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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에 대해서
박준원 2024-06-12 추천 1 댓글 0 조회 65

15장 교회론


(정의) 교회론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변하고 발전해 온 제도를, 변화하는 사회정치적 상황에 비추어서 이론적으로 합리화하려고 노력하는 신학분과다.

먼저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존재했으며, 그로부터 교회의 정체성과 소명을 이론적으로 성찰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번 장의 목표는 놀라운 발전 역사에서 등장한 여러 쟁점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1. 성경에 나오는 교회 모델

교회는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과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연속성이 있음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구약성경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1) 구약성경

미국 구약성서학자 월터 브루그만1933은 이스라엘이 한 백성으로서 자기네 정체성과 목적에 대한 의식을 발전시켜간 과정에서, 그들이 처한 서로 다른 상황에서 형성된 세 개의 톡특한 단계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번째 단계는 기원전1250-1000년, 사울을 중심으로 군주국가를 세울 때까지의 기간이다. 이 때 성전과 제사장, 현자, 예언자들이 없었다.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제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핵심 이야기를 향한 공통의 헌신을 통해 다듬어졌다.

두번째 단계는, 기원전1000-587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면서 끝나는 이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군주정치의 지배를 받았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을 다음 네 가지 특성으로 설명한다.

(1) 성전과 그 제사장들은 오랜 기간 합법적이고 확고한 지도력의 원천이 되었다.

(2) 왕들은 국가 세속적 지도력을 주고하였으며 동시에 성전 및 제사장들과 동일한 종교적 이념과 가치에 헌신하였다.

(3) 잠언은 현자들의 집단에 대해, 서구 지식인 계급과 유사한 사람들로서 국가에 지적합법성을 제공하였다.

(4) 예언자들은 국가에 특별한 어려움이나 혼란이 있을 떄 하나님의 인도를 베푸는 대리자로 활동하였다.

브루그만은 세번째 단계가 예루살렘 주민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에 나타났다고 보았다. 포로기 이후 시대에 이스라엘은 상당히 작은 국가였으며, 페르시아과 그리스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는 일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되찾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였다.

2) 신약성경

신약성경은 이스라엘과 기독교 교회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교회의 대표적인 다섯가지 모델을 살펴본다.

(1)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교회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공유하면서 연속성을 지닌다고 강조한다. 바울은 기독교인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게 보았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고 부름 받았다. (벧전2:9)

(2)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응답함으로써 시작되었으며 또한 그 구원 사역을 세상에 선포하고 전파하는 도구로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되어 증언하고 땅끝까지 나아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책이을 맡은 무리라고 말한다.

(3)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바울서신 속에서 발견되며,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되었음을 보증해 주는 것은 신자 개인의 믿음과 세례이다. 참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자가 연결되었다고 보는 요한복음에 의해 다시 강조된다.

(4) 종 된 백성인 교회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부르셔서 당신을 섬기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교회를 선택하여 섬기도록 부르셨다. 교회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두 개의 중요한 그리스어 단어는 둘로스(종)와 디아코노스(봉사)이다. 바울은 고린도에있는 신자들에게 자신을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5)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

사도행전에서 교회 내의 성령의 님재와 활동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령의 임재에 힘입어 교회는 증언하고 자라게 된다. 교회 내의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의 새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표징이며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서 교회가 독특한 역할을 맡았음을 보이는 표지다. 성령은 개인의 구속과 교회의 선교를 보증해 주는 증표이다.

위와 같이 신약성경에서 발견되는 교회의 모델 중 일부일 뿐이다. 아직도 완전히 그 비밀이 밝혀지지도 않았다.

다음으로 그 계승자들이 이 과제를 수행한 방식을 살펴본다.


2. 초기 교회론의 발전

처음 5세기 동안 그리스 교부 사상가들은 주로 성서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교회를 설명하는 것에 만족했으며, 더 깊이 탐구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펠루시움의 이시도루스는 교회를 바른 신앙과 탁월한 삶의 방식으로 하나 된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하였다. 당시 의견의 일치를 이룬 견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교회는 영적인 사회이며, 이스라엘을 대신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2) 모든 기독교인은 서로 다른 출신과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된다.

3) 교회는 참된 기독교 가르침을 간직한 보고다.

4) 교회는 전 세계의 신실한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그들이 신앙과 성경함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이끈다.

교회론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극심한 박해상황이라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누스의 회심과 더불어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초기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지도자들 사이에 경쟁관계가 형성되었다. 결국 로마의 주교(1073년부터 papa)가 가장 막강하고 중요한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우월성에 대해 동방교회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단언하였지만, 다른 교회들은 교황은 로마에서 순교한 성 베드로의 계승자라고 보았다. 게다가 로마는 대로마제국의 수도이자 영원한 도시였다.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는 기독교 세계 전체에 대한 로마 교황직의 수위권을 열렬히 옹호한 서방 사상가이다. 이 문제는 특히 종교개혁시대에 중요하게 등장하였다.


3. 도나투스 논쟁

서방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논하는 신학적 성찰에 속도를 내게되었다.(논쟁<교리 발전) 교회론의 경우 로마가 지배한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도나투스 논쟁으로 일어났다.

교회에 대한 박해는 303년에 시작되었으며(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284-305) 콘스탄티누스의 회심과 313년 밀라노 칙령의 발표로 끝났다. 303년 2월에 나온 칙령은 기독교서적을 불사르고 교회를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이 때 자기네 책을 불태우도록 내어준 기독교 변절자(자기책을 넘겨준 traditores<변절자 traitor) 중 한사람인 압툰가의 펠릭스로 그는 311년 체칠리아누스를 카르타고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그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변절자가 성직 임명에 개입한 데 대해 분개했으며, 체칠리아누스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사태로 가톨릭교회의 성직 체계가 오염되었다.

**누미디아의 70명의 주교와 사제가 이를 반대하여 체칠리아누스 대신 마요리누스를 세우는 이중선거가 있었다. 마요리누스가 죽자, 뒤를 이어 도나투스를 세웠으며, 박해시 배교한 성직자의 성사는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체칠리아누스를 지지하여 로마와313, 아를르314 종교회의를 통해 토나투스파의 결정을 일축하였다.(폭동억제목적<321관용령발표로 화해시도) 카르타고 종교회의411 이후 도나투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여 탄압하였다. (교회와 국가 유착반대, 폭동, 순교찬양, 종말사상으로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열광주의자들, 7세기까지 존속)

388년 아우구스티누스가 아프리카로 돌아왔을 때, 한 분리파가 아프라카 지역민들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주도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분리파 도나투스주의자들은 대체로 토착 주민들에게 지지를 받았으며 가톨릭 사상가들은 로마의 식민지 이주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도나투스주의자, 이탈한 아프라카 교회 지도자인 도나투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3세기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는 <보편교회의 단일성>에서 두가지 중요한 신념을 옹호하였다.

