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고민해야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추도예배, 추모예배
얼른 들으면 참 괜찮은 것 같다.
기독교적인 냄새도 나고 제사를
지내지 않고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돌아가신 어른들, 조상들의 돌아가신 날짜에
예배로 모여서 한다
얼른 보면 참 괜찮아 보이나
이게 굉장히 무서운 함정이 들어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간에 태생 자체가,
살아온 삶의 문화 자체가 오랜 세월 몇 천년
동안 우리나라 민족이 내려오면서 그 곁들어진
영적인 DNA가 특별한 DNA가 형성돼 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모든 우리 조상들의 삶의 근본이 무속신앙!
자연을 섬기고 천지신명을 섬기고
용왕을 섬기고 뭔가 계속 섬기지 아니하면
안 되는 정말,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가장 섬김이 깊었던 정안수 뜨고 늘 빌고
아무리 예수 믿고 구원받아 성령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제 기독교 신자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정말로 믿음으로 산다 하지만
그 밑바닥 피의 흐름!
그 밑바닥에 영적인 DNA의 흐름이 깔려 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깔려 있다고 해서 그렇게 믿고 사는 건 아닙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
문제는 예수님 믿고
드디어 모든 귀신과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기일이 되면
의도적으로 안다.
"아, 이건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영이 아니고, 악한 영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그 이름을 도용해서 우리의 효성을 이용해서
우리로 하여금 딱 코를 꿰고 영적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있구나
알긴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이 오면 마음속에 오늘,
우리 아버지 제사날인데,
오늘이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날인데
오늘 우리 할아버지의 기일인데..라는
의식이 딱 들면 그때부터 거기에 대한
자기도 모르는, 가장 무의식적인
밑바닥에서부터 뭔가가 딱 걸려든다.
우리는 신앙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절대 NO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추도예배라는 것이 슬쩍 들어와버렸다.
추모예배, 추도예배
돌아가신 아버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날에 모여서 하나님께
추도하는 예배를 드리겠다.
얼른 들으면은 참 괜찮아 보인다.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 모든 생각을 STOP 해놓고, 생각해 보면
예배는, 알다시피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철저하고도
가장 원본적인 어느 것도 가미될 수 없는,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하고
모든 예배의 중심!
주인공, 받으시는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거기에 추도 예배라는 것이 슬쩍 들어와버리면
추도 예배는 누구를 추도하냐?
우리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를 추모하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추도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 예배에 누군가 끼어들어있다.
전적인 하나님께 드린 예배 속에 뭔가 슬쩍
끼어들었다.
추모?
추도? 이 작은 차이 하나가
전체적인 분위기가 확 헷갈려버린다.
이제 그 어둠에서 빠져나와야 된다.
이런 식으로 꼭 추도, 추모예배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좀 눈을 넓게 보면
다양한 예배가 있다.
어떤 분은 책을 쓰고
출판 기념 예배를 드린다.
얼른 보면은 참 감사한 일
자기가 책을 써서, 감사하니까 이 책 다 쓰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겠다?!
하나님은,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 그분이 책 쓰고 출판했는데
관심이 전혀 없다.
특히 예배에 관한 한, 관심 없다.
개인적으로야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시든지, 은혜 주시는지 능력을 주실 수 있다.
그의 믿음의 역량대로
기도의 역량대로
그러나 적어도 예배라는 이름이 딱 들어온
순간부터는, 하나님은 그분이 쓴 책, 출판
전혀 관심 없다.
예배에 관해
연결되면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께서 받는 예배,
하나님의 영광, 이것밖에 없지
거기에 누군가 쓴 책 출판했는 기념 예배가 들어와?
아닌 거다.
어떤 데 가면
50주년 창립 기념 예배! 하고 아주 거창하다.
그것도 얼른 보면은 맞는 것 같아 보인다.
50년 동안 줄기차게 번성해 온 이게 하나님께 감사하니까
우리가 예배로 드리겠다!
참.. 맞는데 하나님은 그 공장이나 그 기업체나
그 단체의 50주년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왜 거기.. 예배가
오직 하나님은 예배자와
하나님밖에 없다.
그 사이에 50주년? 끼어드는 것?
별로 원치 않으실 것이다.
그 예배자와 하나님과의 그 관계 그 진실한
그 정해 놓은 예배의 아름답고 신성하고
경건한 틀 속에.. 출판 뭐.. 추모
추도.. 창립.. 이런 것들이 끼어들어 가지고
예배 혼선을 가져오고
예배의 초점을 흐리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
우리는요, 그걸 잘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말씀에
우리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야
라고 예수님이 직접 하신 오리지널 말씀이다.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이시다.
