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3 한교회 수요기도회
<절대1시간 기도/ 꿈이 있는 교회 하정완 목사>
모든 문제는 ( )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일은 ( )입니다. 기도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하니라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이 놀랍고 위대한 일을 우리는 놓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도는 누가 대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 )을 만나는 일입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호흡이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단 한 시간도 기도하지 못했던 베드로처럼, 기도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게 되고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시험과 유혹을 이길 강한 내적 권세가 생길 때 기도하는 자를 통하여 새로운 변화와 의로움이 실현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기도문 500개를 가질 때 하루 한 시간 이상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도문 500개를 갖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기도 하고 기도하는 자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1부 기도가 힘든 이유>
1. 한 시간도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3년 동안 함께 생활하시면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3년 훈련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하신 그날 밤부터 제자들의 모습은 비참한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마가복음14:50에 ‘제자들이 다 ( )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처절하게 기도하고 계실 때 제자들이 깨어 함께 기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누가복음22: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 ) 같이 되더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태복음26:40) 책망하십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께 집중 훈련을 받았지만, 한 시간도 깨어 기도할 수 없는 실력이었습니다.
( )가 문제다.
제자들은 변했지만, 완벽하게 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6:41)
이 말씀처럼 제자들은 육체를 자신들의 마음과 의지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육체의 문제는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육체의 영역은 제자들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영역이었습니다. 살아가는 날 동안 육체의 한계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분명하게 받게 되는 구원, 곧 의롭다 함을 받는 ( )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지만, 구원받은 존재가 자신의 몸을 다스리고 거룩해지는 ( )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마음의 혁신이라는 책에서 칭의와 성화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이야기합니다.
‘고장이 난 증기선은 항구로 들어가 부두에 정박한다. 배는 안전하지만 온전하지는 않다. 수리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안전하며서도 동시에 온전하게 만들려고 하신다. 우리를 안전하게 해주는 것은 칭의이다. 우리를 온전하게 해주는 것은 성화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른 온전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루 한 시간 기도할 수 있는가?
하루 10분도 기도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의지로 매일 10분을 기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단 10분도 기도할 수 없다면 강력하게 다가오는 죄와 불의에 대하여 대처할 힘은 남아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죄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쉽게 보게 됩니다.
바울도 자신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열심히 주의 일을 하고 있지만 주님 앞에 실격자가 되지 않을까 늘 걱정하였습니다. ‘나는 매일 ( )’고백하면서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육체가 문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한 시간 기도를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자신의 육체를 제어하고 기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그 사람의 영적 깊이를 가늠하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던진 질문을 우리에게 하신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기도 점검하기>
나는 한 시간 기도가 가능한가?
실제로 하루에 몇 분이나 기도하는가?
요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은 무엇인가?
너무 쉽게 넘어지고 무너지는 일은 무엇인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20190327 한교회 수요기도회
<1부 기도가 힘든 이유>
2. 온전한 회개를 하지 못했다.
절대 한 시간 기도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 삶에 최적화된 상태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도가 생소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 기도를 시작하더라도 당장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것,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우리의 기도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마음속에 죄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면 주께서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 것이다.’(시편66:18,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기도해도 하나님이 듣고 계시지 않으면 금방 피곤함과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하나님이란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먼저 죄를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를 해결하는 것이 기도가 잘 되는 첫 번째 요소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
죄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선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우리 힘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죄입니다.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 제물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을 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1:7)
분명한 것은 죄 사함은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죄 사함의 권세는 오직 예수께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 사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온전한 회개란 무엇인가?
오순절 성령의 역사 이후 베드로가 예루살렘 광장에서 설교할 때, 그 놀라운 복음을 듣고 예루살렘 백성들이 놀랍게도 죄를 깨닫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사도행전:37)
마음이 찔렸다. 그들 스스로 마음을 찌른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로 보면, ‘마음을 예리하고 강력하게 성령께서 찔러 자발적으로 그 찔림이 강력하게 일어났다’라는 뜻이 됩니다.
자발적이며 능동적으로 듣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때 성령이 개입하시는 틈이 벌어집니다. 능동적으로 기도할 때 자신을 무장 해제하고 성령의 개입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래도 아직 죄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찔려 어찌할꼬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죄 사함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히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사도행전2:38)
죄 사함의 순서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지의 들음’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인한 심장을 찌르는 자발적 깨달음의 반응’이 이어야 하고, 이로 인해 ‘강력하고 처절하게 자신의 삶을 완전히 전환하여 회개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회개가 무엇일까요? 헬라어로 메타노에오인데 바꾸다,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 우리는 죄 사함을 경험하고 확증하게 됩니다.