첫째 교회 분열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교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구원의 가능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둘째, 따라서 타락하거나 떨어져 나간 주교들은 성례전을 행하거나 성직자로 일할 모든 자격을 박탈당한다. 또 그들에게 임명받은 사람들은 부당하게 임명된 것으로 보아야 하며, 그들에게 받은 세례는 그릇된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주교가 박해를 받아 타락하고서는 곧바로 회개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키프리아누스의 이론은 서로 다른 두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1) 그 주교는 타락함으로써 배교의 죄를 지었다. 따라서 스스로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간 것이며 이제는 더 이상 성례전을 거행할 수 없다.

2) 그 주교는 회개함으로써 은총에로 회복되었으며, 따라서 성례전을 온당하게 거행할 수 있다.

도나투스주의자들은 첫 번째 견해를 따랐으며, 가톨릭 사람들은 두 번째 견해를 받아들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비해 훨씬 더 확고하게 신약성경에 근거했다고 생각한 교회론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도전에 대응하였다. 그는 기독교인의 죄성을 강조하였다.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순수한 몸이 아니라 성도와 죄인들이 섞인 몸이라고 보았다.

그는 성경의 두 가지 비유를 근거로 주장한다.

첫째는 물고기 잡는 비유이며, 둘째는 더 중요한 곡식과 가라지 비유이다.

착한사람과 악한 사람을 가르는 일은 역사 안에서가 아니라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비유를 세상 속의 교회로 보았다. 교회 안에 성도와 죄인이 함께 있다. 그 둘을 나누는 것은 부적절하고 시기상조다. 나누는 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인 역사 마지막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심판할 수 없다.

타작마당의 비유에서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으며 이제 곧 둘을 가르게 된다.

도나투스주의자들에게 타작마당은 세상 전체를 뜻하며 그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 둘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순수한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며 쭉정이는 그대로 세상 속에 있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타작마당이 곧 교회이며 알곡과 가라지가 모두 그 구성원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교회를 어떤 의미에서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거룩함이란 교회 구성원들의 거룩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함이다. 교회는 구성원들이 원죄에 오염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에 의해 성화되고 거룩해지며, 이 거룩함은 최후 심판 때에 완전해지고 최종적으로 실현된다. 그는 도나투스주의자들은 자기들이 내세우는 고결한 도덕 기준에 맞추어 살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들도 똑같이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례전 신학에 있어서 비슷한 논점을 주장하였다.

도나투스주의자들이 볼 때, 세례와 성만찬 같은 성례전은 도덕과 교리에서 완벽하게 순수한 사람이 거행할 때만 효과를 낼 수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주의가 지나치게 인간 행위자의 자격은 강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중요하지 않게 다룬다고 주장하였다. 타락한 인간이 누가 순수한지 불순한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교회를 성도와 죄인이 섞인 몸이라고 보는 그의 견해는 성례전의 효과는 성직자의 공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정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달린 것이다. 성례전의 효과를 최종적으로 보증하는 이는 그리스도이며, 성직자는 당지 이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 맡는다.

도나투스주의자들은 교회와 성례전 제도의 효과가 성직자의 도덕적, 신앙적 순수함에 달렸다고 주주장하였다. 따라서 복음의 은총과 치유의 능력은 교회와 성지가들의 순수성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직자와 성례전은 하나님의 은총의 원인이 아니라 단지 그 통로일 뿐이다. 도나투스주의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아니라 인간의 거룩한 행위에 근거한 것으로 만들 우려가 있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구원을 이루거나 유지해 가는 일에서 부차적인 역할로 밀려나고 인간행위자가 극히 중요한 일차적 역할을 맡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이해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 주제를 만난다. 인간 본성은 타락하고 훼손되고 연약해져서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는 믿음이다. 교회는 건강한 사람들의 모임보다 병원에 비유하는 것이 더 옳다. 교회는 죄용서와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치유받는 장소이다. 기독교인의 삶은 죄가 없는 삶이 아니라 죄에서 치유받는 과정으로, 치료가 끝난 환자가 온전한 건강으로 회복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온전히 의롭고 건강하게 되는 것은 오직 하늘나라에서만 이루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주의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죄는 이 세상에 있는 교회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이며, 교회 분열의 원인도 아니고 분열을 정당화하는 근거도 아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염려하고 혐오했던 교회분열이 16세기에 일어나게 되는데, 서부 유럽에서 종교개혁의 결과로 개신교 교회들이 독립한 일이다.


4. 개신교 초기의 교회론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그 시대의 교회가 은총론을 상실하였다고 확신하였고, 루터는 은총론이야말로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루터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교리가 교회의 존망을 좌우하는 신앙조항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잃어버린 가톨릭교회는 더 이상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가톨릭 교회는 루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교회에서 떨어져나간 분열주의자이며, 아우구스티누스가 그토록 경계하였던 분리파라고 비난하였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론을 거부함으로써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을 옹호할 수 있었다.)

이제는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을 살펴보자.

1) 마틴 루터(1483-1546)

교회론에 대한 루터의 초기 견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뻗어 나가 정복하며, 그렇게 말씀이 정복하여 하나님을 향한 참된 순종을 불어일으키는 모든 곳마다 교회가 존재한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믿어지고 고백되고 행해지는 것을 여러분이 듣거나 보는 모든 곳마다, 거룩한 공교회가 반드시 존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없이는 있을 수 없으며, 역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터가 볼때, 주교가 임명하는 성직, 사도적 교회와의 제도적 연속성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복음의 선포가 교회의 정체성에 본질적 요소이다. [말씀이 있는 곳에 신앙이 있으며 신앙이 있는 곳에 참된 교회가 있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로 세워진다.

필리프 멜란히톤1497-1560도 비슷한 교회관을 주장한다. 베텐베르크 대학교에서 루터와 함께했던 그는 교회를 은총의 수단을 베푸는 기능 면에서 이해하였다.

루터는 광신자들이(급진주의자들) 득세한 곳에서라도 그들이 말씀과 성례전을 부정하지 않는 한 그 교회는 거룩하다고 인정하였다. 그는 제도적인 교회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교회의 역사적인 제도는 하나님께서 은총의 수단으로 세우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중세의 교회는 참된 것처럼 보였을 뿐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고 보았다. (거짓교회이다.)

