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 예배와 말씀 >
  • 주일예배
20251221 한교회 주일예배(대림절4)
박준원 2025-12-20 추천 0 댓글 0 조회 35

 




 


 

20251221 한교회 주일예배 대림절4

제목: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2:1-7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서론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기장총회교육원에서 대림절묵상영상을 매일 올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주부터 새벽묵상문자에 함께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12/17 수요일 대림절묵상 제목이 예수님의 시선이었습니다.

해설자가 이 시를 읽어주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신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세히 보시면서 예뻐해주시고, 오래 보시면서 사랑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데 짠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나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이 그 순간 정말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뒤부터 저도 성경 말씀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되었고 조금 더 오래 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서 지나쳐온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자세히 그리고 오래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베들레헴

미가 52절 말씀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첫구절이 바로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베들레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름입니다. 베트는 집이고 레헴은 빵으로 빵집, 베이커리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에브라다는 무슨 의미일까요?

 

이스라엘에서 베들레헴은 한 곳이 아니라, 같은 이름의 지명이 2곳이 있습니다.

사사였던 입산이 다스렸던 스불론지파의 베들레헴이 있습니다.(여호수아19:15-16, 사사기12:8) 나사렛에서 북서쪽으로 10km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북부에 있는 베들레헴입니다.

그리고 에브랏 또는 에브라다라고 불리는 유다지파의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km 아래에 있습니다. 777미터의 고지대입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죽었을 때,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다고 창세기에 기록되었습니다.(창세기35:19) 또한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 그리고 보아스의 고향이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룻기에도 에브랏과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이 같이 나옵니다. 그리고 룻의 증손자였던 다윗의 고향도 베들레헴이며 다윗은 그곳에서 양을 치며 목동으로 자랐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라는 북부 베들레헴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에브라다의 뜻은 풍부한, 풍성한, 풍요로운의 의미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는 곧, 풍성한 빵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 300여명이 살던 살골 짝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미가는 700년 전에 예수님이 이곳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미가5:1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선지자를 통해 베들레헴이 공간과 장소가 작고 미약하지만, 시간은 영원하며, 그 기원은 태초와 연결되었다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해 보면, 시골 떡집에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성탄절에 한교회는 헌금전액을 이웃을 위해 나누는 전통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작은 교회이지만, 성탄절 나눔을 통해 풍성한 빵집, 생명의 떡집이 될 것입니다. 성도님의 소중한 헌금이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의 이웃들에게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2) 호적

누가복음21절에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3절에는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초대 황제로 본명은 옥타비아누스입니다. 아구스도 존엄한자를 뜻으로 로마원로원이 그에게 수여한 칭호이며 여기서 영어 어거스트 8월이라는 기원이 생깁니다. 그는 강한 군사력과 행정력을 바탕으로 지중해 세계에 200년간의 평화를 가져온 통치자입니다.

그가 식민지의 철저한 세금 징수를 위해서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인구 수뿐만 아니라, 토지, 가축, 종의 수 등 모든 재산을 파악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로마에 바쳐야할 세금의 양이 정해졌습니다. 일반 식민지에서는 현재 거주지에서 등록하였지만, 유대인들은 자신의 전통에 따라 가문별로 조상의 땅에(, 본적지에) 가서 신고하도록 했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의 완전한 갑질 중의 갑질이었습니다.

명절이 되어서 고향집에 즐겁게 놀러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구조사를 위해 고향에 가도록 강제집행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경제적 수탈과 정치적인 굴욕이 깃들어 있습니다. 주권을 상실하여 고향까지 내려와 로마 관리 앞에 줄을 서서 재산을 보고하는 행위는 로마의 속국이자 노예임을 뼈저리게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에는 열혈당이라는 게릴라 그룹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인구조사를 반대하는 대대적인 민중봉기, 무장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5:37)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던 길은 낭만적인 여행길이 아니라, 로마의 압제에 분노하는 민중들의 거친 숨결과 무거운 세금 걱정에 한숨짓는 서민들의 서러움이 가득했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황제의 명령을 도구로 만삭의 마리아와 요셉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셔서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고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역사적 비극과 서러움의 한복판에 자기 백성을 그 죄와 고통에서 구원할 진정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3) 카탈루마

누가복음 24절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절에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지도를 보시겠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60km의 거리입니다.

만삭인 아내를 나귀에 태우고 이동했을 경우 빠르면 일주일 길면 열흘이 넘는 아주 고단한 여행길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승용차로 이동하면 서너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당시는 사마리아를 직접 통과하지 않고 요단강 건너편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더욱 더 힘든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걷고 마리아는 나귀를 타고 고단하고 긴 여행을 해서 마침내 베들레헴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막 출산의 기미가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머물 방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다급하고 답답한 상황이었겠습니까?

누가복음 26-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7절에 보면,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다고 나옵니다.

헬라어로 카탈루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베들레헴은 300여명이 사는 작은 산골마을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여관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고 학자들은 여관이 아마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구조사 때문에 베들레헴 출신의 사람들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카탈루나는 일반 가정집의 게스트룸, 사랑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관을 나타내는 단어는 판도케이온이라는 별도의 단어가 있습니다.