1) 아쿠산테스 : 자발적으로 듣는 태도
2) 카테뉭게이산 : 성령의 감동으로 능동적인 깨달음
3) 메타노에이사테 : 마음을 정하고 완전히 바꾸는 내 인생의 주권 이양이 일어날 때 ‘죄 사함’은 이루어집니다. 그 때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이 죄 사함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는 그의 마음을 바꾸고 예수님을 인정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23:42) 그 강도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즉각적 구원을 선포하셨다. 마음을 바꾸는 회개가 믿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시작은 ‘회개’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할 때 첫 번째 메시지가 회개였으며, 전도 나가는 제자들에게 첫 번째로 선포하게 한 것도 회개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막6:7,12)
기도가 안 되는 이유
기도가 안 되는 이유는 온전한 회개가 이뤄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죄가 가득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회개 없는 믿음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회개하고 죄 없이 함을 받은 후에 벌어지는 은혜는 ‘새롭게 되는 날’의 경험입니다. 새롭게라는 헬라어 의미는 ‘갑자기 새로워지고 달라진 평화’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통치를 받은 영혼이 회복되어 마음의 평안과 자유가 생긴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여전히 마음에 두려움과 걱정, 근심과 불안이 있다면 온전한 회개가 이뤄지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온전한 회개는 기도의 절대적 조건입니다. 온전한 회개 없이 철저한 죄 사함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기도가 안 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20190403 한교회 수요기도회
절대 1시간 기도 3과 수동적 기도를 할 줄 몰랐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거룩하고 성화에 이른 존재 곧 온전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이 부분을 가장 괴로워했습니다.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바울에게 ‘원하는 바 선’은 지푸라기처럼 약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무용지물임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회개하여 구원받은 존재였지만, 그에게 내적인 힘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도 이러한 연약함 때문에 한 시간도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한 시간 기도는 작정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닌 것이 문제입니다.
<복잡한 내면의 상태>
우리 내면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롬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바울은 그 이유가 죄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 안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던 것입니다.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죄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해서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습성 같은 것들로서 죄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것을 ‘옛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ㅇ르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옛 사람이 바울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상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지라도 그 기도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주장과 자기연민에 빠진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이며 인간적인 기도가 되는 까닭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대화라는 것을 안다면, 기도는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합니다. 여전히 습관적인 죄를 짓고 묵혀둔 죄가 남아 있는 상태라면 기도 역시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고 애써 노력하고 있다면, 우리의 심령이 깨진 상태일 수 있습니다. 기도가 힘이 없는 이유이고 한 시간 기도가 고역이 되는 이유입니다.
<다윗의 침묵기도>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자 그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은 매우 파렴치한이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어느 날 찾아와 그 죄를 고발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부터 손상된 자신의 영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은 이미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예배하고 기도를 드렸겠지만 그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독백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51:15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의 영은 더 이상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정직한 영이 훼손되어버렸습니다. 다윗이 해야할 것은 바로 영의 회복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드린 기도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기도였습니다.
시51:39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중요한 사실은 정직한 영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제사와 행위도 다윗 스스로 정직한 영을 회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어떤 기도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기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때 다윗이 드렸던 기도는 기다림의 기도였습니다. 침묵으로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시51: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러내놓고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 서는 것 뿐이었습니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사실 모든 기도의 시작은 먼저 하나님 임재 안에 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수동적 기도라고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을 가지고 기다림으로, 침묵함으로 서는 것입니다. 치료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임재 안에서 기다리는 것, 그래서 수동적 기도인 침묵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침묵기도는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엡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실제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을 수동적으로 열어 주님 앞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나를 주장하고 고집했던 모든 태도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나를 만지고 치료하시도록 내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기도할 힘을 얻게 되고, 기도하기 힘들던 우리가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통치를 기다리는 기도>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은 아무 힘도 없는 무기력한 존재, 사망의 몸임을 인정하고 절망적인 고백을 합니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법을 섬기노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4절의 절망에서 25절의 희망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자신이 사망의 몸이라는 절망 앞에서 어떤 기도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주님의 처분을 기다리며 침묵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것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만 기다리는 침묵으로 들어섰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역사가 24절과 25절 사이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침묵으로 기다리는 바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만지심이었습니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기도해야 하지만 때로는 수동적으로 침묵으로 기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 앞에 깨어 있는 상태이고 하나님만을 집중하는 기도입니다. 침묵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완전한 기도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개입하시고 말씀하시기를 기다리는 전적 의존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절대1시간 기도: 4. 영이 몸의 행실을 어떻게 죽이는가?
<죄의 법에 사로잡힌 존재>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존재, 즉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엡4:22)입니다.
‘유혹의 욕심’은 오랜 시간 동안 경험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를 넘어섭니다.
더 큰 문제는 옛사람, 곧 육체입니다. 옛사람은 그동안 형성된 감정과 생각을 따라서 행동을 합니다. 바울이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문제가 바로 육체의 문제로 몸에 새겨진 것입니다.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
육신은 생각을 따라 충실하게 움직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어떤 자동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죄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롬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생각과 몸이 연결되어 있지만 놀랍게도 몸이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몸이 생각에 영향을 받지만, 반대로 생각이 몸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때문에 몸의 훈련은 매우 중요한 영성훈련의 영역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생각의 문제를 넘어 몸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분명 영적인 일이지만 육체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하고 싶었던 마음, 곧 영의 소원은 육체의 욕망에 의해 완전히 묵살되었습니다. 우리의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하고 싶지만 육체가 문제입니다. 바울의 고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것을 추구하지만 죄를 짓는 자신이 괴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본래적인 선한 갈망을 지킬만한 힘이 바울의 육체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에 참여하며 마지막까지 경주하는 것의 초점을 몸의 훈련에 두었습니다. 몸이 문제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던 것입니다.