루터의 견해에는 난점과 약점이 있다. 그 이유는 1520년대 종교개혁 진영에서 대체로 가톨릭교회와의 분리를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540년대에 들어와 재결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꺠닫고 개신교 고유의 교회론을 세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라이 장 칼뱅이다.


2) 장 캘뱅 1509-1564

1541년 라티스본 회담이 깨졌다. 이 회담은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화해를 이루고 개신교도들을 잠시 떨어져 나온 교회로 다시 합치게 하려는 마지막 시도였다. 이로인해 이 둘의 화해는 불가능해졌다.

이후 새로운 개신교 교회론이 필요하게 되었다. 칼뱅은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여 16세기 가장 정교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가 볼 때, 참교회의 표지는 다음 두가지였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2) 성례전이 올바로 거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참 교회는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온전히 거행되는 곳에서 발견된다.

칼뱅은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로 구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교회는 기독교 신자들의 공동체로서 가시적 모임이지만, 또한 교회는 성도들의 교제이자 선택받은 이들의 무리로서 비가시적 실체이다. 전자는 선택박은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로 이루어지며, 후자는 선택받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진다. 전자는 현재 경험하는 대상이며, 후자는 신앙과 희망의 대상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종말론적인 성경을 띤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으로 인간을 다스릴 때 이루어질 교회이다. 이러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단일 실체이다.

이러한 교회의 구분은 두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보이는 교회는 선택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를 모두 포함한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칼뱅은 또한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논한다. 교회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하나님은 성육신을 통해 역사 과정 속에서 인간을 구속하셨던 것처럼, 이제 구속 목적을 이루고자 설립된 제도를 통해 역사 과정 속에서 인간을 성화시킨다. 교회는 곧 하나님이 세운 몸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은 선택받은 사람들의 성화를 이루신다.

칼뱅은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가 남긴 교회론의 공리 두 개를 인용하여 교회론을 확증한다.

- 교회를 어머니로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

- 교회 밖에는 죄 용서의 소망도 없고 구원도 없다.

다라서 교회의 제도는 영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고 유익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고 세우신 수단이다.


3) 급진 종교개혁

제바스티안 프랑크1499-1543와 메노 시몬스1496-1551 같은 급진 종교개혁자들은 제도로서의 교회는 인간의 권력 투쟁과 야망 때문에 타락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회심이후 교회와 국가가 결속함으로 완전히 더렵혀졌다고 보았다.)

[사도들이 죽은 후 적그리스도의 침입과 황폐화로 인하여 외형적인 교회는 은사와 성례전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성령과 진리 속에 숨겨지게 되었다. 1400년 동안 모인 교회나 그 어떤 성례전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참된 교회는 하늘에 있고 이 땅 위에는 그것을 모방한 어설픈 제도들만 있다. 교회와 세속 사회의 분리를 강조한 급진주의자들은 집권자들의 권위에 대해 도전하였다(?). 이들은 교회를 16세기 유럽 주류 문화 속에 있는 대안사회로 이해하였다. 박해시대에 로마제도 규범을 거부했던 것처럼 급진적 종교개혁자들도 16세기 동일한 상황에 존재하지만 그 안에 속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메노 시몬스에게 교회는 세상과 다투는 의로운 자들의 모임이지 섞인 몸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참된 회중은 참으로 회개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성령의 일하심을 통해 거듭난 마음을 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다.]

여기서 도나투스주의 교회관과 상당히 유사한 점을 볼 수 있다. 이들도 교회를 세상의 타락시키는 영향을 멀리하고 어떤 징계수단을 통해서라도 순결을 지켜내어 거룩하고 순수한 몸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념은 집권자들로 의인화된 적그리스도 세력에게 박해를 당한 재세례파의 경험과 일치하였다. 급진 종교개혁은 무저항 정책을 옹호하였다. 야콥 후터는 예수의 모범에 의지해 비정치적인 태도를 신학적으로 정당화였고 한스 뎅크는 폭력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슐라이트하임의 신앙고백1527에서 세속 권위에 대한 재세례파의 태도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6,7조에서는 세속 사건들에 대한 무간섭, 세속 권위에 대한 무저항의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무력은 그리스도의 완전 밖에 있는 것이며, 공동체 안에는 물리적 힘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칼을 그리스도의 완전 밖에 두도록 정하셨다. 기독교인이 관료로 일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정부의 통치는 육의 원리를 따르지만 기독교의 직책은 성령의 뜻을 따른다.]

재세례파는 출교를 통해 공동체 내부의 규율을 유지하였다.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규율의 수단이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다. 재세례파가 주류에 속하는 교회들과 철저한 분리를 주장하는 근거는 교회들이 교회 내에 제대로 된 규율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에서는 이 출교 교리를 말씀의 근거에 두고 있다. (마18:15-20)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무심코 실수와 죄를 저질렀을 때 축교를 명령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대로 두 번까지는 타이르고 세 번째는 징계하거나 출교해야 한다]

출교는 억제효과와 교정효과가 모두 있다. 폴란드의 라코우 교리문답은 재세례파 내에 엄격한 규율를 유지해야 하는 다섯가지 이유로 들고 있다. 그 바탕에는 분리정책이 깔려 있다.

- 타락한 교인들을 치유해서 다시 교회에 속하도록 하기 위해

-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 교회에서 혼돈과 무질서를 제거하기 위해

- 교회 밖에서 주의 말씀이 조롱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 주의 영광이 더렵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출교는 너무 가혹하게 해석되어서, 그 결과 출교당한 사람이나, 그 가족이 완전히 사회적 접촉을 끊어버리는(따돌림) 결과를 낳을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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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교회, 20세기의 주제들>

20세기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 교회론에 대한 관심이 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인류의 빛]에서 교회론 분야에 크게 자극을 주었다.

20세기 교회론에서 1세기 아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가 남긴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보편 교회도 있다>라는 명언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의 세가지 다른 방식을 살펴볼 것이다.

- 성례전, 그리스도의 연장

- 말씀+성례전, 케리그마공동체, 연장이 아닌 연합, 성령의 역할(사건됨)

- 성령, 뼈대 역할(보프), 교회론의 핵심(지지울라스)

1) 그리스도는 성례전을 통해 현존한다 - 가톨릭 입장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업적 중 하나는 성례전적 특성을 강조한 것이다. [인류의 빛]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일종의 성례전이다. 교회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보여주고 모든 인간이 하나 됨을 드러내는 징표이자 도구가 된다. 교회가 성례전이라고 말하지 않고 교회는 성례전과 유사한 것이라고 진술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세워진 교회라는 개념과 가시적 실체로서의 교회 개념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하였다.

