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의 시편이해 - 기도의 책(2)
*홍성사/최진경 옮김
(이어서)
3. 시편의 기도자
150편의 시편 가운데 다윗의 시가 73편입니다.
다윗이 임명한 음악가 아삽이 12편, 다윗의 지도하에 있었던 레위지파의 음악 가문인 고라 자손이 12편 등만 보더라도 시편을 다윗과 연결시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그의 시편 가운데 기름부음 받기 전의 작품은 한 편도 없습니다.
성경은 다윗을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증언합니다. 다윗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의 안에 있어 후에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행2:30-3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직분과 삶 그리고 언어로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다윗의 시편에서 이미 약속된 그리스도 자신이 말씀하십니다.(히2:12, 3:7, 10:5) 다윗의 기도는 그리스도가 다윗과 함께 아니, 오히려 그리스도 자신이 직접 그의 선조 다윗 안에서 기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언급들은 시편 전체에 중요한 빛을 던져줍니다. 그것은 다윗을 그리스도와 연관 지어 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윗이 자기 마음대로 기도했다가 보다는, 그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가 기도했다는 점입니다. 시편의 기도자는 비록 자기 자신이 기도하는 것이긴 했지만, 이미 그리스도가 그 안에, 그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노년에 다윗의 고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23:1-2)
그리고 장차 오실 의의 왕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다윗의 마지막 예언이 이어집니다.
한 인간과 예수 그리스도가 동시에 시편으로 기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모든 인간의 연약함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가 바로 이곳에서 전 인류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털어놓고,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는 고통과 고난, 죄와 죽음을 우리보다 더 깊이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바로 이 떄문에 그의 기도는 그가 받으신 인성으로 드리는 기도이며,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 우리의 기도입니다.
누가 시편으로 기도합니까?
다윗이 기도했고 그리스도가 기도했으며 우리가 기도합니다.
우리는 바로 온교회로서, 오직 이 교회 속에서만 시편의 모든 풍성함을 기도로 드릴 수 있고, 우리는 또한 마침내 한 사람 한사람으로서 그리스도와 자신의 교회에 참여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다윗, 그리스도, 교회, 나 그리고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함께 묵상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 가셨던 놀라운 길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4. 제목, 음악, 구절
시편의 히브리어 제목은 '찬송가'입니다.
시편72편20절에서 이전의 모든 시편을 '다윗의 기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시편은 찬송하는 노래만 들어 있지도, 기도만 들어 있지도 않습니다. 시편은 원래 악기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나중에 하나님께 노래로 봉헌하는 기도 모음집이라는 의미로서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시편은 대부분 예배를 위한 음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노래와 악기가 함께 동원되었습니다.
시편 제목에 달려 있는 이해하기 힘든 여러 문구는 악장에게 주는 지침입니다. 셀라라는 말도 그 자리에 간주곡을 삽입하라는 표시로 보입니다. 루터는 "셀라는 사람들이 침묵하면서 시편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할 것을 말한다. 성령이 그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들을 깨닫도록 평온하고 고요한 영혼의 상태를 요구하시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대개 주고받으면서 노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병행법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형태는 기도가 끊이지 않도록 우리를 부르고, 함께 기도하도록 초대합니다.
5. 예배와 시편
시편을 함께 읽거나 노래로 부르는 교회들은 엄청난 부요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지 시편을 매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기도책을 통해 성장해 가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기도들은 읽기만 해도 우리의 생각과 힘을 매우 강하게 해줍니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표현으로 시편을 말합니다. "시편을 규칙적으로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한 사람은, 자기가 사용하던 다른 기도책을 내던져 버리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 이 기도책은 내가 시편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풍성함과 힘, 그리고 강렬함과 열정을 주지는 못하는구나!"
교회는 아침저녁 예배에 자주 시편을 사용해야 합니다. 날마다 여러 시편을 되도록 함께 읽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일년 동안 시편을 여러번 통독하게 될 것이고 점점 더 깊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시편을 자기 마음대로 취사선택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성경의 기도책에 무례를 범하는 것이고 또한 무엇을 기도할지를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잘 아는 양 행동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대교회에서 다윗의 시편 전체를 암기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시편 암송이 직분자의 조건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시편을 사용함으로 신앙의 생명력을 충만하게 해주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시편의 언어로 말씀하시면서 돌아가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시편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비할 바 없는 보물들을 시편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시편기도가 회복된다면 상사할 수 없는 힘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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