고전9: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하는 일은 간단한 노력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내 몸을 쳐서’의 원어 ‘휘포피아조’의 의미는 ‘멍이 들도록 때리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주다’입니다. 더 이상 감정이 반응할 수 없도록, 내 육체가 더 이상 자신의 주장을 하지 못할 만큼 처절하게 자신의 겉사람을 부수는 시도를 말합니다. 공동번역은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27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에서 접속사 ‘알라(그러나 but)’를 해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알라는 강한 부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알라에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쉽게 번역해 보면, 나는 방향도 모른 채 경주하지도 않으며 허공에 주먹을 날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내 몸을 사정없이 때려서라도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몸부림칩니다. 어이없게도 나는 내가 전한 복음의 기준대로 살지 않으므로 자격미달이 되어 탈락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육체의 훈련이 필요하다>
몸의 훈련 없이 자유롭게 기도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몸, 곧 육체대로 살지 않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성령의 뜻을 따라 사는 육체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체의 훈련은 영적 성숙과 깊이를 더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영의 통치를 받기보다 육체적인 욕망과 오랜 날 동안 만들어진 습성에 의해 움직입니다. 아무리 다짐을 해 보아도 육체의 강력함 때문에 번번히 포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는 위험합니다.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영의 생각을 따라 몸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습관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을 때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특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기도가 포로생활을 단축시키는 일도 아니었고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는 능력의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상적인 기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도는 특별한 기도였습니다. 위가가 오자 특별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한 무리들이 다리오에게만 30일간 기도하게 하는 금령을 요청하였고 어길 시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이었는데, 다리오 왕을 그것을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은 금령을 받은 뒤에도 ‘전에 행하던 대로’(단6:10) 하루 세 번씩 기도를 하였습니다.
다니엘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외국인 신분이었고 왕의 금령이었지만 조금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지극히 자연스러웠습니다. 이미 기도가 일상이 된 것입니다. 영의 생각을 따라 몸이 사는 것이 생활화된 것입니다. 몸에 영의 생각이 새겨진 것입니다.
이처럼 몸이 따라가도록 기도가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몸의 습관적인 훈련이 필요하지만 마음의 훈련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마음과 몸이 같이 훈련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배웠던 침묵기도 곧 수동적 기도는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옛사람의 생각과 감정의 죄성을 제거하는 훈련입니다. 동시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몸이 하는 능동적 기도는 몸이 기도를 기억하게 하는 훈련입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은 침묵기도로 부정하고 영의 생각을 따라 기도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마음과 몸에 온전히 새겨질 때까지 해야 합니다. 영이 원하면 기도하는 존재, 곧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영적인 존재가 될 때까지 계속 해야 합니다.
훈련) 기도하고 싶어지고 그때마다 기도가 된다면 영이 살아있다는 증거 중에 하나입니다. 그때 드리는 기도는 영적인 능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십시오.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할 수 있습니까?”
20190417 한교회 수요기도회 ‘절대 1시간 기도’
05 먼저 듣고 기도하라
기도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들은 것을 토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남 유다가 멸망 앞에 있을 때 유다는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 듣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빨리 잘못을 시인하고 징계를 받자고 권면합니다.
*예레미야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지금은 심판을 모면하기 위해 기도할 때가 아니라 회개하고 잘못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나서야 하는 시간임을 예레미야는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기도의 깊이는 말씀이 들리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말씀묵상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듣기 위해서는 내면의 더러움과 소란스러움을 잠잠하게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능동적인와 함께 내적 침묵가운데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수동적인 기도 또한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면이 정리되면 될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주님의 뜻을 듣고 따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3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듣고 따라야 합니다. 언제나 기도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이것저것을 계속 구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기 자신의 문제에 집착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사실을 안다면, 우리의 기도 내용과 질이 달라질 것입니다. 주님은 ‘아신다’는 말씀에 이어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 나라와 의에 초점을 둔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때 가능해집니다. 그때 비로소 기도가 성숙해집니다. 무조건 기도를 길게 해야 좋은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듣기입니다>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는 위험합니다. 주님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엉뚱한 기도를 드리고 엉뚱한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는 주님의 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기 마음대로 떼를 쓰고 응답을 받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위주의 소원성취일 뿐입니다.
*요한복음 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무엇은 간구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듣기입니다. 그때 우리가 구해야 할 기도가 보일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비로소 내가 책임을 지고 기도해야 할 내용을 알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기초한 기도자였습니다. 때문에 그의 기도는 정확하였고 분명하였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을 때 예레미야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멸망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도뿐이었습니다. (기도의 절정)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야 가능합니다. 그때 기도는 억지로 하는 기도, 겉치레 기도가 아닌 전심을 다하는 기도, 온전한 기도로 바뀌게 됩니다.
숙제) 기도의 깊이는 말씀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달려가 바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동안 나의 태도는 어떠하였습니까?
20190424 한교회 수요기도회 ‘절대1시간 기도’
06 기도하고 행동하라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주인에게 속한 양은 주인의 말을 듣습니다. 주인과 함께 살아온 날 동안 주인의 목소리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라면 우리도 그 목소리를 분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잘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 음성 듣기가 어려운 이유>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과 함께 있을 때,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과 같이 하나님이 전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셨지만 사무엘은 목소리는 들었지만 하나님인 줄 알아채지 못하고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 알았습니다.
삼상3: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어린 사무엘은 이런 일을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이 부르신 줄 알고 사무엘에게 그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사무엘은 하나님 음성에 반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성숙입니다. 성숙하면 잘 들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성숙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요즘 사업이 힘들고 엄마도 곧 큰 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아들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들에게 아버지가 심부름을 몇 차례 시켰지만 듣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다른 방도를 찾게 됩니다. 그때부터 아들은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일조차 희구해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과거 언제는 들은 것 같은데 지금 들리지 않는 이유는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철없는 크리스천’이어서 그렇습니다. 그 결과 들어도 듣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사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하나님만 말씀하시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롬10: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음성이 들리면 바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이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음성을 듣는 사람을 통하여 일해 오셨습니다. 심지어 들을 수 있는 자에게만 말씀하십니다.