이 개념은 성례전을 가시적 말씀이라고 본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분명히 나타난다.

교회를 성례전으로 보는 개념은 20세기 가톨릭 교회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현상은 복원의 신학의 등장한 일이다. 이는 초기시대 중 교부시대로부터 독창적인 주제들을 발굴해 이용하고자 한 신학으로 16세기 제도적 교회 개념과 대조되는 교회 본질 이해를 교부시대에서 복원해 냈다.

성례전으로서의 교회 개념은 [가톨리시즘]에서 앙리 드 뤼박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의회 이전신학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례전이라면 교회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성례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리하며, 진정 그분을 현존하게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참된 연장이 된다.

드 뤼박은 제도적인 교회관은 유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현존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해서 교회론의 명언은 교회 역할에 대한 성례전적 이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이 개념은 큰 인기를 얻었다. 예수회 신학자 오토 제멜로트는 1953년 [원초적 성례전인 교회]에서 <교회를 원초적 성례전>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물적 질서를 사용해 영적 질서를 드러내실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도미니크회 에드바르트 스힐레벡스의 하나님과의 만남의 성례전인 그리스도에서도 비슷한 주장) 이 개념의 영향으로 그리스도론과 교회론과 성례전론의 분야가 일관성을 지닌 전체로 통합되었다.

폰 발타자르는 성육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교회론을 세웠으며, 교회란 그리스도가 시공간 안으로 연장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예수회 칼 라너도 성례전적 교회 이해를 받아들여, 교회는 그리스도를 역사적이고 가시적이며 구체적인 형태로 이 세상 속에 현존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라너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속에 종말론적인 승리로서 확고하게 현존하는데, 그러한 현존의 연장과 현재적 현존이 교회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인간 구원의 구체적 표명이며, 하나님의 지속적인 세계 내 현존이다. 교회는 역사를 통해 실제로 현존하는 까닭에 교회에 조직들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근거로 라너는 가톨릭의 교회 본질 이해에서 제도가 항구적인 요소로 강조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제도가 반드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교회는 새로운 역사적 구조를 통해 그 성례전적 사명을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

스힐레벡스는 몇 가지 점에서 라너와 의견이 다르다. 그는 교회를 원초적 성례전이라고 본 라너의 견해를 거부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원초적 성례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례전적 특성은 모두 교회가 그리스도와 맺는 관계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대해 개신교 비판자들은 성서적 근거가 빈약하고 도 설교신학이 들어설 여지가 좁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2)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해 현존한다 - 개신교 입장

개신교에서 교회의 본질을 파악할 때 중심이 되는 주제는 설교와 성례전에서 선포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칼뱅에 의하면 말씀의 설교와 성례전의 올바른 거행은 그리스도의 현존과 밀접하게 관계하며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면 어디서나 그의 교회 역시 존재한다.

케리그마(전령/복음선포)라는 주제는 20세기에 중요한 주제였으며 칼 바르트의 저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르트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응답해서 이루어지는 공동체다. 교회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기쁜 소식으로 선포하는 공동체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충실하게 선포되고 수용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존재하게 되는 케리그마 공동체이다. (1948 세계교회협의회 연설 중) 교회란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셔서, 당신이 거둔 승리의 증언자가 되고 또 그 미래의 완성을 알리는 전령이 되라고 택하신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점에서 바르트의 교회론은 철저하게 삼위일체론적 특성을 지니며,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 역동적으로 교회의 본질을 이해한다. 바르트에게 교회란 그리스도의 연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이 세상을 섬기도록 그에게 부름 받고 위임 받은 실체이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교회 안에 현존한다. 그는 성령에 독특하고 분명한 역할을 부여한다. [교의학 개요1947]에서 나는 교회를 믿습니다. 라는 고백이 뜻하는 것은 여기 이곳, 이 모임 안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남을 믿는다는 말이다. 교회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교회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이 회중 안에서 성령의 사역이 사건이 됨을 믿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제도(연장)가 아니라 사건으로 파악된다. 바르트는 성령을 교회와 동일시하지 않으며 성령의 활동을 교회 제도의 울타리 안에 제한하지도 않는다. 성령은 교회에 능력을 부여해 새롭게 하고,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교회를 하나로 묶으며, 부활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현존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고 주장한다. 성령은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순전히 세속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한다.

불트만도 케리그마적인 교회 본질 이해를 받아들여, 바르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선포를 사건으로서의 교회 개념과 연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는 나뉠 수 없다. 교회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세워지며, 하나님의 말씀은 추상적인 진리들의 신술이 아니라 진정 권위가 있어서 그에 합당한 사람들이 맡아 전해야 하는 선포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 속에서만 그분의 말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역시 사건이 되는 한에서만 진정 교회일 수 있다.

3) 교회는 성령을 통해 현존한다 - 해방신학/정교회

20세기 교회론에서 중요한 세번째 주제는 교회 구성요소로서의 성령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바르트의 교회론에서 이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브라질의 가톨릭 신학자 네오나르도 보프와 정교회 신학자 요한 지지울라스 같은 신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나타났다.

두 사람은 성령론적 교회 이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보프는 성령을 강조하면서도 그리스도 중심성을 유지하는데, 그 까닭은 그가 서방교회의 삼위일체 이해방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지지울라스는 카파도키아 교회들이 신격 내의 성령의 역할을 이해한 방식을 따라 정교회 쪽으로 기운 견해를 주장한다.

해방신학자 보프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며 이 때문에 교회를 이해하는 데서 성령이 뼈대 역할을 한다. 라너와 폰 발타자르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 속에 물리적으로 구현되거나 재현된 것이 교회라고 주장한 반면, 보프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이며 따라서 기존 특정 조직의 울타리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펼쳤다. 이런 점에서 보프는 제도주의적인 교회론, 그중에서도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번창했던 이론들에 비판적 견해를 제시한다.

보프는 [새롭게 탄생하는교회 1986]에서 케리그마적 교회 이해와 유사한 교회관을 제안하였다.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의 초청을 듣게 되고,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고, 한 신앙을 고백하고, 동일한 종말론적 해방을 축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려고 노력할 때 교회는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교회 의식에 대한 물음이 있을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의미에서 교회에 관해 말할 수 있다.

