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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 한교회 주일예배(에스더기도회)
박준원 2026-03-01 추천 0 댓글 0 조회 60





 

인공지능 시대의 신앙, 거룩한 낭비

홍 승 헌 목사 (서울북노회, 한빛교회)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고, 스스로 학습하며, 판단까지 대신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온 세상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승률이 높은 쪽, 이윤이 많은 쪽, 즉 언제나 가장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 컴퓨터입니다. 바둑을 예로 들자면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지점에만 수를 둔다는 뜻입니다. 이 효율성 때문에 인공지능은 의료, 교육, 환경, 복지 등 많은 영역에서 유익한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인공지능을 무기와 결합하여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살상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인공지능을 통해 안면인식, 유니폼 패턴, 무기 소지 여부를 분석하여 적군과 민간인을 구분한다는 건데, 인공지능이 데이터 학습 과정의 오류로 인해 특정 인종이나 복장을 한 사람을 적군으로 잘못 인식할 위험이 늘 존재한다는 점과, 혹여 인공지능이 민간인을 오인 사격했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지만 그것이 최선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반면, 인공지능은 최선의 길과는 상관없이 오직 이길 수 있는 확률을 향해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입력하고 전쟁을 할 경우, 인공지능은 이길 수 있는 방법만 찾습니다. 거기에는 얼마만큼의 희생이 따르는지, 대량 학살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생명에 대한 고민은 없습니다. 그냥 상대를 더 많이 죽여서 이기면 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률을 좇아서 이기는 선택을 할 뿐, 생명의 존엄, 희생과 사랑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 최고의 가치는 효율인 반면, 가장 터부시되는 단어는 낭비입니다.

길을 갈 때에도 가급적 적은 노력으로 짧고 빠른 길을 선택하는 효율을 계산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많은 행위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경제원칙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이유와 타당성이 없으면 행동의 동기가 없어지고, 무의미한 일로, 시간과 재물과 정력의 낭비로 치부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런 낭비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다니는 예수님을 못마땅해하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들려준 잃은 양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00마리의 양이 있는데, 그중 1마리를 잃어버리면 99마리의 양을 내버려두고, 잃어버린 1마리를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처럼 예수님은 말했지만,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사는 지금 우리에게는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이며, 효용가치가 없는 계산법이고, 그야말로 현실성 없는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1마리를 찾아다니는 동안, 나머지 99마리가 도망가고 흩어져버릴 수도 있기에, 1마리를 위해 99마리를 그냥 방치한 것은 너무나 위험한 선택이고 무책임한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대책 없이 고향을 떠나서 미지의 땅으로 간 것도 낭비였고, 어렵게 얻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것도 아브라함의 비극적인 낭비였습니다.

그리고 비록 노예살이였지만 잠자리와 먹거리가 해결되던 이집트를 탈출해 막막한 광야에서 40년을 고생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도 낭비였고, 돌을 빵으로 만들고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유혹을 예수님이 뿌리친 것도 경제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낭비였습니다.

노동자 1년 연봉인 300데나리온짜리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닦아 드린 마리아의 행동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낭비였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박해받는 입장으로 돌아섰던 사도 바울의 삶도 낭비였습니다.

급기야 예수님이 사람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그야말로 낭비의 극치였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효율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과연 인간의 가치와 역할은 무엇이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고자 했던 신앙인들의 몸부림이 녹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효율로 이룬 경제적 행복보다는 도리어 낭비되는 삶을 살라!’였습니다. 이런 삶을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거룩한 낭비라고 했습니다.

 

인공 지능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같은 선택은 없습니다. 죽음이 결코 패배가 아니라는 판단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공지능 안에 더더욱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가 죽을 줄 알면서도 희생하고, 배려하고, 위로하고, 사랑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져주고, 짊어져 주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죽으러 가는 일, 인공지능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신앙만이 가진 고귀하고 숭고한 힘입니다.

99마리를 지키기 위해 승률이 높고, 이윤이 많고, 가장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정작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신앙은 잃은 양 1마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길 떠나는 거룩한 낭비입니다.

