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동료가 되는 사람들” 【 룻기 1장 16-17절/ 고린도전서 16장 18절/ 누가복음서 10장 33-37절 】 |
이은정 목사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베다니집 관장)
【새번역】
룻기 1장 16-17절/ 그러자 룻이 대답하였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 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8절/ 이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서 10장 33-37절/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를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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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반갑습니다. 각 연합회와 지회에서 베다니집 헌신예배로 모여주시고, 베다니집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며, 모인 헌금을 보내주신 그 사랑 덕분에 저희 베다니집이 무탈하게 한 해를 잘 보내었습니다. 그 마음과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다시 베다니집 헌신예배로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작년 베다니집 헌신예배 설교를 통하여서는 우리 베다니집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집인지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셨던 베다니의 마르다, 마리아 자매의 집은 단지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쉴 수 있는 집이며, 새로운 가족들이 모인 곳입니다. 은퇴하신 여교역자님들에게는 우리 베다니집이 바로 그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 삶의 동료가 되어주는 사람
우리가 살면서 깨닫는 것 중 하나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우리를 힘나게 하는 일은 아주 대단한 이벤트나 큰 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곁의 작은 손길, 작은 말 한마디가, 또 늘 함께 해 주는 기도가 정말 큰 위로이며 힘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것,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결국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가는 길이 힘들어도 함께 하는 이가 있으면 우리는 그 길을 견디어 냅니다.
룻과 나오미의 모습은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동료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 곁에 남기로 결심합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르는 곳에 나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룻은 낯선 땅,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나오미를 혼자 걷게 하거나, 자신이 혼자 걷는 것을 택하지 않고 둘이 함께 걷는 것을 택했습니다. 룻과 나오미는 서로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슬픔과 괴로움을 넘어 서로의 삶에 기대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나오미에게 건네는 룻의 말이 여신도들이 베다니집에 건네는 말 같지 않습니까? 베다니집이 여신도들에게 건네는 말 같지 않습니까? 서로서로 주고받는 고백같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한평생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며 살아온 여성 목회자들의 삶을 곁에서 본 여신도들이 “목사님, 전도사님의 그런 삶을 저희도 함께 나누겠습니다” 라는 고백으로 시작된 공동체가 베다니집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사랑과 섬김의 동행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신도들께서는 우리 베다니집에 오시면 이렇게들 많이 말씀하십니다. “어른들을 자주 찾아 뵈어야 하는데, 자주 못 와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방문’이라는 것은 단순히 베다니집 건물을 찾아온다는 말씀이 아니겠지요. 은퇴 여교역자들의 삶의 자리에 ‘가까이’, ‘곁으로’ 다가오는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직접 오시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 또한 룻이 나오미의 삶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한 것과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베다니집에는 방명록이 있는데, 이 방명록에는 단순히 방문자 이름과 날짜만 적는 것이 아닙니다.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방명록 한켠에 꼭 기도제목을 써 주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어른들께서는 아침저녁으로 기도회로 모이시고, 낮시간에도 개인기도 시간을 가지십니다. 저는 “목사님, 전도사님, 방명록의 기도 제목들을 보시고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어르신들께서는 “이젠 내가 나이가 많아서 지금 하고 있는 기도도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 다 못 해요”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다음날 보면, 방명록에 적힌 기도 제목들을 당신들 기도 노트에 다 옮겨 적어 놓으셨습니다. 우리 어른들 역시 여전히 룻의 마음으로 여신도들의 삶 가까이, 곁에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
고린도전서의 말씀에서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믿음의 성도들을 도우려고 헌금을 모으며 그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이 지친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합니다.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읽은 새번역 성서에서는 ‘생기를 불어 넣는다’고 되어 있고, 개역개정 성서에서는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되어 있는 이 말은 ‘αναπαυω(아나파우오)’라는 단어입니다. ‘쉬게 하다, 원기를 돋우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돕고 섬기는 일이 우리의 마음을 쉬게 하고, 지친 마음에 다시 원기를 돋우어 준다고 바울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마음을 베다니집에서 경험합니다. 어느 날, 베다니집에 들어가는데, 신발장에 제 실내화가 없어서 이리저리 찾아보니, 한 목사님께서 제 실내화를 따로 씻어 놓으셨더라고요. “관장님, 내게는 기쁜 일이에요.” 저는 그 한마디의 말에 마음이 시원해지고, 참 따뜻해졌습니다. 얼마 뒤 또 실내화가 보이지 않아서 혹시나 하고 수돗가로 가보니 역시나 역시나 제 실내화가 깨끗하게 빨아져서 물이 쏙 빠지도록 세워져 있는 겁니다. “목사님, 이번에도 또 제 신발 씻어두셨네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목사님께서 제 마음을 아셨는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관장님,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어딜 다녀와서 신발이 더러워져 있으면 우리 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없이 싹 빨아서 놓으셨거든요.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그 좋은 기분이 지금도 안 잊혀져요. 그래서 내가 관장님 신발도 빨아두는 거예요. 나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그때는 내 기분만 좋은 줄 알았는데, 우리 아버지 기분도 좋으셨을 거 같아!”