보프에게 이 교회 의식은 성령의 사역으로 나타난 결과이며, 성령의 위격과 사역은 부활한 그리스도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현하였다고 가르치는 신조가 이 점을 지지해 준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지지울라스는 성령이 전혀 다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는 교회 안에서 성령이 어떠한 식으로 뼈대 역할을 하는지 고전12장에서(성령의 은사, 하나됨) 펼친 논의를 인용해 설명한다. 성령론은 교회의 번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교회의 핵심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터를 놓았다면 그것을 세우는 이는 성령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

2차 공의회는 교회론 논의에 활력을 주었다. 공의회에서 성서 속의 교회 이미지들을 다시 발굴해 받아들인 것이 활력을 준 이유이다. 공의회 이전에는 교회를 완전한 사회라고 생각했다. 그 배경에는 16세기 후반 특히 유럽의 민족국가들의 힘이 커가는 상황에 대응해 교회의 제독적 특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국가 권력에 맞서 교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력이 교회의 정체성을 하나의 사회로 확고히 밝히는 일이었다.

가톨릭 종교개혁을 이끈 로베르토 벨라르미노1542-1621의 저술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교회는 프랑스 왕국이나 베네치아 공화국처럼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사회 실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제도주의적 교회론은 19-20세기 초까지 지배하였다.

*아돌프 탕그레 신학 교과서에서 교회란? 무오한 사회, 완전한 사회, 계층구조적 사회, 군주적 사회라고 설명하고 있다.

강력한 제도주의적 교회론은 교회를 주로 가시적 측면에서 정의하였으며 특히 가시적인 통치구조 및 믿음과 행위의 규약을 강조하게 되었다. 사실상 교회는 16세기 후반의 사회제도들을 모범으로 삼았다.

개신교, 가톨릭 모든 기독교의 교회론은 항상 제도적인 측면을 지녀왔다. 루터와 칼뱅 역시 교회 통치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제도적 요소를 결정적인 중요성으로 보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복음이었다.

그러나 교황의 정치적 권력이 강력해지고 교회 제도에 대한 공격을 무력화하려는 의지가 클수록 그러한 제도들을 올바른 교회 이해에 필수적인 요소로 편입해 옹호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19세기에 와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유럽에서 정치상황이 불안해지고 세속주의와 반가톨릭주의가 갈수록 증가하는 현실에 맞서 1차 바티칸 공의회는 견고한 계층적 교회 개념을 세웠다. 목자와 양무리를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이러한 일반적인 교회론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가톨릭 신학을 지배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는 평등한 공동체가 아니다. 이러한 견해는 가르치는 교회(성직)과 배우는 교회(평신도)라는 구분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에 가톨릭 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이 모델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교회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시기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인정하면서 형성된 정치적인 압력에 대응하여 등장한 것이었다. 벨기에 성서학자 루시앙 세르포는 제도화로 치닫던 흐름 때문에 못 보고 지나쳤던 성서와 교부 신학자들이 통찰을 되찾는 길을 열었다. 이브 콩가르 같은 학자들은 제도적인 교회 모델에서 평신도들이 과소평가된 것에 관심을 기울여 평신도 신학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이 중요한 신학 분야, 이 분야와 연관된 에쿠메니즘과 복음전도에 관한 논의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인류의 빛]에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공의회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가르친 것 가운데 세 가지 요소를 살펴보자.

1) 친교로서의 교회

1943 루트비히 폰 헤르틀링은 [친교, 초기 기독교의 교회와 교황제도]에서 그는 친교라는 주제가 교회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는데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은 큰 영향을 끼쳤으며, 교회에 관한 최종 선언문에 담기게 되었다.

*우정/동료애/공동체성 fellowship 이 단어가 담고 있는 성서적인 의미는 삼위일체 자체의 삶이나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이루는 공동체의 삶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의 삶을 함께 이룬다는 것이다. 수직적인 면과 수평적인 면을 지니는데, 신자와 하나님의 관계와 신자들 개개인의 관계를 가리킨다.

이러한 성서적 개념을 회복한 것이 강력한 제도적 교회 개념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규정을 통해 강요되었던 친교가 이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되고 교회의 삶 속에서 구체화된,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친교라는 훨씬 더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2)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2차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 모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는 모델이다. 신구약에 뿌리내린 고유한 성서적 개념이다. 공의회 문헌2장에서는 교회를 이스라엘과 연속성을 지닌 하나님의 새백성이라고 설명하였다.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규정한 것은 이스라엘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한다.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에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서 유대인들이 여전히 특별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족장들과 모세와 예언자들에게서부터 교회가 선택되고 교회의 신앙이 시작되었음을 인정한다. ... 교회는 그지없는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과의 옛언약에 들게 된 이스라엘백성을 통해 구약의 계시가 교회에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한다. ...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해시키시고 당신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음을 교회는 믿는다.

3) 은사 공동체인 교회

2차 공의회가 열렸던 무렵 은사은동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이 일부 강한 영향을 끼쳤다.

벨기에 추기경 레오 요제프 수에넨스는 공의회에서 교회의 본질에 관해 성찰할 때, 이 운동에 대해 다루어 줄 것은 호소하였다. 그 결과 교의헌장인 [인류의 빛]에서는, 카리스마 은사들이 교회의 삶에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공의회는 각 개인이 봉사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은사나 능력을 가리키는 말로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말이 은사운동(영적 은사, 방언, 신유 등)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지만, 바울은 분명 그러한 은사들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공의회는 20세기 기독교인의 체험에서 중요한 것으로 등장한 이러한 측면을 적극 수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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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공의회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가르친 것 가운데 세 가지 요소를 살펴보자.

1) 친교로서의 교회

1943 루트비히 폰 헤르틀링은 [친교, 초기 기독교의 교회와 교황제도]에서 그는 친교라는 주제가 교회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는데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은 큰 영향을 끼쳤으며, 교회에 관한 최종 선언문에 담기게 되었다.

*우정/동료애/공동체성 fellowship 이 단어가 담고 있는 성서적인 의미는 삼위일체 자체의 삶이나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이루는 공동체의 삶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의 삶을 함께 이룬다는 것이다. 수직적인 면과 수평적인 면을 지니는데, 신자와 하나님의 관계와 신자들 개개인의 관계를 가리킨다.

