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의 즐거움> 사무엘상 3:8-11
(인사하기)
성경통독은 즐겁습니다. 성경통독은 쉽습니다.
성경통독은 인생의 문을 열어줍니다.
우리교회는 새벽5시에 성경통독문자를 보내드립니다.
사실 하루에 읽기에 적은 분량은 아닙니다.
평균 성경 네 다섯장 20분에서 30분 정도 분량입니다.
분량이 어느 정도 있다보니, 진도가 쭉쭉 잘 나갑니다.
성경읽기의 즐거움 중에 하나는
다양한 성경인물과의 만남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인물은 닮고 싶고 어떤 인물은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성경통독의 즐거움이지만,
부제목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입니다.
성경인물들은 어떤 목소리에 따라 인생에서 중대한 일을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어떤 목소리를 따를 경우 인생이 완전히 망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어떤 목소리를 따를 경우 인생이 오히려 반전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목소리를 듣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을 걷게 됩니다.
특별히 열왕기서에서는 이 길을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던 왕들은 다윗의 길을 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상을 섬기고 악행을 저질렀던 왕들은 여로보암의 길을 갔다고 표현합니다.
오늘은 성경인물들이 어떤 목소리를 듣고 따를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선택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데, 신앙생활을 하는데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목소리는 절대로 들으면 안되는 목소리입니다. 악인의 소리입니다.
우리를 멸망으로 사망으로 가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망하게 하는 소리입니다.
사무엘하13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에게는 여러명의 아내가 있었고 이복남매들이 있었습니다.
암논은 이복여동생 다말을 짝사랑하다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암논과 사촌지간인 요나답이 그 사실을 알고 한가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다말에게 음식을 해서 자기 침실에서 먹여달라고 하면서 겁탈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암논은 요나답의 제안을 받아들여 다말을 겁탈한 후 마음이 싹 바뀌어서 다말을 쫓아버립니다.
다말의 오라비였던 압살롬은 치밀한 복수를 계획합니다. 그는 몇 년 후 암논을 암살합니다.
이 일로 압살롬은 도망자가 되었고, 아버지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킵니다. 결국 압살롬도 죽임을 당합니다.
요나답의 악한 꾀로 인해 끔찍한 비극이 다윗 집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요나답의 뜻은 영리하다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섬뜩한 악한 꾀입니다.
요나답과 같이 악한 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한 가문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2장의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을 때입니다.
르호보암은 원로들에게 어떻게 통치를 해야할지에 대한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원로들은 백성의 종이 되셔서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시면 백성들은 평생 임금님을 따를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이번에는 자신과 함께 자랐던 젊은 신하들에게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젊은 신하들은 원로들과는 다르게, 더욱 더 가혹하게 백성들을 대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놀랍게도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섬김의 리더십 대신에 억압과 폭력의 리더십을 선택합니다.
그로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호보암의 억압과 폭력에 대항하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왕국이 분열되었습니다.
지금 네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패와 차별의 리더십에 저항하며 온 국민들이 벌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번째 악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한 가문이, 한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한교회 남신도 회원님들은 결코 이러한 악인들의 소리와 유혹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두번째입니다. 우리가 가장 유혹받기 쉬운 소리입니다.
누구의 소리일까요? 자기 자신의 소리입니다.
사무엘하11장의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다윗왕은 이제 자신이 직접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성공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자신 만의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습니다.
현상황은 이스라엘과 암몬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시에 다윗은 왕궁에 있었습니다.
저녁에 잠시 잠을 잘 수 있는 여유도 있었습니다. 자다 일어나 옥상을 거니는데, 한 아리따운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옥상 문화가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다윗은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신하를 보냈습니다.
신하가 다녀와서 보고하였습니다. 엘리암의 딸이며,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전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녀가 유부녀, 그것도 자신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대로 멈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소리에 충실한 나머지 그녀를 불러들였습니다.
밧세바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우리야를 사지로 내 몰아 죽게 만들고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대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가문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싶다는 욕망의 소리에 다윗은 무너졌습니다.
그 댓가는 다윗 가문에 참혹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소리는 자기 내면에서 들리는 욕망의 소리입니다.
이 일이 있고나서 이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처음에 말씀 드렸던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범하는 사건입니다. 그 일로 압살롬이 암논을 암살하게 됩니다. 압살롬이 나중에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 왕을 몰아내고 왕궁 옥상에서 다윗왕의 후궁들을 벌건 대낮에 욕보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 모든 악의 씨앗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함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건을 보면, 성적인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소름끼치도록 뼈속까지 새기게 됩니다.
사무엘상 13장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들이 사무엘을 조르고 졸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사 사울을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처음에 사울은 겸손의 리더십을 가지고 열심히 왕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습니다.
어느날 블레셋과 전쟁을 하기 위해 길갈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워낙 블레셋 군대가 어마무시하여 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숨거나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빨리 와서 번제를 드리고 전쟁을 해야 하는데, 이레를 기다렸으나 사무엘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기 스스로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
내가 드려도 괜찮겠지, 상황이 너무 다급하니 내가 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때마침 사무엘이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찌 번제를 직접 드렸느냐고 질책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사울의 왕조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 왕으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대로 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내 경험, 내 기준, 내 생각을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사울이 뭘 그리 잘못을 했다고 하나님께 팽을 당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울은 정말 억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잘해보고자 한 것인데, 뭐가 문제일까요?
바로 이어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사울에게 또 일어납니다.
사무엘상 15장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되 100%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울은 또 자기 생각대로 가장 좋은 짐승들은 아깝게 여겨 살려두고 아말렉 왕 아각도 포로로 잡아왔습니다.
사무엘이 양 떼의 소리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고 살려두었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이것이 악한 일이라고 질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말씀을 전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삼상15:22)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내 생각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 생각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선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의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세번째 소리입니다. 우리가 듣고 선택해야할 소리입니다.
사무엘상 3장의 이야기입니다.
한나가 하나님께 정말 간절히 기도하여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주신 사무엘을 한나는 젖을 뗄 3살 즈음에 엘리 제사장이 있는 성전에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11살 무렵 하나님께서 잠을 자고 있는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쪼르르 달려갑니다.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에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줄 알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무엘에게 알려줍니다.
누가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라고 일러줍니다.
사무엘이 다시 누웠을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그 때, 사무엘은 배운대로 하나님께서 대답하였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엘리 제사장 집안에 대한 심판을 말씀 하십니다.
사실 어린 사무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들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통독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을 배우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사무엘처럼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상3장19절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사무엘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하는 말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모두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가 하는 말은 하나님이 보증해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사무엘이 무슨 말을 하든지, 100%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사울 대신에 새로운 왕을 뽑기 위해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들을 만나보라고 베들레헴으로 보내십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큰 아들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이 사람이로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겉모습을 보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하나님은 중심으로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을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두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내가 양을 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빨리 데리고 오라고 사무엘이 말합니다.
막내 다윗이 왔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 이 아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름으로 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참 좋아합니다.
내 생각, 내 뜻도 있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리는 사무엘의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내가 경험해온 대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기도를 통해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을 안 주실 수도 있고, 기도해도 분별이 안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말씀, 어떤 환경들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통독, 성경묵상이 중요합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읽다보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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