<기도한 만큼 행동한다>
모세는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래 애굽에서의 열 번의 재앙과 출애굽 사건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홍해 앞에 섰을 때였습니다. 늘 하나님과 교제하던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느 ㄴ가만히 있을 지니라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꾸짖으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도 기도하는 것을 나무라십니다.
출14: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따응로 행하리라
하나님은 이미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모세는 행동해야할 때에 여전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꾸짖으시며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모세는 분명히 그 상황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두려워서 행동하지 못하고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기도하고 응답이 들리면 그 응답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기도한 만큼 행동하고 말씀을 들은 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 시대의 위기는 기도하는 사람이 적어진 것도 문제이지만, 기도한 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며, 설령 말씀하시더라도 그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숙제)
들리면 반드시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는 진실로 기도다운 기도가 될 것입니다.
최근에 들은 주님의 말씀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드렸던 기도는 무슨 내용입니까?
어떻게 결정했고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20190501 한교회 수요기도회 : 절대 한 시간 기도
07 기도는 기적이다
<기도는 놀라운 기적이다>
한 사람의 기도가 민족이 죄로 멸망에서 돌이키게 하며,
죽을 자가 생명을 얻으며, 죄가 사해지기 때문입니다.
출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이같은 능력의 기도가 우리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의 관계를 쌓아가는 어느 날, 우리도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만한 무게를 가진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기도는 기적이 됩니다.
<기도에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분명히 기도는 놀랍고 위대하지만 우리가 기도의 깊이까지 들어가는데 어려움이 있듯이 기도는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기도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동시에 기도는 우리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렘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처럼 우리의 간절함과 전심을 보시고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간절함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기도는 온전한 기도가 되어 사람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며, 죄를 사함받도록 중보하는 권세조차 누리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바울에게 물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온통 걱정과 근심거리가 가득 차서 기도하기 힘든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바울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속상한데 기뻐하라니요! 어처구니없는 대답처럼 들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때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기뻐하며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우리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힘이 없어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형질이 바뀔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위암<절제 수술<새로운 식습관<새로운 존재 방식)
우리는 원래 죄된 존재이기에 처음부터 기도가 즐겁지 않습니다. 어쩌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면 어느 날 익숙하게 되고 다니엘처럼 당연한 삶의 방식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관계를 맺는 존재가 될 때 우리의 기도는 놀랍고 특별한 기도로 변화가 됩니다.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구하면 정말 주실까?>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셨지만, 우리에게 이같은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다음 말씀에서 설명해 주십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 먼저 성취되어야 합니다.
이 조건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원하는 것을 구한다는 것은 이미 기도가 응답될 수 없는 조건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구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영적 성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실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삶의 문제는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버지께서 아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마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래서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가 개인적인 문제로 흐르는 것을 아시고 이같이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같이 차원 높은 기도를 요청하신 것은 제자들이 성숙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 역시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의도적으로 이같은 기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직 온전하지 않지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 곧 성숙한 기도를 요청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 드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주님의 뜻이 드러나 있는 성경 말씀을 이해하고 비밀들을 파악하면 됩니다. 주님은 다른 경로로 자신을 계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때문에 기도의 사람은 말씀의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기도의 힘을 얻고 기도의 제목과 영감을 얻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숙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왔다면 말씀을 읽거나 들으면서 감동이 올 때 기도가 더 잘되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어떤 말씀을 들었을 때였지 생각해 보십시오.
20190508 한교회 수요기도회 : 절대 한시간 기도
08 모든 기도를 하라
<24시간 기도는 가능한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상태를 말합니다. 때문에 24시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영적 각성 상태이고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일치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사실 하루 종일 기도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지 ‘한 시간’기도이지만, 그것도 힘든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을 넘어 모든 순간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자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그렇게 기도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의 의미는 ‘멈춤이 없이’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완전히 하나님과 연결된 상태입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24시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말씀에는 ‘모든 순간에 기도하기를 시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순간에 쉬지 않고 기도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도에 대한 편견을 깰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의 범위나 기도의 종류, 기도의 장소에 대한 확장이 필요합니다.
<모든 일, 모든 상황에서 기도하라>
가장 기도하기 쉬운 곳은 교회입니다. 반면, 영화나 TV를 보면서 기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방법의 핵심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삶의 사소한 영역까지도 기도의 범위를 넓혀가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모든 일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친구랑 이야기할 때, 드라마를 볼 때, 책을 읽을 때 등 거의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배 중 설교시간에 심지어 말씀묵상과 큐티할 때도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권면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모든 종류의 기도를 하라>
우리의 기도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교회에서 입을 열어 기도하는 것을 기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모든 기도’는 모든 종류의 기도를 말합니다.
에베소서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기도에는 통성기도, 침묵기도, 묵상기도 다양한 기도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찬양도 기도가 될 수 있고 우리의 태도가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탁월한 기도방법은 기도문을 쓰는 것입니다. (앱/예수동행일기)
<모든 장소에서 기도하라>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까닭에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디에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장소의 경계를 깰 필요가 있습니다. 극장이 놀라운 기도처가 될 수도 있고 도시 한복판, 길 위도 기도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을 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절대 1시간 기도가 가능해진다>
모든 일에, 모든 장소에서, 모든 종류의 기도를 하라. 이같이 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목표 ‘절대 한 시간 기도’가 가능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도 중의 하나가 ‘기도문 기도’입니다.