이러한 성서적 개념을 회복한 것이 강력한 제도적 교회 개념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규정을 통해 강요되었던 친교가 이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되고 교회의 삶 속에서 구체화된,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친교라는 훨씬 더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2)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2차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 모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는 모델이다. 신구약에 뿌리내린 고유한 성서적 개념이다. 공의회 문헌2장에서는 교회를 이스라엘과 연속성을 지닌 하나님의 새백성이라고 설명하였다.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규정한 것은 이스라엘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한다.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에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서 유대인들이 여전히 특별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족장들과 모세와 예언자들에게서부터 교회가 선택되고 교회의 신앙이 시작되었음을 인정한다. ... 교회는 그지없는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과의 옛언약에 들게 된 이스라엘백성을 통해 구약의 계시가 교회에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한다. ...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해시키시고 당신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음을 교회는 믿는다.

3) 은사 공동체인 교회

2차 공의회가 열렸던 무렵 은사은동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이 일부 강한 영향을 끼쳤다.

벨기에 추기경 레오 요제프 수에넨스는 공의회에서 교회의 본질에 관해 성찰할 때, 이 운동에 대해 다루어 줄 것은 호소하였다. 그 결과 교의헌장인 [인류의 빛]에서는, 카리스마 은사들이 교회의 삶에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공의회는 각 개인이 봉사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은사나 능력을 가리키는 말로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말이 은사운동(영적 은사, 방언, 신유 등)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지만, 바울은 분명 그러한 은사들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공의회는 20세기 기독교인의 체험에서 중요한 것으로 등장한 이러한 측면을 적극 수용하게 되었다.

영도형님 952-956

<교회의 표지>

교회론의 핵심 주제는 교회의 네 가지 표지로 설명된다. (기독교 교회를 규정하는 네 가지 특성을 말한다.)

이 신조들은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에 대한 믿음을 선언한다.

여기서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인 이라는 네 형용사가 교회의 표지로 불리게 되었다. (4세기 이후 인정)

1) 하나의

교회의 단일성은 교회론에 관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세계교회협의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교백하는 교회들의 친교'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 자체가 다양한 교회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가톨릭,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정교회, 침례교 등. 다양한 교회들을 어떻게 하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도가 다른데, 어떻게 교회의 단일성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두가지 중요한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 사건은 3세기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작은 의견차이가 파괴적인 힘의 쟁점으로 발전했다.

테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250-251) 많은 기독교인이 배교했다. 배교자의 처리 문제로 의견이 분열되었다. 그들은 끝났는가? 아니면 회개하면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가? 의견 대립은 심각한 갈등이 밎어졌다.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는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 빚어진 위기에 대응하고자 저술한 [보편교회의 단일성]에서 교회의 절대적 단일성을 주장하였다. 그 단일성을 통으로 짜서 분리되지 않는 '그리스도의 솔기 없는 예복'에 비유하였다. 교회의 단일성을 깨뜨리면 교회의 정체성도 허물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오직 하나의 교회가 있으며, 그 울타리 밖에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그는 258년 로마당국에 의해 순교를 당했으며 그의 교회 단일론은 그 지역에서 상당한 권위를 얻게 되었다.

두번째 사건은 16세기 종교개혁 때였다.

종교개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기존 교회를 박차고 나가 분파를 세우면서도 정당할 수 있는가? 이는 교회 단일성에 대한 도전이지 않은가? 여기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개혁이 불가피할 정도로 타락했다고 맞섰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중세 교회는 여전히 개혁과 갱신이 필요한 교회였다. 내부에서 이룰 수 없다면, 거대한 흐름을 박차고 나가 개혁된 교회를 세워야만 했다. 이제 이 일을 저지할 방도는 없었다. 이탈한 조직들이 연쇄적으로 나타났다. 가톨릭 교회에서 영국교회가 떨어져 나왔고, 영국교회 논쟁으로 일부 성직자와 신자들이 이탈하여 감리교회를 세웠다. 19세기 감리교회에서 발생한 논쟁으로 웨슬리 계열의 집단과 칼뱅 계열의 집단으로 갈라졌다.

16세기 이후, 신조에서 표명된 하나의 교회는 고전적 개념이 더 이상 제도적 의미로 통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하나의 교회라는 원론적 믿음과 다수의 교회라는 눈앞의 잔인한 현실에 기독교 사상가들은 뒤의 현실을 앞의 틀 속에 끼워 넣어 다루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러한 쟁점을 다루는 네가지 이론을 살펴보자.

(1) 제국주의적 이론

오직 하나의 경험적인(관찰 가능한) 교회가 존재하며 그 교회만이 참된 교회로 인정된다. 부당하게 교회라는 명칭을 사칭한 교회는 유사품에 불과하다.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전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였다. (그 후 공의회에서는 갈라진 기독교 형제자매로 인정하는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었다.)

(2) 플라톤적 이론

경험적 교회와 이상적 교회를 철저하게 구별한다. 보이는 교회외 보이지 않는 교회로 구분한 칼뱅의 사고 바탕에 이와 유사한 개념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기독교 주류 신학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3) 종말론적 이론

현재의 교회 분열은 마지막 날에 해소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상황은 일시적인 것이며 종말론적 완성의 때에 해결될 것이다.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로 나눈 칼뱅의 구분 바탕에 놓여 있는 것이 이러한 이해이다.

금일형님

(4) 생물학적 이론

교회가 발전한 역사과정을 나뭇가지가 뻗어 나가는 것에 비유한다. 18세기 독일 경건주의자 친첸도르프(1700-1760)가 고안하였으며, 성공회 학자들이 받아들였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등 그 제도는 차이가 있지만 유기적인 일치를 이루는 것으로 인정한다.

근래에 와서 에큐메니즘(은 세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기독교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운동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에 관심을 쏟는 학자들이 혼돈을 끝내고 교회일치의 진정한 기초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가 말한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보편 교회도 있다라는 경구는 교회일치의 근거가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가리킨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공동된 부름을 받은 것으로 인해 단일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 부름은 다양한 문화와 상황 속에서 다양한 공동체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한스 큉은 [교회]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교회의 단일성은 영적 실재다. 하나이며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 모든 곳으로부터 흩어진 사람들을 불러 모으셔서 하나님의 한 백성을 세우신다. ... 교회는 하나이며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의 요점은 교회의 단일성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단일성은 교회들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사례는 영국 종교개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성공회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39개조 신앙고백(1563)을 보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 사항들을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성공회 교인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또 의견이 분열될 가능성이 있는 영여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성공회 신학자 루이스 와일은 성공회의 복음은 거대한 모자이크 속의 한 조각이다. 본질적인 면에서 이 복음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선포되고 믿어져왔던 그 복음과 일치한다.

