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

  • 커뮤니티 >
  • 생각나누기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역사(김경재 교수)
박준원 2018-01-17 추천 1 댓글 0 조회 570
월간 중앙 제 2811999.4.1. 한국의 종교(16) /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 장로회 120년 역사를 이끌어온 시대의 선각자

 

김경재 한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목사

 

남북분단 50년의 정적을 깨뜨리고 민족화해와 통일운동의 물꼬를 터놓은 문익환 목사, 유신 시절 민주화운동의 큰 어른 김재준 목사, 5·16 후 필봉을 휘두르며 군사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장준하 선생. 이들은 모두 기독교 장로회 출신 선각자들이다. 생활신앙을 강조하는 진보적 교단, 기장의 역사를 살펴본다.

 

70년대 인권운동의 중심이었던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수십개 교파로 갈라져 난립하고 있는 한국기독교, 곧 개신교 교파에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그리고 순복음교회라는 이름의 개신교단이 있다는 것을 알 정도다.

그러나 해방 후 남북분단 50년의 장벽을 홀연히 깨뜨리고 민족화해·통일·평화운동의 물꼬를 터놓은 문익환 목사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다. 70년대 군사정권이 불법적 3선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시도하려 할 때 재야 종교지도자 함석헌옹과 쌍벽을 이루며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의장으로 추대되어 민주화운동의 큰 어른으로 일했던 김재준 목사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날아가는 화살의 첨단에는 화살촉이 있다

지난 81년 저 비극적인 광주 5·18 민주항쟁사건과 관련하여 그 이름이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렸던 명노근·강신석 등 많은 지도자들, 전교조 운동을 끝까지 참교육 소신으로 관철시켜 오늘의 합법적 교사단체로 이뤄낸 윤영규 교사, 성남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세상에 알리고 그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이해학·김해성 목사도 있다.

민중신학과 통일신학을 제창했던 안병무·박형규·홍근수 목사 같은 분들, 미군 기지촌에 두레방이라는 빵공장을 차리고 버림받은 여성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여성들도 있고, 최근 방송법 개혁작업을 위해 위원장으로 활약한 크리스찬아카데미 이사장 강원룡 목사도 있다.

지금 대통령이 된 김대중씨와 함께 76명동사건으로 알려진 민주구국선언을 함으로써 옥고를 치른 11명 중 윤반웅·안병무·서남동·문동환·이우정·문익환·이해동씨 등 절반 이상이 모두 기장사람이다.

이러한 모든 별난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이들은 모두 한국개신교 교파 중에서 진보적 사회참여 신앙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교단 소속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되 좀 점잖고 편안하게 믿지않고 별난 행동을 하는 듯 보이며, 세상 사람들을 어떤 때는 놀라게 하기도 하고 불안하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도 하는 짓들을 많이 저지르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신앙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일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개신교의 도덕적, 영적 공신력과 신뢰도가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리는 이때 이런 별난 사람들의 신앙적 신념과 기독교 복음 이해를 이 글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공기를 가르고 날아가는 화살의 방향은 화살 중에서도 화살촉이 감당한다. 화살촉은 공기를 가르고 날아가면서 화살의 진행방향을 결정한다. 화살의 화살촉처럼 한국 개신교 교단 중에서 역사의 향방을 맨 앞에서 선도하고 역사의 저항을 온몸에 받으면서 달려가는 진보적 교단, 생활신앙을 강조하는 교단, 인권·민주·통일문제 등이 신앙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확신하는 교단이 기독교 장로회라는 교단이다.

한국 개신교사를 해석하는 두가지 서로 다른 사관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종교와 현실, 교회와 정치,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그 양자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관점의 차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개신교 보수교단들이 해석하는 관점인 선교사-식민사관은 그 양자를 철저히 구별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기독교를 인간 영혼구원 문제로 국한시키고 현실적 문제, 예를 들면 인권·민주·평등·자유·독립·통일·복지문제 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정교분리원칙을 고수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서양 기독교 문화전통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고 한민족 문화전통 일체를 정복해야 할 이교문화(異敎文化)로 규정하여 선교과정에서 전통 종교와의 심각한 갈등을 유발시킨다.

