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소망 (박현안)
*2017 대표수필선집 중에서
내 나이 어느덧 여든이 넘었다. 직므 내 나이쯤인 때의 어머니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머니는 여든 이후의 나이를 ‘너무 나이(남의 나이)’라고 하셨다. 외할머니가 85세일 때 “너무 나이를 다섯 살이나 먹어도 건강하다”시며 자기는 건강하게 “백 살까지 살기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오래살기를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장수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우리 어머니는 “나는 백 살까지 살기다”는 바람이나 말씀에 그치지 않고 평소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였다. 젊은 시절 식량부족으로 배불리 먹지 못했을 텐데 노후에 먹을 게 많아도 절대로 과식이나 편식을 안했다. 식구들에게도 음식은 좀 모자란 듯 먹으라고 하였다. 대신 고루고루 먹고 식사시간과 자고 일어나기를 규칙적으로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어머니는 쉬지 않고 일하는 게 몸에 배였다. 여름에는 삶을 겨울에는 모시를 째거나 삼는 등 길쌈거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항상 정리정돈을 하고 집안을 깨끗이 쓸고 닦았다. 이런 일들은 요즘 장수비법인 팔운동, 손바닥운동과 같은 것이다. 마당가의 웅덩이에서 바가지로 손수 물을 떠서 걸레를 깨끗이 빨아 마루와 방을 닦고, 더운 여름에는 마당에 수시로 물을 뿌렸다. 물을 뜨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펴니 허리운동이 되고 두서너 계단을 오르내리니 걷기운동이 되었다. 이런 일들이 요즘 건강을 위해 권하는 팔다리 운동이다. 따로 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일을 운동 삼아 몸에 무리가 안 가게 가볍게 하였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인지 모르지만 정말 건강하게 오래 사셨다.
우리 어머니의 제적등본을 보면 출생 1899년 4월 14일, 사망 1988년 4월 12일, 사망신고는 4월 14일로 되어있다. 희한하게도 요즘 사람들엑 회자되고 있는 ‘구구 팔팔 이삼 사’라는 말이 연상되게 한다. 1899년에 출생하시어 1988년에 별세하여서 9988의 숫자와 맞아 떨어진다. 호적상으로는 89세에 돌아가신 것으로 됭있지만 돌아가신 당시 실제 나이는 93세였다. 어머니는 민적에 3년 늦게 올렸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영, 유아 사망률이 높아 출생신고를 2, 3년 늦게 하는 상례였다고 한다. 영유아 때 홍역으로 사망을 많이 해서 홍역을 치르고 살아남아야 출생신고를 하였단다. 어머니도 2살에 홍역을 해서 3년 늦게 호적에 올렸다고 하였다. 어머니 말씀과 시대상황으로 미뤄보면 우리 어머니는 아흔 세 살에 돌아가신 것이다. ‘백살까지 살기다’의 소원을 7년 못 채루고 가셨다.
어머니가 여든 다섯이었던 겨울방학에 고향에 갔을 때였다. 어머니와 큰형님 내외분과 아침밥을 먹은 후였다. 어머니가 예나 다름없이 걸레로 방을 닦고 계시기에 불편하신 데가 없는지 여쭈었더니 마음에 품고 있었던 듯 말씀하셨다. “내 나이 여든 다섯이다. 네 외할매 만큼 살았다. 인제 더 살면 뭐하것노? 큰 아들, 느그 큰 성이 네도 알다시피 젊을 때 광견병 개한테 물려서 팔다리를 제대로 못 놀린다 아이가. 나이가 많아지니 걷는 거나 움직임이 점점 안 좋아 보인다. 그러니 자식 앞세울까 걱정이 되어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어머니가 가만가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여든 살부터를 남의 나이라고 하지만 너거 외할매도 나도 남의 나이를 먹은 게 아니다. 남의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남의 신세를 많이 지면서 산다는 뜻이다. 나이 많으면 일도 못하고 노망이 들면 식구들에게 고생을 시키니 남의 나이를 먹는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친정어머니는 들에서 일을 하시다가 집에 와서 점심을 드시고 내가 한숨자고 나갈 테니 먼저 일하러 가라고 일꾼들을 내보내고 주무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죽을 때까지 일하고 남에게 폐 끼친 일이 없는데 남의 나이를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되물었다. 우리 어머니는 팔십 다섯이 지나서도 길쌈을 하셨고, 통시(화장실)도 혼자서 다녔다. 죽을 때까지 일하고 내 발로 다닐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서인지 아흔 세 살까지 사시다가 한 달 정도 병석에 누었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우리 어머니 말씀을 회상하며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죽을 때까지 ‘내 나이’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건강을 지켜야 한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제시간에 챙겨 고루고루 먹으며, 음식의 고마움을 음미하며 오래 씹어 먹어야겠다. 과식과 편식은 절대 안된다. 흡연은 꼭 피하고, 술, 과음도 안된다. 운동이 청춘의 샘이라고 한다. 적당한 운동, 적당한 휴식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 해야겠다.
돌이켜보면 당시 어머니의 소망이 곧 지금 나의 소망이다. 어찌 내 어머니와 나만의 소망이겠는가? 나이 팔순이 넘은 모든 노인들의 희망이 아닐는지? 나이가 많아도 소망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은 나만의 바람인지 모르겠다. 원하는 것, 성취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으면 하루하루의 생활에 활기가 넘치고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였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롤 접어 든 일본은 노인성 치매문제로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도시 곳곳에 요양병원, 요양원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병원에 누워서 대소변도 못 가리고, 치매상태로 오래 산다면 좋은 것이 아니다. 여기서 스피노자의 말이 떠오른다. “내일 지구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민들레 2017. 제23호. 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약력 : 월간 수필문학 등단(2002), 특수학교 교장 퇴임,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회원, 수필집 '서로가 기둥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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