이러한 주장은 기독교 교회의 근본적인 단일성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지역적인 환경에 맞추어 적응할 필요성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현대교회에서 복음주의는 교파를 초월하여 전 세계에 확산된 운동으로 가톨릭을 포함해 서구 교회의 모든 교파들 속에서 활동한다. 복음주의는 어떤 특정 교파와도 배타적일 정도로 결속하지 않는다. 개성이 분명하고 뚜렷한 교회론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복음주의는 거의 모든 교회 조직들과 어울릴 수 있다.

개신교 흐름은 1520~1530년대 이탈리아 교회 내에 자리를 잡았고, 교회 지도자들(일부 추기경도 동참)이 성서와 개혁자들의 저술을 연구하기 위해 정기모임을 가졌다. 개신교의 영성과 가톨릭의 교회론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도 일어나지 않았다. 1540년대에 제국의 정치가 신학적인 논쟁에 개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오늘날 미국 가톨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가톨릭 교인이 복음주의를 영적 필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복음주의 영성을 지지하는 것이 가톨릭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교회의 단일성은 특정한 교회 조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공통된 헌신에 근거한다.

(준원)

2) 거룩한

교회의 단일성은 교파주의의 만연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이처럼 교회의 이론적인 단일성이 부정되는 것 같았다. 이론과 경험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교회를 거룩하다고 말하는 주장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교회의 이론적인 거룩성과 기독교 신자들의 죄성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1) 이론과 경험을 일치시키려 했던 도나투스주의나 재세례파 같은 분파주의 운동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교회 구성원들의 실제적 거룩성을 크게 강조하였으며, 이탈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출교하기까지 했다.

2)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거룩성과 교인들의 죄성을 별개의 것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이론은 허공에 뜬 교회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3) 다른 견해로는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교회는 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죄를 지닌 상태로 현존한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는 결국 성결하게 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내가 교회를 가리켜 흠 없고 티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교회가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교회가 영광 중에 드러나게 될 때에 그렇게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아퀴나스) 교회가 흠 없고 티도 없게 되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에서만 가능한 일이지 그리로 가는 도중에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제 거룩한 이라는 말의 의미를 상세하게 살펴보자.

신약성경에서 거룩함이라는 개념의 바탕이 되는 히브리어 카다드는 잘리다, 나뉘다이다. 이 말에는 헌신이라는 의미가 있다.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따로 떼어 놓거나 바쳐졌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거룩개념에서 근본요소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사람이나 사물이라는 의미이다. 신약은 인간의 거룩함에만 한정해서 사용한다. 거룩한 장소, 거룩한 물건은 인정하지 않는다.

신자들이 거룩한 까닭은 하나님께 바쳐졌으며 하나님께 부름 받아 세상에서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불러낸 사람들)와 거룩(하나님께 부름 받아서 세상에서 분리된 사람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회가 거룩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교회 및 그 구성원들을 부르신 분이 거룩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서 구별된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증언하는데 있다.

교회의 거룩성과 교회의 사도성 사이에는 명백한 연관성이 있다. 거룩한 이 단어가 함축하는 의미는 도적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것으로, 교회와 그 구성원들의 소명을 밝혀주고 장차 교회가 하나님의 삶과 영광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소망을 보여준다.

가톨릭교리서(1994)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순결하며 흠이 없는 까닭에 죄를 알지 못하지만 사람들의 죄를 없애러 오셨다. ... 성직자를 포함해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그러므로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의 구원에 속하였으나 아직 거룩함을 향해 나가는 죄인들을 포함한다.

여기서 교회의 거룩성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근거를 둔다. 거룩함을 추구하여 교회 속에 모인 사람들의 변화와 참회와 쇄신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 진행 중이다.

3) 보편적인

영어 가톨릭catholic, 보편적인이라는 말은 로마 카톨릭Catholic과 혼동된다.

동방정교회 신학자들만 신학에서 정통적Orthodox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가톨릭교회만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개신교 교회들이 사도신조를 외우면서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에 당혹스러워한다. 그래서 universal로 대체하였다. 그래서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universal, 사도적인 교회라고 믿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 주장하였다.

가톨릭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kath 'holou (전체로 보아)에서 왔다. 이 그리스도가 라틴어 catholicus로 변하여 보편적인,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영어권, catholic taste 폭 넓은 취향, 가톨릭 서신을 공동서신, 모든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편지)

신약성경은 전체교회를 가톨릭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에클레시아를 사용한다. 에클레시아는 지역교회, 예배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이 단어가 지역적인 조직을 넘어서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개체교회는 전체 교회가 아니지만, 그 전체성에 참여한다. 이 전체성이 나중에 가톨릭이라는 용로 흡수되었다.

후대에 와서 신약성경의 핵심 가르침을 하나로 묶어 단일 용어로 담아내고자 시도하면서 가톨릭이라는 용어가 도입되었다. 최초로 가톨릭 교회라는 표현은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의 저술에서라고 알려졌다. 110년경에 로마에서 순교한 그는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가톨릭(보편) 교회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2세기 때 다른 문헌에는 이 용어가 지역 회중들과 병존하는 보편교회를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콘스탄티누스의 회심과 함께 이 용어의 의미가 근복적으로 바뀌었다.

4세기 말경에 가톨릭교회라는 말은 곧 로마제국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종교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주류에서 나간 여타의 신앙 형태들은 모두 불법으로 단정지어졌다.

5세기 초 기독교는 지중해 주변 세계 전체에 걸쳐 든든히 자리잡았다. 이러한 발전으로 가톨릭이라는 말은 '전 세계를 포괄하는'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에 이르렀다.

초기발전과정에서 교회에 적용된 가톨릭 용어의 의미는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

(1) 보편적이며 모든 것을 포괄하는 교회

이 교회는 개별적인 지역 교회들의 바탕이 되어 그 교회들을 든든히 받쳐 준다. 여기서 가톨릭이라는 말은 지역교회가 보편교회를 대변한다. 이 말은 단일성과 보편성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2) 신학에서 정통적인 교회

여기서는 강한 규범적인 성격을 지니고, 논쟁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가톨릭주의, 분리주의, 이단으로 구별되며, 분리주의와 이단을 따르는 사람은 정통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벗어난 것이다.