예) <기도일기>
1. 아침에 일어나 누운 채로 잠시 눈을 감고 하루 시작기도를 드립니다. 제일 먼저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합니다. 묵상하면서 주신 말씀을 기도문으로 적습니다.
2.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을 합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기도노트의 기도문을 하나씩 읽으면서 기도를 합니다.
3. 회사에 도착해서 분주하게 일을 하지만 순간순간, 화장실 가는 순간에도 기도 노트에서 한두 개의 기도문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갖게 된 영적부담감과 기도의 부담감을 기도문으로 기록합니다.
4.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갈 때도 기도 노트의 기도문을 보며 기도합니다. 집에 돌아와 차 한 잔을 하면서 기도문을 다시 한 번 보면서 기도합니다.
기도의 장애 중에 하나가 사람들의 시선입니다. 그런데 기도문을 쓰는 것은 어느 누구도 기도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눈을 감을 필요도 없고 기도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까닭에 기도문을 쓰고 그 기도문을 반복하여 읽는 것은 기도를 계속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 될 뿐 아니라 하루 한 시간 기도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기도숙제> 기도문을 쓰면서 기도해본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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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5 한교회 수요기도회 : 절대 한시간 기도
09 설교와 큐티로 기도하라
<다시 24시간 기도는 가능한가>
모든 일에, 모든 장소에서, 모든 종류의 기도를 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문을 써서 기도하는 방법은 기도를 계속 이어가는 일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기도문을 적기 쉬울 때는 설교를 들을 때입니다. 설교는 우리 삶에 적절하게 적용된 것이기 때문에 설교를 듣다 보면 깨달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그 말씀을 기도문으로 바꿔 적습니다.
<등가교환의 법칙 : 눈이 부시게>
1.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부모님의 희생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주셨다. 다시 한 번 감사하자!
2.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눈부신 것을 눈부시게 보지 못한다. 가족/직장/교회/이웃 ... 서로를 눈부시게 보자!
3. 나쁜 눈/나쁜 마음을 고쳐주셔서 이쁜 눈/이쁜 마음으로!
<성경을 읽거나 묵상/큐티할 때>
말씀을 묵상할 때 깨달은 것으로 기도문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시편1편을 가지고 기도문을 만들어 봅시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예) 악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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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모임/신도회 모임 나눌 때>
지체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깨달은 것을 기도문으로 쓸 수 있습니다. 수술을 앞둔 환우, 입대를 앞둔 자녀, 유학 중에 있는 자녀, 태의 열매를 위해서, 자녀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 등
하나님은 지체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까닭에 함께 삶을 나누는 시간에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때도 놓치지 말고 기도문으로 옮겨 적는 것을 습관해해야 합니다.
10 기도할 때 기도가 보인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가장 중요한 기도의 내용은 기도할 때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 가장 바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 때문에>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마16:13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제자들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해로 대답하였습니다.
마16:14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에 만족해하시면서 축복해주셨습니다. 놀랍게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생각을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일은 오늘 우리에게도 벌어질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역할 때문입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오순절 성령 사건 이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임한 것은 주님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할 때, 그들의 설교는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행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이 같은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인지하는 것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강력한 기도를 요청하십니다.
마10: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은 더욱 강력하게 일하시며 기도의 내용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에게 ‘기도의 영’으로서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구할 바를 부어주시고 기도하게 도우십니다. 그래서 기도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감동시킬 때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며 하나님의 마음이 들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기도할 때 주의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 기도제목을 꼭! 기록해야 합니다.
20190522 한교회 수요기도회 : 절대 한시간 기도
11 모든 순간에 기도하라
<예기치 못한 기쁨>
낯선 곳에서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것은 그 만큼 성숙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정점에는 오히려 늘 낯선 곳, 낯선 일, 낯선 사역들이 존재하였습니다.
베드로가 피장이 시몬의 집 옥상에서 기도할 때 본 환상은 부정한 짐승들이 담긴 바구니였으며 주님께서 그것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환상으로 인해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게 됩니다. 그 낯설고 이상한 경험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이방인 사역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사실 낯선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통로는 한계가 없으십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영국의 기독교 변증가였던 C.S.루이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형이 과자상자로 만들어준 장난감, 꽃이 피어있는 까치밥나무 덤불의 냄새, 바그너의 음악’ 일상 속에서 ‘예기치 못한 기쁨’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TV를 보다가, 신문을 보다가, 길을 걷다가, 책을 읽다가 우리는 예기치 못한 기쁨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때의 그 기쁨과 은혜를 기도문으로 기록해두면 평생에 남을 기도제목을 간직하게 됩니다.
12 기도문이 기도다(주기도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주신 이유는 첫째, 자신의 문제에만 빠져 있는 기도의 모습을 고쳐주시기 위함입니다. 둘째, 기도를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주기도문은 읽는 것으로 기도가 됩니다. 읽는 순간 기도가 됩니다. 기도문이 기도인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겸손의 기도가 그 주된 내용입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뿐만 아니라 더 많은 양식과 부요를 구합니다. 결코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문제의 초점을 지금 하루에 두라는 뜻이고, 미래의 문제와 하나님 나라의 문제에 시선을 고정하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쓰게될 기도문과 기도제목은 주기도문이 그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읽기도만 해도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9개의 기도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서 내 기도문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온 우주 만물, 이 땅뿐만 아니라 하늘나라까지 주관하시고 우리의 세밀한 부분까지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나의 아버지여!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그 이름만으로 거룩하시고 높으십니다.
