꺼번에 모든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신앙생활을 잘하던 욥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복을 받아 마땅한 욥에게 왜 끔찍한 고난을 받아야 할까요?
욥기는 바로 이러한 심각한 질문을 바탕에 깔고 진행됩니다.
2. 욥과 세 친구들의 논쟁
본론은 욥과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라는 세친구들이 벌이는 논쟁으로 진행됩니다.
욥 혼자서 세명의 친구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발언에 욥이 반박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욥기의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성구표구나 액자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이 말은 친구 빌닷의 말입니다. 욥과 논쟁하는 중에 쏟어낸 말입니다.
논쟁의 주제는 왜 욥이 고난을 당했는가?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은밀한 죄가 있어서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인과응보라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욥은 생각이 다릅니다. 자신은 엄청난 고난을 당할 만큼 어마어마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항변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욥과 친구들의 논쟁은 신학 토론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각기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의 문제에 대하여 응과응보의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것이고, 그 벌이 바로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죄-벌-고난이라는 도식으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르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고난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들은 인과응보 사상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욥은 인과응보에 대해 반기를 듭니다.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수도 있고, 진실한 사람이 시련을 겪을 시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논쟁은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길어집니다.
욥은 친구들과 논쟁할수록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욥은 차라리 하나님을 직접 상대하는 것이 낫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결백을 하나님은 알아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논쟁과정을 보면, 사실 세친구들은 욥 하나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친구들의 발언은 점점 짧아지고 욥의 발언은 계속 길어집니다. 여기까지보면 욥이 판정승으로 보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공세를 하다.
욥은 자신의 소원대로 마침내 하나님과 대면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결백을 인정하시고 자신의 팔을 들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에게 쉴 틈없이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펴기 시작합니다. 네가 무엇을 아느냐? 네가 이런 것을 보았느냐? 네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느냐? 계속 질문합니다.
욥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질문에 단하나도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욥은 입을 다물고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드립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욥42:6)
욥은 하나님을 전에는 귀로만 들었으나 이제는 눈으로 뵈었다고 고백합니다. 귀로 듣던 하나님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하나님입니다. 책을 통해, 강연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고난의 때에 내게 아무런 위로나 힘이 되지 못합니다. 허상의 하나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눈으로 뵌 하나님은 내가 체험을 통해 직접 만난 분입니다. 내가 깊이 기도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만난 하나님입니다. 내 삶속에서 확신을 통해 얻게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은 내 속에 살아계셔서 나를 붙들어 주시고 내게 능력으로 녁사하시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만이 견디기 힘든 고난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내게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욥기의 서론에 보면, 하나님과 사탄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시자 사탄이 응수합니다. 욥에게 물질의 복을 주니까 잘 믿는 것이지, 소유를 다 거둔다면 신앙도 버린다는 논리를 폅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욥을 두고 대결을 합니다. 처음 대결에서 욥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겼음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자, 사탄은 추가로 욥의 뼈와 살을 칠 것을 제안합니다. 건강까지 거두어 가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도 사탄도 욥의 일거수일투족을 숨죽인 채 지켜보게 됩니다.
욥기의 결론에 이르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그냥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더 갑절의 복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욥42:12)"
처음보다 정확하게 두배가 늘어났습니다. 전보다 갑절의 복을 받은 셈입니다.
욥기는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켜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그런가 하면 시종일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도록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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