 

행복의 신기루를 향해 내달리던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고,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몸을 낮추고, 자기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고,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은 이들의 설 땅이 되어 주며, 다른 이들이 건널 수 있게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거룩한 낭비, 그리스도인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약한 이들에 대한 연민, 불의한 것에 대한 분노, 생명의 존엄을 해치는 힘에 대한 저항,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거룩한 낭비가 늘어날 때 오직 이길 수 있는 확률을 향해 작동하는 인공지능의 세상은 무너질 것입니다.

  

<자료3. 독립선언문>

 독립선언문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하는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이것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으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고 이것을 선언하는 터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으로 모아 이것을 널리 알리는 터이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터이며, 사람 된 양심의 발로로 말미암은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것을 드러내는 터이니,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것을 막고 누르지 못할 것이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당하여 역사 있은 지 여러 천년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년이 되도다. 우리가 생존권마저 빼앗긴 일이 무릇 얼마며, 정신의 발전이 지장을 입은 일이 무릇 얼마며, 겨레의 존엄성이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성을 가지고 세계 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 잃은 일이 무릇 얼마인가!

오호,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풀어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두려움을 없이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도의가 짓눌려 시든 것을 다시 살려 키우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옳게 가꾸어 나가려면, 불쌍한 아들딸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이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우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인 것을 뚜렷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속의 칼날을 품으니,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 이것을 얻고자 하는데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며, 물러서 계획을 세우는데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할까! 병자수호조약 이후, 시시때때로 굳게 맺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탓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인은 실생활에서 우리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이 터전을 식민지로 삼고, 우리 문화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대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낼 뿐이요, 우리의 영구한 사회의 기틀과 뛰어난 이 겨레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옳지 못함을 책망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자기를 일깨우기에 다급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원망할 여가를 갖지도 못하였노라. 현재를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에게는 예부터의 잘못을 따져 볼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나를 바로 잡는데 있을 뿐, 결코 남을 헐뜯는 데 있지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을 따라 자기 집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는 일일 뿐,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의 감정을 가지고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일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인 일본의 위정자의 공명심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이 그릇된 현실을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른 바탕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라. 처음부터 이 겨레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닌 두 나라의 합병의 결과는 마침내 억압으로 이뤄진 당장의 편안함과 차별에서 오는 고르지 못함과 통계 숫자 때문에, 이해가 서로 엇갈린 두 민족 사이에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도랑이 날이 갈수록 깊이 패 이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한 번 살펴보라. 용감하게 옛 잘못을 고쳐 잡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바탕 한 우호적인 새 시대를 마련하는 것이, 서로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인 것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또한 울분과 원한이 쌓이고 쌓인 이천만 국민을, 힘으로 붙잡아 묶어둔다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노릇이 아닐 뿐 아니라, 이것이 동양의 평안함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사억 중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어지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 전체가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운을 초래할 것이 뻔 한터에, 오늘 우리의 조선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버티고 나갈 이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피하지 못할 불안과 공포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가 되는 세계평화와 인류 복지에 꼭 있어야 할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 이것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

아 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지나간 세기를 통하여 깎고 다듬어 키워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 위에 던지기 시작하누나. 새봄이 온 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누나. 얼음과 찬눈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저 한때의 시세였다면, 온화한 바람, 따뜻한 햇볕에 서로 통하는 낌새가 다시 움직이는 것은 이 한때의 시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이 마당에 세계의 변하는 물결을 타는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고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난바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피우리라. 우리는 그래서 분발하는 바이라.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전진하나니, 남자????여자????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하게 되누나.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우리를 안으로 지키고,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으로 보호하나니, 일에 손을 대면 곧 성공을 이룩할 것이라. 다만 저 앞의 빛을 따라 전진할 따름이로라.

 

공 약 삼 장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올바른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가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나라를 세운 지 사천 이백 오십 이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흥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이 한글 독립선언문은 김동길 박사(전 연세대 교수)19793.1 운동 60주년을 기념하여 한글세대를 위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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