3.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 내가 내 자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가 내 몸과 마음 안에도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임하셔서 나의 주가 되시고 다스려주옵소서.
4.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죄와 악을 이기시고 결박하셨습니다. 세상의 방법과 시스템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거룩한 문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꽃피기를 기도합니다.
5.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들 중에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옵소서.
6.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위해 아무조건 없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 언제가 그 은혜에 힘입어 우리에게 죄 지은 이들을 용서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하게 하옵소서.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우리 스스로의 욕심에 의해 생긴 시험에 빠져 헤맬 때도 하나님의 주권으로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주옵소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8.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우리가 여전히 세상의 욕심을 사랑하여 스스로 죄악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 때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해주옵소서. 감당할 수 없는 악한 세력이 엄습할 때,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9.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기도드리는 이유는 하늘과 땅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 아버지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모든 영광 하늘 아버지 홀로 받으시옵소서.
20190529 한교회 수요기도회 : 절대 한시간 기도
<4부 한 시간 기도의 실제> 13 한 시간 기도방법
<하루 세 번 기도 중에 중심기도 시간을 정한다>
마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이 책의 목표는 문자 그대로 주님이 원하셨던 하루 한 시간 기도를 하는 것에 있습니다. 여전히 하루 한 시간 기도가 쉽지 않습니다. 삶의 환경과 여건 때문에 한 시간 기도를 한꺼번에 시작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했던 ‘하루 세 번 기도’를 우선 제시하고자 합니다. 하루 한 시간을 세 번으로 나눠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니엘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루 삼등분해서 20분씩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 목표는 연속해서 한 시간을 기도하는 것이지만 여건상 삼등분했을 뿐입니다. 다만 하루 세 번의 기도 중 한 번은 한 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중심기도’로 정해야 합니다.
침묵기도로 시작합니다.
침묵기도의 중요성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조용히 거하는 것이 기도의 기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우리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묵함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침묵기도의 또 다른 유익은 죄와 더러움의 문제가 떠올랐을 때 흘려보내며 그 죄의 실체와 내용을 아는 것입니다. 그 죄의 실체를 기도 노트에 적어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2. 말씀묵상으로 기도합니다.
침묵기도 후 말씀묵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기도 하고, 우리를 깨우치고 영적 성숙으로 이끌며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줍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 묵상을 할 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해야 합니다. 자신이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바로 진실한 기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 역시 기도 노트에 적습니다. 말씀을 통해 주시는 기도제목은 강력합니다.
3. 통성기도를 통해 의지를 표현합니다.
침묵기도와 말씀묵상기도 후에 우리는 자신이 쓴 기도 내용을 읽으며 소리를 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리를 내며
20190605 한교회 수요기도회 : 절대 한시간 기도
14 목표, 일천 번의 기도
<솔로몬의 일천번체>
주님이 베드로에게 한 시간 기도 요청을 하셨습니다.
한 시간이 처음부터 힘들기 때문에 다니엘의 기도처럼 하루 세 번에 나누어 드리자고 결단하였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려고 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 기도입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3대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로운 왕이 되고 싶은 마음에 드렸던 것이 일천 번의 제사였습니다. 문자적으로 계산해 보면, 하루 한 번씩이면 3년, 하루 세 번씩이면 1년간 지속된 예배였습니다. 지극히 겸손한 표현이었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천 마리를 한 번에 드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주일, 혹은 한 달, 천이라는 숫자는 최대치를 의미)
솔로몬이 드린 제사와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기도였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자신의 영광과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고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에 완벽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솔로몬은 3000마디의 잠언과 1500편의 노래를 지었고 세상만물을 논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가졌습니다.
왕상3: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일천 번 기도의 목표>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축복에 더 관심을 기울이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목표를 부차적인 것에 두어선 안됩니다. 언제나 기도의 방향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영적 성숙을 구할 때 솔로몬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지혜를 주시고 영적 성숙에 이르도록 반드시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 기도의 목표와 방법이 정해졌습니다.
한 시간 기도는 주님과 늘 함께 하고 싶은 열망의 표현이고
하루 세 번 기도는 늘 무너지는 나를 넘어서 기도가 습관이 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일천 번의 기도는 영적 성숙과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자 하는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이 세 가지 방법으로 절대 1시간 기도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1. 하루 한 시간 기도(기도의 목표이자 출발점)
2. 하루 세 번 기도(중심 기도, 짜투리 기도)
3. 일천 번의 기도(1년 동안 지속성으로 훈련)
하루 세 번,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하고, 일천 번, 곧 거의 1년을 기도한다면 우리는 놀라운 기도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면 성경의 약속대로 성령께서 우리를 실제적으로 도우실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간절함의 추구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놀라운 기도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절대 한 시간 기도 십계명>
잠에서 깰 때는 언제나 기도로 입을 연다.
기도 없이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다.
기도할 수 없을 때는 없다. 오히려 기도하기 어려울 때 기도한다.
기도는 숨을 쉬듯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죄이다.
응답 없는 기도는 없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신다.
늘 기도 노트를 지니고 다니며 수시로 기도한다.