(3) 전 세계로 확장된 교회

기독교의 강력한 선교적 기질로 인해 교회는 지중해 주변의 문명 세계 전체로 뻗어나갔다. 이리하여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지리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4세기 예루살렘에 살던 키릴로스의 교리문답 18번째에 보면, 카톨리코스의 다양한 의미를 자세히 밝혔다. 교회는 가톨릭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람 사는 온 세상에 두루 퍼져있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알아야할 교리 전체를 하나도 남김없이 교회가 가르치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가 가톨릭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지배자든 피지배자든 배운이든 못배운이든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교회에 충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회는 모든 종류의 죄에 대한 보편적인 치료와 회복을 베풀어 준다.

여기서 가톨릭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의미에 주목해 보자.

(1) 사람 사는 온 세상에 두루 펴져

여기서 키릴로스는 가톨릭이라는 말의 지리적 의미를 설명한다. 그래서 전체성, 보편성의 개념은 세계 모든 곳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으로 이해된다.

(2) 하나도 남김없이

이 구절로 교회의 가톨릭성에는 기독교 신앙의 완벽한 선포와 해명이 포함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확실하게 복음 전체를 선포하고 가르치라고 요구한다.

(3) 모든 부류의 사람들

여기서 키릴로스는 본질적으로 사회학적인 논점을 펼친다. 복음과 교회는 인종과 성과 사회적 지위를 초월해 모든 부류의 사람을 위한 것이다.

(4) 모든 종류의 죄에 대한 보편적인 치료와 회복

여기서 그는 구원론적 논지를 펼친다.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는 인간의 모든 필요와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어떠한 죄이든지 교회는 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사도신경의 교회론 부분을 설명하는 중에 가톨릭 용어의 다양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아퀴나스의 가톨릭성 개념의 본질적 측면을 세가지로 정리한다.

교회는 가톨릭, 보편적인데 그 근거는

(1) 첫째, 장소라는 면에서 교회가 세상 전체에 두루 퍼져 있기 때문이다. (롬1:8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막16:15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교회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땅 위에 다른 하나는 하늘에 그리고 세번째는 연옥에 있다.

(2) 둘째, 교회는 사람들의 조건과 관련하여 보편적이다. 주인이든 종이든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도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3:28)

(3) 셋째, 교회는 시간과 관련해서 보편적이다. 교회는 아벨의 때에 시작하여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존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28:20)

앞서 보았듯이, 종교개혁 시대에 와서 보편성 개념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었다. 교회의 보편성과 단일성은 16세기 서유럽의 교회가 분열되는 것과 동시에 무너졌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개신교 사상가들은 보편성의 본질은 교회 제도가 아니라 교리에 달린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5세기 레랭의 빈켄티우스는 보편성을 모든 시대에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이 믿은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에서 나왔지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핵심 교리요소들을 지니고 있기에 여전히 보편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정리하면, 가르침의 차원에서는 사도적 교회와 연속성을 지니며 동시에 비성경적이고 거짓된 관습과 믿음을 폐기한 교회라고 주장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뒤이은 에큐메니컬 논의에서 보편성 개념에서는 이 용어의 여러 의미 중 가장 오래된 전체성의 개념을 강조하였다.

한스 큉은, 교회의 가톨릭성은 전체성이라는 개념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동일성을 바탕으로 삼으며 또한 보편성으로 귀결된다. 이 사실에서 단일성과 보편성이 하나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단일성과 보편성은 서로 엮여서 하나의 동일한 교회를 이루는 두 차원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서구 신학자들 사이에서, 정교회 쪽 교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보편성 개념을 관심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소보르노스트라(러시아어)라는 개념은 보편성이라는 개념을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의 친교 안에서 신자들의 일치를 강조한다. (알렉세이 호먀코프1804-1860, 세르게이 불가코프1871-1944) 이 개념은 교회의 공동체적 삶의 전체적 조화와 더불어 신자 개개인의 독특성을 공평하게 다루고자 애쓴다. 이 개념은 공의회 정신이라는 관념과 관계가 있는데, 교황의 지위에 있는 단일 인물이 권위를 독점하는 방식이 아닌 모든 신자들이 함께 권위를 나누는 방식으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다.


4) 사도적인

보편적인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사도적이라는 말도 신약성경에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지 않는다. 기독교에만 한정해서 사용하며, 세속적 개념과 혼동되는 일이 따르지 않는다. 사도적이라는 말은 교회가 사도들의 증언과 증거 위에 세워진 것임을 기억하게 해준다.

사도라는 용어를 살펴보자.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두가지로 연관되어 있다.

(1) 그리스도가 임명한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할 사명을 받은 자

(2) 부활한 그리스도의 목격자, 혹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친히 만난 사람

따라서 신조에서 사도적이라는 선언은 복음의 역사적 뿌리, 그리스도가 임명한 사도들을 통한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속성, 교회의 지속적인 복음전파와 선교사명을 강조한 것이다.

이 사도성 개념은 1870년 무렵부터 1914년까지 영국 신학계에서 중요한 주제였다.

스웨트(1835-1917,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교수)는 1913-14년 신학강의에서 성서적관점과 초기교부자료를 토대로 교회론의 뼈대를 제시하였다. 그는 교회의 사도성 개념에 포함되는 세 가지 기본 주제를 다음과 제시하였다. 1) 보편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세상 속에 세워졌고 2)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며 3) 사도적 목회를 계승하여 보존한다는 세 가지 점에서 사도적이다.

첫번째 특성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교회의 확장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의 이방 선교사역)

두번째 특성은 교회의 가르침 역시 사도적임을 증명한다. (사도 시대의 증언은 교회의 보편 유산)

세번째 특성은 교회가 실천하는 목회 유형 문제로 관심을 돌려, 교회에 위탁된 목회는 사도적 기원을 지닌다고 보았다. (보편교회는 사도적 전통에 더해 사도적 목회도 소유하였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와 그레데에서 장로와 감독들을 세우고 디모데와 디도에게 위임하였다.)

스웨트가 밝히는 사도성의 세 범주는 다음과 같다.

1) 사도들에 의해 세상 속에 세워졌다.

2)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3) 사도적 목회를 계승하여 보존한다.

이러한 개념은 영국의 울타리를 벗어나 퍼져 나갔다.

여전히 예민한 논쟁거리가 남아있었다.

즉, 교회의 사도성은 사도적 교회와의 역사적 연속성을 통해 제도적으로 확보되는가?(가톨릭,정교회)

연속성이 없더라도 사도적 개념과 실천을 따름으로 교회의 사도성이 확보되는가?(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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