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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 문혜림여사(김명선권사님) 20220402 광장의 소리
박준원 2022-04-01 추천 0 댓글 0 조회 340

<인권운동가 문혜림 여사>

오늘 광장의 소리는 김명선 권사님께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기지촌의 대모 문혜림 여사 (KBS다큐)

https://youtu.be/Ow73TALIR4M


두레방을 시작으로 소외된 한국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

 

▲ 고 문동환 교수와 고 문혜림 여사.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었던 2014년 12월에 촬영한 기념 사진 ⓒ문영미 선생 페이스북

 

고 문동환 교수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문혜림 여사(Harriett Faye Pinchbeck Moon)께서 3월11일 미국 자택에서 소천하셨다.

한국 기독교교육과 민주화, 통일운동에 큰 역할을 하셨던 문동환 교수(1921-2019)가 유학을 위해 도미했다가 귀국한 1961년 당시 40의 나이로 결혼했다.

유학을 마치고 그 당시 한국신학대학교의 교수로 부임하기 위해 귀국한 남편과 함께 문혜림 여사는 한국사의 가장 어두운 시대를 겪기도 했다.

또한 박정희 독사독재정권의 탄압으로 1975년 한국신학대학에서 해직된 문동환 교수는 1976년 두 차례 옥살이를 겪어야했다.

신군부가 다시 들어서면서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85년 다시 귀국한 문동환 교수는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특히 문혜림 여사는 한국 사회에서 늘 소외되었고 배제되었던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문혜림 여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1986년에 시작한 의정부 ‘두레방’ 활동이었다.

문혜림 여사가 의정부 기지촌 여성들을 알게 된 것은 미군 부대에서 상담사로 일하면서부터였다.

이 과정에서 미군 전용 클럽에서 미군들을 상대하는 한국 여성들이 법적·의료적 어려움을 호소할 데가 없다는 걸 깨닫고 기지촌 여성들을 돕는데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두레방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 여성들에 대한 인권에 눈을 뜨게 해준 문혜림 여사의 기여는 두고두고 잊혀지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국내에서는 3월 20일(일) 오후 3시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한빛교회’에서 추모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이후 문혜림 여사의 유해는 한국으로 돌아와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문동환 교수의 옆에 나란히 눕게 될 것이다.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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