기도가 쌓이면 기도는 자연스러워진다.
기도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한다.
기도가 부족하여 주님의 일이 방해받으면 안 된다.
20190612 한교회 수요기도회 : 절대 한시간 기도
15 성전을 향하라
1. 하루 한 시간 기도(기도의 목표이자 출발점)
2. 하루 세 번 기도(중심 기도, 짜투리 기도)
3. 일천 번의 기도(1년 동안 지속성으로 훈련)
<솔로몬의 기도>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지은 후 여호와의 언약궤를 지성소에 옮겼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였습니다.
왕상8: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던 솔로몬은 감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왕상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왕상9: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하나님께서 성전, 곧 정해진 공간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반드시 들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제한된 장소는 아니지만, 성전을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 당신을 제한하신 은혜의 장소로 삼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왕상8:35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36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
성전을 향해 서는 것은 기도의 문제 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전을 향하여 서기만 하여도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언제나 자신들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내가 성전을 향하는 순간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꿈이 있는 교회, 직분자에게 나침반 십자가를 선물, 언제든지 성전을 향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 스마트폰 앱)
절대 1시간 기도를 하는데 성전은 중요합니다. 일상생활에서 기도모드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자기가 섬기는 교회를 향하여 몸을 돌리는 순간 놀랍게 기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의 방향)
20190612 한교회 수요기도회 : 절대 한시간 기도
16 기도 노트의 비밀
<모세의 기도노트>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호렙산에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에 대하여 진멸할 계획을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놀라운 기도를 하였습니다.
출32:12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모세는 하나님이 이전에 맺은 약속을 기억하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진노를 그치셨습니다. 모세의 기도로 철회된 것입니다.
출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잊으신 것을 모세가 기억나게 하셨다는 뜻일까요? 반대입니다. 오히려 모세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머릿속에 말씀을 적어놓은 노트가 있었던 것이고, 그 말씀이 기도의 내용이 된 것입니다. 모세는 일종의 기도 노트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매일 그 말씀을 기억하며 잊지 않았던 것이고 이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기도의 근거는 기억이었고 그 기억의 내용은 하나님의 약속 곧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강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기도의 사람들은 말씀을 통하여 기도의 힘을 얻고 기도의 제목과 영감을 얻습니다. 때문에 기도의 사람은 말씀의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도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왕상8: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우리의 기도 내용을 성경 말씀에 기초해서 하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기도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면 완전하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기도 노트 정리법>
기도문을 쓸 때 크게 두 개의 내용으로 나눠 쓰는 것이 좋습니다. 영적 성숙을 위한 평생기도와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시적기도입니다. 앞 페이지부터 평생기도를 쓰고, 뒤 페이지부터는 일시적기도를 쓰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1. 평생기도를 적을 때는 번호를 붙이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의 분량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0개만 쌓여도 30분 이상을 기도할 수 있습니다.
2. 일시적기도를 적을 때는 최소6번을 기도하고 필요하면 그 기도를 더 지속합니다. 바를 정자 正를 표시하고 여섯 번째는 O표를 하고 마칩니다.
기도노트를 사용하는 것만큼 기도제목을 기억하는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기도노트를 사용하면 모세처럼 기억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기도를 부릅니다. 성령께서 기도를 도우시기 때문에 기도노트를 보며 기도를 시작했을지라도 더 깊은 기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위한 준비>
기도노트는 준비되었나요?
하루 세 번의 기도 시간은 정해졌나요? 중심기도 시간은 언제인지 적어봅시다.
일천 개의 기도문을 쓸 때까지 함께 기도하고 격려할 지체들이 있나요? 최소 1명 이상 함께 할 기도 동역자를 찾아 그 이름을 써보고 싸인을 받으세요.
<기도문을 적는 방법>
평생기도가 중요합니다. 평생기도와 일시적기도를 구분하여 따로 적어야 합니다. 일천개의 기도문을 적는 것은 영적 성숙에 초점을 둔 평생기도에만 적용합니다.
기도문체로 적습니다. 읽을 때 바로 기도가 될 수 있도록 기도문체로 적으며 두세 줄 정도가 적당합니다.
일련번호를 붙입니다. 매일 기도문을 몇 개씩 써 내려갈 때 번호를 붙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100개 500개 1000개 목표를 두고 기도문을 쓰는 것이 동기부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번호와 함께 한달 단위를 날짜를 적어 두면 후에 내 영적 상태의 변화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쓴 기도문부터 거슬러 기도합니다. 기도할 때는 매일 기도문을 쓰면서 기도하는 것과 함께 이전에 썼던 기도문들을 순서대로 읽으면서 기도합니다. 오늘 쓴 기도문부터 번호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기도합니다. 오늘 못다 끝냈다면 내일은 어제 끝난 번호부터 시작합니다.
절대1시간 기도십계명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목표는 하루 한 시간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루 세 번 기도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일천 번의 기도 즉 1년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제 울가 기도를 시작하면 성령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기도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놀라운 기도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기도의 십계명을 보면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절대 한 시간 기도 십계명>
1. 잠에서 깰 때는 언제나 기도로 입을 연다.
2. 기도 없이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다.
3. 기도할 수 없을 때는 없다.
오히려 기도하기 어려울 때 기도한다.
4. 기도는 숨을 쉬듯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한다.
5.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죄이다.
6. 응답 없는 기도는 없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신다.
7. 늘 기도 노트를 지니고 다니며 수시로 기도한다.