반면 민중-민족사관에서는 거룩과 세속, 종교와 정치, 교회와 현실적 삶, 구원사와 세속사 등 그 양편이 구별되기는 해야 하지만 결코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 진리 말씀의 성육신 신앙자체가 성속(聖俗)의 분리를 용납하지 않고 현실 속에 진리의 육화(肉化)를 통하여 속()을 높은 경지로 승화시켜 가는 과정으로 교회의 과제를 이해한다.

민중-민족사관의 기독교 해석은 성경이 증언하는 창조주 하나님이 선교사들과 함께 처음으로 19세기 말 한반도에 기독교 전래와 더불어 입국한 서양 기독교 문명권에 속한 문명권적 신이라고 보지 않는다. 한민족 우리 조상들의 삶과 고난, 믿음과 사랑, 신실과 진리증언 속에서 줄곧 함께 하시고 격려하신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증언 속에서 확연하게 진리 사랑 정의의 하나님으로 뚜렷하게 계시된 것을 믿는 것이다.

 

민중-민족사관으로 본 한국 개신교의 빛과 그림자

교회 2천개소, 신도 40만명 정도의 기독교장로회는 한국 개신교의 화살촉으로서, 역사변혁의 향도로서 항상 최첨단 역사현장에 서 있는 진보적 교단이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 농민·노동자·빈민선교, 산업선교, 민주인권운동, 통일운동, 열린 문화선교 등의 전위대로서 기장은 언제나 개척자적인 역할, 예언자적인 기능을 감당해왔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현대사 격동기를 거치며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거명되었던 기장 인물들을 보면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 같은 창조적 소수 신앙집단기장의 정체성이 좀더 명료해진다.

 

일요예배를 드리고 있는 경동교회 내부.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한 대표작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사람을 열거해 보면 김재준·김정준· 강원룡·문익환· 문동환·김관석· 박형규·은명기·윤반웅·강희남·이우정·안병무·장준하·서남동· 노명식·강문규· 황성규· 홍근수· 이해동·김상근· 권호경·박종화· 이해학·김성재·강신석·명노근·윤영규· 정동련·조아라·윤기석 등이 있다.

물론 위에서 거명한 이름들은 한국 개신교의 화살촉을 구성하는 더 많은 기장 인물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교회사를 해석하는 눈으로써 민중-민족사관을 지지하는 기독교장로회가 보는 한국 개신교 120년의 발자취를 정리해 보자.

 

1기 복음의 수용과 반봉건 개화기(1876~1900)

쇄국정책이 끝나고 타력에 의해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한 1876, 북간도 만주땅에서는 조선 청년들이 처음으로 개신교도로 세례받았다. 이 사건은 외세의 침입과 동시에 밀어닥친 개화 물결과 함께 한국개신교가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수용과 반봉건 개화기에 해당하는 제1기는 한국 근대사의 격동기였다. 1896년 서재필·윤치호·이상재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했다. 성서는 당시 언문으로 번역 출간돼 민중 속에 깊숙이 보급되었다. 초창기 창조적이고도 헌신적인 선교사들은 20년 후의 경직화된 선교사 무리들과는 다르게 열린 마음의 소유자들이었다.

1893년 선교정책의 기조도 노동자·농민·가정주부들에게 우선 전도할 것, 지방도시에 기독교 사립학교와 병원을 세울 것, 성서 번역을 한글로 하고 널리 보급할 것, 교회의 조직·운영·경영을 철저히 민주적이고도 자치적으로 해결하도록 지도할 것 등을 기본 정책으로 내걸었다.

1기 한국 개신교는 개화와 자주를 갈망하는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여 한민족 사회 속에서 새 누룩새 포도주로서 사회변혁의 촉매가 되었다. 한국 개신교 교회는 전래 초기부터 민중적이고, 민주적이고, 민족적 색채를 띠면서 전파되었다.

 

2기 교회의 착근과 민족 독립운동기(1900~1920)

2기는 한국 개신교가 한민족 마음밭에 굳건히 뿌리내리는 중요한 시기였다. 1905년 일본의 강제합방이 이뤄지자 민족은 비탄과 고난의 광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한국 개신교는 조선독립과 민권운동의 중심처로서 민족의 희망의 샘터가 되었다.