지금 마리아와 요셉이 머물고 있는 집은 여관이 아니라, 아마도 친척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최근 연구에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 집의 카탈루나, 곧 사랑방은 이미 다른 친척들이 와서 모두 가득 차이었기 때문에 양과 염소들이 머무는 우리에서 출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그림은 당시 이스라엘의 가옥구조입니다.

베들레헴은 석회암 지대였기 때문에 집을 만들 때, 돌을 파내서 동굴처럼 지은 집도 있었다고 합니다.

1층은 가축 우리와 조금 단을 높여 만든 일반 거실 구조의 방입니다. 그리고 2층이 손님들이 머무는 게스트 룸, 사랑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 안에서 키웠다고 합니다.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모습과는 조금은 다릅니다.

여관에 방이 없어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말구유에 아기 예수님이 누어있었다고 상상상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친척집 1층 가축우리에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말이 귀했기 때문에 일반가정은 말이 아니라, 주로 양과 염소, 간혹 나귀를 키웠습니다. 때문에 마굿간이 아니라, 그냥 가축우리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 더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특별히 베들레헴은 나무가 귀하고 돌이 흔하기 때문에, 가축 구유를 나무로 만들지 않고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네 맞습니다. 아마도 아기 예수님이 누우셨던 구유는 나무가 아니라 돌이었을 확률이 80-90% 이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돌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돌의 차가움 위에 하나님의 따뜻한 숨결이 내려앉았습니다.

 

결론)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이고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저하게 낮고 낮은 곳에 아기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이스라엘 그것도 로마의 식민지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난한 목수(석공)의 가정이었습니다.

식민지의 경제와 정치적 수탈을 목적으로 인구조사 차 고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향도 777미터의 고지대, 두메산골, 작은 마을 베들레헴이었습니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겨우 마련한 곳이 가축우리였습니다.

그곳에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고 처음으로 누운 곳이 가축들의 밥통인 돌구유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에게는 정말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주로 이 땅에 오신다면, 당시 제국을 호령하던 로마황제의 아들로 태어나는 나, 금침대에 누우시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주님은 2층의 카탈루마, 사랑방이 아니라, 가축의 숨소리가 들리고 삶의 먼지가 일어나는 1층 가축우리로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고상한 종교생활 속으로 오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지저분하고 아픈 일상 한복판으로 들어오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저는 기도하던 중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시기 위해 모든 문턱을 낮추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나라, 지역, 가문, 부모 모든 것을 낮추셨습니다.

 

돌같은 내 마음에 오시기 위해 주님은 모든 문턱을 없애버리셨습니다. 그냥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시기 위해 모든 좋은 것을 마다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시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문턱과 차별을 없애시고 돌같이 굳어 있고 차가워진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돌처럼 차갑고 굳어있는 제 마음에 어서 오세요!

 

우리 이시간 조용히 묵상으로 1-2분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시기 위해 모든 문턱을 낮추셨습니다.

내가 이웃이나 가족에게 다가가기 위해 먼저 낮추어야 할 나의 자존심이나 마음의 문턱이 있다면 주님께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2) 현재 내 삶에서 가장 낮고 초라하다고 느껴지는 돌구유 같은 자리는 어디인가요?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미 그 곳에 와 계십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 여러분의 아픔과 고통을 말씀드려보세요. 도움을 요청해 보세요.

 

(마침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작고 낮은 베들레헴, 그 중에서도 짐승의 먹이통인 돌구유에 누우신 주님을 보며 우리의 교만을 회개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시려고 모든 영광의 문턱을 넘으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살지는 않았는지요. 이제 우리 마음의 문턱을 낮추고, 차갑고 딱딱한 돌구유 같은 우리 심령에 주님을 영접합니다. 성탄의 기쁨이 우리만의 축제가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낮은 곳으로 흘러가 누군가의 떡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기도)

풍성한 은혜의 주님, '베들레헴 에브라다'의 이름처럼 우리 교회를 풍성한 생명의 떡집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정성을 다해 드리는 이 예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주님께 드리는 우리의 사랑과 고백입니다.

오늘 드려진 이 헌금이 우리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배고픈 이들에게는 생명의 양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물질이 쓰이는 곳마다 로마의 압제와 같은 서러움이 물러가고,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위로가 임하게 하옵소서. 드린 손길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채워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세상의 모든 문턱을 허물고 가장 낮은 돌구유에 누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없는 은혜와, 인류의 고통과 비극의 한복판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과, 딱딱하게 굳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러운 사랑의 떡집으로 변화시키시는 성령님의 내주 교통하심이,

작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닮아, 세상의 소외된 곳으로 기꺼이 발걸음을 옮기며 생명의 떡을 나누기로 결단하는 한교회 모든 성도들과 그 가정 위에, 그리고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다음글 20251214 한교회 주일예배(대림절3) 박준원 2025.12.14 0 44

51161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도계로95번길 6-10 (도계동) TEL : 055-277-9940 지도보기

Copyright © 한교회 ;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51
  • Total195,182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