8. 기도가 쌓이면 기도는 자연스러워진다.
9. 기도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한다.
10. 기도가 부족하여 주님의 일이 방해받으면 안 된다.
20190619 한교회 수요기도회 : 절대 한시간 기도
1. 침묵기도(5-10분)
2. 말씀묵상(15분) : 신명기22장 1-4절
하)
인)
나)
<평생기도문 50>
001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막14:37) 늘 깨어 절대 1시간 기도가 가능한 기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002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1:17)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존합니다. 온전하게 주를 믿게 하옵소서.
003 성경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004 기도를 쉬는 것은 죄입니다.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늘 깨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005 기도 없이는 행동하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가 나의 행동이 되게 하옵소서.
004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는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죽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옵소서.
005 성숙하지 않은 십자가는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온전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006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 말고, 세상에 대해 어리석음을 자랑하며 예수님처럼 겸손과 자기 비움을 자랑하게 하옵소서.
007 결코 나를 자랑하지 말게 하시고, 나를 나 되게 하신 주님을 자랑하게 하옵소서.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008 아무도 없을 때 우리는 무너집니다. 언제나 주님을 의식하며 주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하옵소서.
009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셔서 닫힌 눈이 열리게 하시고 귀가 뜨이게 하시며, 완악한 마음이 깨닫게 하옵소서
010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고전2:2)’한 바울처럼 나도 인간적인 지혜를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게 하옵소서.
011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잠26:11) 반복적인 죄를 짓지 아니하고 늘 깨어 하나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012 내 뜻이 아니더라도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행18:21)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예수 중심 신앙으로 살게 하옵소서. 그런 영적 성숙에 이르게 하옵소서.
013 기도가 쌓여 기도가 기도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014 예수님이 결론이 되게 하옵소서. 삶의 모든 방향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두게 하옵소서.
015 하나님을 더 알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 가득한 존재가 되게 하옵소서.
016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게 하시고, 자신을 과신하지 않고 언제나 깨어 죄를 멀리하게 하옵소서.
017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벧전1:24)는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날마다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018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며’(마7:6) 소중한 주의 말씀과 복음을 내팽개치고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게 않게 도와주옵소서.
019 다니엘처럼 기도의 특별함은 일상생활에 있습니다. 날마다 잊지 않고 나의 일상의 기도를 지키게 도와주옵소서.
020 ‘전에 하던 대로’(단6:10) 기도한 다니엘처럼, 저도 언제나 동일한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기도생활을 지키게 도와주옵소서.
021 무엇이 잘되지 않고 막힘이 있을 때 민감하게 주님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묻게 하옵소서.
022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 사람의 모양으로’(빌2:7-8) 나타나신 주님, 저도 비우게 하시고 겸손을 배우게 하옵소서.
023 매일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 또 비웁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주여 채우시옵소서. 내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하시옵소서.
024 기도로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내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시고 끝가지 간구하게 하옵소서.
025 기도하는 것이 쉼이고 말씀이 음식이며 예배가 즐거움입니다. 내게 다른 방법으로는 쉼이 없습니다. 날마다 영적 잔치상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026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사43:19) 매일 매일 우리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기억합니다. 주님의 일들을 따라갈 수 있게 힘을 주옵소서.
027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모든 일에 하나님과 대화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기도가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
028 나보다 앞서 모든 일을 행하시고 거룩한 계획을 이루시는 주님, 내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빌1:6) 것을 믿습니다.
029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다’(사45:5)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는 줄 믿습니다.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030 늘 피곤한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내 육체를 함부로 쓰므로 영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시간을 잘 조절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031 내 안에 생긴 죄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이 소멸되지 않게 하옵소서.
032 죄악으로 폭주하는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브레이크가 되게 하시고 바른길로 이끄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033 나는 ‘그리스도의 것’(고전3:23)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담대하게 이 세상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034 늘 주님을 손님 취급했던 것을 용서하옵소서. 이제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주님이 나의 주님임을 고백합니다.
035 나의 나 된 것은, 나의 모든 것은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모두 주님의 은총입니다. 잊지 않게 하옵소서.
036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깊은 친밀감을 누리는 단순하고 간결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037 내가 훈련되지 못하여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며 죄를 반복하는 것은 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입니다.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038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 어디에나 가득한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영성을 종에게 허락하옵소서.
039 모든 것이 잘될 때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주의 뜻을 따르게 하옵소서.
040 절대 교만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인이지만 원래 흉악한 죄인이었음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041 괜찮은 죄는 없습니다. 사소하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깨어 있도록 이 죄인을 도와주옵소서.
042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 늘 거룩을 추구하게 하옵소서.
043 티끌 같은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그 재 가운데서 우리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존재로 살겠습니다. 도와주옵소서.
044 거룩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모든 여정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045 기도는 호흡입니다. 쉴 수 없습니다. 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숨쉬는 기도의 삶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046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여’(고전6:11) 그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옵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047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 그 말씀대로 삶의 영역에서 주님을 기억하며 따르는 거룩한 종이 되게 하옵소서.
048 열심히 공부하게 하옵소서. 주님 알기를 멈추지 않게 하시고 깊은 영적 추구가 나의 영적 성숙을 이루게 하옵소서.
049 내 부정한 입술을 때립니다. 내 더러운 입을 때립니다.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용서하시옵소서.
050 ‘성경대로’(고전15:3)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성경 밖으로 나가지 말게 하시고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 안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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