평양 장대현 교회당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개신교의 대부흥운동’(1907)은 그동안 부정적 평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그리스도인들의 민족의식을 신앙의 내면화 과정으로 전환시켜 버린 신앙의 탈정치화 계기가 되었다고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일방적이고 단순한 이해다. 부흥운동을 통해 더 굳건한 신앙적 힘을 축적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중심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길선주 목사가 33인 독립만세사건 민족대표자로 활동했고 남강 이승훈 선생 등 33인의 민족대표 서명인 중 16인이 기독교인이었던 것만 봐도 생동하던 당시 개신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1910년대를 전후하여 황해도·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인들의 민족운동이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큰 고난을 겪은 것만 봐도 한국 개신교는 제2기에도 개화운동, 농촌계몽 봉사활동, 자주독립운동, 신분차별 철폐, 남녀차별 철폐, 노동의 신성성 고취, 교육과 현대의료사업 전개, 한글 보급과 문맹퇴치 등 눈부신 활동을 통하여 한민족의 고난과 시련에 깊이 동참했음을 알 수 있다.

 

3기 교회의 탈정치화와 시련기(1920~1940)

20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한국 개신교는 본래의 자기모습에서 이탈하여 크게 변질된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 이후 한국 개신교는 두가지 경향으로 대별될 수 있다. 그 하나는 교육을 통해 힘을 길러 자주독립을 준비하자는 교육계몽운동이요, 다른 하나는 현실적으로 일제의 식민정책에 절망한 나머지 신앙 태도가 몰역사적이고 탈정치화해감으로써 민족과의 연대성을 잃어버리고 복음의 자기정체성 상실을 가져온 신비주의 운동이다.

 

개신교 전래 초기부터 민중적·민족적 색채

크리스찬 아카데미 이사장 강원룡 목사(). 조선신학교를 설립한 김재준 목사.

 

의식있는 개신교 지도자들은 투옥되거나 해외로 망명하고, 평양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당시 한국 선교사들이 길러낸 교역자들의 지적수준은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따라잡지 못했다. 20년대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유물론적 사회사상이 난무할 때도 기독교는 그에 응대할 지적·정신적·영적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보수화, 교리화, 경직화해갔다.

민족의 희망의 샘터였던 교회로 모여들었던 뜻있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교회는 선교사들이 전해 준 근본주의 보수신학으로 세뇌된 교권주의자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소설가 이광수나 동아일보가 논설을 통해 기독교 지도자들의 무지를 경고하고 기독교 신앙의 종교적 게토화를 질책했다. 30년대 한국 개신교는 주기철 목사와 같은 순교자 몇명의 고귀한 신앙을 제외하고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모두 굴복하고 말았다.

 

4기 교회 분열과 교회의 권력포로기(1940~1960)

1940년을 전후하여 한국 장로교회는 신학운동 측면이나 사회운동에서 개신교 초창기의 창조적 역동성을 잃고 경직되어 갔다. 근본주의적 신학으로 무장한 보수적 선교사들의 통제된 신학교육으로 인해 세계 수준의 다양한 신학운동의 정보에 무지했다. 이로부터 근본주의 보수신학에 예속당하는 불행이 시작되었다.

성경무오설에 입각하여 생물학의 진화론이 거부되고 지구 진화의 발전과정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가 무시되었으며 한국문화는 고대 가나안의 이교문화와 동일시되었다. 복음이라는 아기를 담고 있는 말구유까지 그 모두를 절대진리라고 주장하는 오류를 범했다. 결국 신앙은 지성과 충돌하고 신앙의 정치적 현실참여는 신앙 탈선으로 매도되었다. 45년 이후 해방정국과 한국동란 이후에도 한국 개신교는 분열과 교권투쟁이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보수적 교권주의와 선교사 중심의 배타적 보수신학 주입교육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이 기독교 장로교회의 사상적 모체가 된 조선신학교. 조선신학교는 순수한 한국인들의 헌금과 한국인 교수의 주체적 신학운동으로 새출발하게 되었다(1940). 김대현·함태영·김재준·송창근 등이 조선신학교 창설 과정에서 창조적 소수자로 핵심적 씨앗이 되었다. 조선신학교는 그후 한국신학대학으로 발전하고 오늘의 한신대학교가 되었다.