죽은 자는 추모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죽은 자에 대한 추도가 있을 수가 없다.
죽음으로 끝났다.
친족,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같이 모셔 살다가
돌아가시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야멸차다고요? 비정하다고요?
원리입니다.
돌아가신 순간, 이미 구원받아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뭐 어디를 가든 간에
일단, 이 땅과 끝이다.
다시는 되돌아와서 어쩔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의 품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계속 그날 되면, 추모 추도 그 예배라는 이름으로 또 갖다 들어붙는다.
마귀의 전략은..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들과
우리 조상들의 그 끈을
우리와 계속 이어 놓기를 원한다.
어떡하든지, 이어 놓기를 원한다.
그래야만이 삶과 죽음의 그 분명한
하나님의 그 창조 질서를
헷갈리게 만들어가지고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추모하고 추도하고 기일이 되면
예배란 이름으로 또
거기에 악한 영이 역사 안 하겠는가
악한 영들은
끊임없이 잡아댕긴다.
그나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조금 덜하나, 예수 모르는 사람들은
이 마귀가 연결해 놓은
죽은 자의 그 이름과 우리의 이 삶의 끈을
연결해 가지고 이걸 못 놓게 만든다.
이거 놓으면 불효이고 비정한 놈이고
이걸 놓아버리면 천하의 부모도 알지 못하고
조상도 모르는 아주 쌍놈으로 연결되니까 이걸 못 놓는 거다.
못 놓고 끊임없이
그 사망의 냄새 속에
죽음의 그림자 속에 현실과 같이
섞이는 거다.
그러니까, 추도예배 추모예배?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럼 어떤 분들은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신 그분을 위해서
우리가 같이 모여서
추모도 하고 싶고 한데, 어떻게 합니까?
비정하지 않습니까? 아니다.
방법이 있다.
추모, 추도예배는 없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죽은 자들은 예배로 연결될 수가 없다.
단지 하나 방법이 있다.
기일날 모이든지
돌아가신 날짜가 있으면
편의상, 그 주 아니면
그 전주, 어쨌든 형제간들이
다 모일 수 있는 날들을 찾아서
그날을 정하고 모여라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리면 된다.
가족 예배!!
오직 하나님께 예배!!
거기에 추모, 추도 돌아가신 분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가족들 형제들이 모여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구원의 은혜, 우리 가정에 베푸신
놀라운 하나님의 그 은총, 이게 감사해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예배가 마치면 음식 먹고 비로서
돌아가신 아버지
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건.. 추모예배가 아니다.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출판 기념 예배?
그거 안 된다.
그건 진짜 하나님의 이름을
내, 영광에, 내 이름의 내가 어떤 그 책 판매에
그냥 갖다 도용하는 것밖에 안 된다.
할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다.
모여서 가족들끼리, 친척들끼리, 정말 책과
관계없이, 출판과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께 감사
감사 예배 드리고
그다음에 출판 기념회! 따로 하면 된다.
하나님을 거기에 개입시키면 안 된다.
예배라는 이름으로 어떤 것도 개입하면 안 된다.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결과까지 나올 수가 있다.
그러니 결론은, 너무 확실하고
명쾌하고 간결하다.
예배는 어느 때도 붙여서 될 것이 아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가장 신성시되고 가장 거룩히 여겨지고,
가장 경건히 여겨지는
가장 우리의 삶에 모든 걸 다 바치는 예배
그 외에 모든 것은 그냥 하나의 행사다.
그렇게 하지 이것을 연결시켜 가지고
무슨 예배, 특별히 또
추도예배는 더더욱 더 악한 영들에게 속을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많다.
가장의 명수, 교활한 명수
그 더러운 것들이 어느 곳,
어디에서 하나님의
중심에서 조금만 어긋나 버리면
활을 당겨서 피융
쏴서 화살이 날아서 과녁 한 중앙에
팍 맞아야 되는데,
조금만 비켜 나가도
그거는 성경적으로 죄라고 그런다.
"죄"의 단어가 그렇게 되어있다.
예배라는 가장, 하나님이 정해 놓은
창조적인 하나님의 그 질서의 거룩함 앞에서
조그만 흔들려 가지고
다른 게 개입돼 가지고
우리 조상, 우리
어머니 아버지니까.. 우리 조상이니까..
라고 하는 이런 어떤...
문화적인 전통적인 아니면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효"적인 이런
문제를 가지고 흔들려 버리면 전체가 다 흔들리는 것이다.
[출처] 추도예배/ 추모예배에 대하여 / 박효진 장로님/예배의 주인|작성자 알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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