삶의 동료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베다니집 어른들의 작은 섬김 속에서 서로가 진짜 삶의 동료가 됨을 봅니다. 서로에게 삶의 기쁨과 생기를 건네는 섬김을 여전히 실천하고 계신 우리 베다니집 어른들을 위하여 더 많이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강도를 만나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돌보는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쓰러진 사람에게 ‘가까이’ 갑니다. 가까이 가서 상처를 싸매어 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내어 더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된 사람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계십니다. 성서에서 ‘가까이’를 뜻하는 말은 ‘προσερχομαι(프로셀코마이)’인데요, 이 말은 ‘가까이 오다. 방문하다’ 라는 뜻과 함께 ‘동의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처지에 동의하는 것, 공감하는 것이 가까이 가는 시작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이웃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고, 나누며, 상대방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이웃은 삶의 동료가 되는 사람입니다.
베다니집 목사님과 전도사님들께서는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베다니집 마당을 쓰는 일이나 음식을 준비할 때 멸치를 다듬는 일, 바느질이나 빨래를 하며 지내시는 모습은 보통의 가정집에서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라도 누군가가 “우리 이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우리 헌금 보냅시다!”라고 의견을 내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좋습니다. 그럽시다.” 그렇게 외치시는 거죠.
‘여신도회주일, 남신도회주일, 여교역자주일, 청년주일, 총회선교주일, 여신도회금식선교대회, 베다니집헌신예배, 세계기도일예배, 해외선교사 두 분, 국내 선교사 한 분에게 후원헌금, 한신대전액장학금모금, 한신대오월계단재건모금’ 이것은 지난 한 해 베다니집 어른들께서 베다니집 이름으로 하신 헌금입니다.
베다니집 어른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많은 금액을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여서 우리의 역할을 다하자. 우리 교단과 총회, 신학교와 교회가 있기에 우리가 베다니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표현은 다르지만, 베다니집 어른들은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바로 이 마음이 오늘 베다니집의 힘입니다.
현직에서는 은퇴하신 여교역자들이시지만, 이들은 그들의 평생의 일, 목회와 섬김의 일을 노후의 삶에서도 여전히 이어가고 계십니다. 베다니집 헌신예배를 통한 헌금은 은퇴여교역자 자신들의 자발적 가난을 기억하여 준 여신도회와 전국의 기장교회의 섬김과 봉사이며, 그 섬김과 봉사에 힘입어 베다니집 어른들은 지금도 봉사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침과 저녁 시간에 드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교단과 총회, 기장교회를 위한 기도, 여남신도회와 모든 후원자들을 위한 기도를 이어가며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과 동시에 지금 각자의 형편에서 가진 것을 내어주고, 나누는 봉사와 섬김을 이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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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행복을 가꾸는 것은 자기 손이 닿는 데서 꽃밭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주변에, 손을 내밀 수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베다니집은 여신도회의 꽃밭입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 안에서 만난 자매로서, 여교역자들의 삶을 공감하고, 상대방의 처지를 서로 귀하게 여기며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동료로서, 또 자신들의 것을 내어놓아 나누며 돕는 선한 이웃이 되어 가꾼 꽃밭입니다.
베다니집은 헌신예배와 헌금뿐만 아니라, 각가지 모양으로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섬김으로 인하여 행복합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적 행복, 실천적 행복의 열매인 베다니집을 위하여 더 많이 기도해 주시고, 또 찾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른들께서는 방문 격려해 주시는 날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예전 목회현장에서 느끼셨던 그런 기쁨을 느끼시는 겁니다. 차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과거의 목회 이야기도 꺼내시면서 기뻐하십니다.
이번 베다니집을 위한 헌신예배의 말씀을 통하여 여신도회와 베다니집이 함께 걷는 동료이며, 가까이 곁에 있어 주는 신앙과 사랑의 동반자임을 묵상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은퇴 여교역자님들의 베다니집에서의 삶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후원과 도움을 주는 관계를 넘어서 곁에 있어 주며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적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 다함께 기도합시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 모두를 주님의 자녀 삼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삶의 동반자, 신앙의 동료로 묶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베다니집의 어르신들과 여신도회, 전국 기장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룻의 고백처럼 서로의 길을 함께 걸으며,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랑을 실천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아픔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 가까이 가는 섬김을 이어가게 하소서.
이제 우리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손길로, 교회 안팎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드리는 마음으로 나타내게 하소서.
베다니집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동행이 살아 숨 쉬는 ‘꽃밭’임을 기억하며, 우리가 그 꽃밭을 가꾸는 일꾼이 되게 은혜 베풀어 주소서.
오늘 이 헌신예배를 통하여 마음과 삶으로 다시 한 번 서로를 돌아보고,
더 깊은 사랑과 섬김, 나눔을 결단하는 기회가 되게 하시고,
내가 곁에 있는 이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공감하며, 묵묵히 손 내미는 진정한 동료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베다니집의 은퇴여교역자님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더하여 주시고, 여신도회와 온 교회의 사랑의 헌신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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