53년 보수적 한국 장로교 교단은 김재준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적 신학운동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목사직을 박탈하고 축출했다. 이에 기독교 장로교 교단으로 새출발하게 된다(1953). ‘한국신학대학기독교 장로교의 신앙노선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 학문연구의 자유와 성서연구방법론의 수용, 바리새적 경직신앙의 철폐와 살아있는 그리스도 신앙의 생활화, 노예적 의존사상 극복과 자립·자주적 신학 형성, 세계교회 형제들과의 연대 강화 등을 기본 정신으로 내걸었다.

 

5기 교회 각성과 민주화 투쟁기(1960~1980)

19604·19 학생의거 민주혁명과 19615·16 군사구데타는 역사의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르던 한국 개신교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진보적 개신교 교단인 기장마저 개신교 내부의 신학논쟁과 교회분열 이후 자기정돈에 정력을 집중하느라 민족사 및 민중의 고난 현실에 둔감하거나 외면했던 것이 사실이다.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으면서도 불의를 자행하는 세력집단에 대해 비판하거나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장로 대통령인 이승만의 자유당 권력에 아부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분단사회 극복 위한 선교적 사명 실천

한국 개신교는 65년 군사정권이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한 대단히 굴욕적인 한일협약 체결을 비판하는 범교회적 집회를 개최하여 민족 문제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 터져나온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은 한국의 개신교가 민중-민족교회로 복귀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재발견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민중신학이 기장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출현했다.

70~80년대 한국 개신교는 두가지 흐름으로 나뉘게 되었다. 한 주류는 한국교회협의회(KNCC)를 중심으로 하여 노동자·농민의 인권과 권익보호투쟁, 민주주의 가치의 사회적 실현, 사회정의 확립을 위한 투쟁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러한 역사현실참여적 신앙운동의 선봉에 항상 화살촉처럼 기독교장로회가 있었다. 다른 한편 근대화·공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의 정신적 공백을 치유하고 소시민들을 격려하는 복음주의적 대부흥집회가 자주 열려 개신교 교세 성장에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후자의 교회성장론, 교세확장운동이 인간공동체의 정의·자유·평화와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는 복음의 본질에 충실했는가 하는 비판적 성찰이 교회 안팎에서 일기도 했다.

 

6기 통일운동과 사회문화선교 실천기(1980~1999)

80년 이후 한국사회는 민족분단이라는 근원적 모순이 남북의 인권탄압, 경제환란, 도덕적·정신적 역량의 침체와 관련된 태생적 죄라는 자각이 싹트게 되었다. 이로부터 기장은 분단사회 극복을 위한 선교적 사명, 통일과 평화문제 연구에 역량을 집중했다. 894월 통일을 앞당기려는 문익환 목사의 방북은 냉전으로 얼어붙은 채 고착화되고 터부시된 통일 논의를 한민족의 중심과제로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휴지가 되다시피한 ‘7·4 남북공동성명이 천명한 민족자주, 상호존중, 교류협조, 평화통일의 정신을 실천으로 살려내야 한다는 정신이 진보적 개신교단을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났다.

또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추구하는 하나님의 선교신학의 근본정신을 기장을 비롯한 진보적 개신교단들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교회 자체가 궁극목적이 아니다.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교회를 전진기지로 쓰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삶의 전영역에서 정의·자유·평화·생명의 건강한 조화를 실현시켜감으로써 내세만이 아니라 현세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는 신앙고백이다. 그리하여 기장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 생태계 보전과 지속가능한 사회발전, 책임사회윤리 실천, 그리고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복음적 재해석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기장교단은 매우 개성이 강하고 색깔있는 개혁파 신앙정신을 이어가는 진보적 장로교 교단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만 경외하고 모든 인간적 역사적 가치와 권세를 상대화시킴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인간자유를 확보하려 한다. 성경의 말씀을 강조하되 복음적 신앙진리가 삶의 전영역에서 사회윤리적 변혁의 능력으로 작동하도록 성육신적 영성을 지향한다.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강조하되 교회가 과거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개혁해 가는 열린 공동체가 되기를 지향한다. 기장 교단의 선교정책은 정의·자유·평화·창조세계의 유기적 연대성과 생명가치를 우선시하는 기조 위에서 오늘도 화살촉으로서 역사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김경재 교수) 박준원 2018.01.17 1 510
다음글 김은국의 순교자를 읽고 박준원 2018.01.16 1 608

51161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도계로95번길 6-10 (도계동) TEL : 055-277-9940 지도보기

Copyright © 한교회 ;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59
  • Total200,136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