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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8 한교회 주일예배(여신도회주일)
박준원 2025-01-18 추천 0 댓글 0 조회 100





 

● 2025년 여신도회주일 참고 자료 설교 

 

 

희망으로 부르는 생명과 평화의 새 노래

(에스겔 47:8-12. 로마서 8:18-25)

 

이 영 미 목사(한신대학교 교수구약학)

 

 

오늘은 예배력에 따라 주현절 둘째 주일이면서 교단이 제정한 여신도회 주일로 지킵니다. 여신도회 2025년 주제는 제109회 총회 주제와 같은 교회여다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노래하자(에스겔 47:8-12; 시편 23:1-6; 로마서 8:18-25; 요한복음 14:6-7)입니다이 시간에는 특별히 구약의 에스겔 47:8-12와 로마서 8:18-25의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2025년 새해가 밝았지만한국의 정치 경제적인 상황은 우리가 평화의 노래를 부르기 힘들게 합니다지난여름 겪었던 폭염과 갑작스러운 폭우 등으로 대표되는 기후 위기고령화와 저출생으로 인구감소에 대한 걱정과 노후 복지에 대한 불안감스펙을 쌓아도 취직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고충 등 모든 생명이 힘든 시기를 보내느라 기쁜 마음으로 생명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현재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는 절망의 상황이기도 합니다어느 시절이든 사람들은 종말이 다가왔다는 말을 읊조리고어른들은 젊은이를 보면서 말세야말세야!라며 혀를 끌끌 차곤 합니다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정말로 종말이 아닐까?”하는 생각될 정도로 위기로 가득 찬 절망의 때입니다이처럼 평화가 위협당하고 생명이 신음하는 지금교회가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노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기독교는 절망의 종교가 아닙니다절망의 절박한 순간마다 신앙의 선배들은 구원의 희망을 놓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구했습니다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질 때도 아브라함은 열 명의 의인만 있어도 구원해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창세기 18:32)을 믿고 희망을 걸어 보았지만 의인 열 명을 찾지 못했습니다예레미야 선지자도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예루살렘]을 용서하리라”(예레미야 5:1)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그 한 사람을 찾아 돌아다녔지만예루살렘은 멸망했습니다열 명의 의인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고한 명의 의인이 없어서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뼈아픈 역사를 경험했건만지금 하나님께서 한 명의 의인만 있어도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노래할 수 있게 해주리라 약속하신다면 그 의인이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성도가 있을까스스로 물으며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돌아봅니다.

 

방금 봉독한 로마서 8장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은 소개되지 않았지만로마제국의 기독교 탄압 상황에서 피조물까지 신음하는 고통의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19절은 이 고통 속에서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를 간절히 기다린다라고 합니다이 절에서 두 단어를 주목합니다하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여기서 하나님의 자녀란 일반적인 교회 성도를 말하는 보편적 의미가 아닙니다오늘 봉독한 본문은 아니지만, 14절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  육신의 생각과 탐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지금 우리가 직면한 생명의 위기 중 가장 피부에 와닿는 문제는 기후 위기를 비롯한 생태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생태 위기는 다름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입니다육신에 속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와 부귀영화를 위해 자연을 대상화하고동물을 학대하며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참혹한 환경 속에서 대량 축산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피조물은 인간의 탐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따라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자신을 온전히 비우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빌립보서 2:6-11)는 피조물이 간절히 기다리는 자녀의 표본이십니다인간의 욕망으로 야기된 피조세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비움과 십자가의 영성을 우선적으로 회복해야 합니다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기도 하며그 정체성이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고난을 호소하며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인류가 인간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근대문명이 진보라는 핑계로 앞으로만 달려 나갈 때피조물은 성장과 번영의 채찍 앞에 짓눌리고 썩어 죽어가게 됩니다탐욕이라는 육신의 영을 따르는 자들이 질주하는 그 길은 허무와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피조물은 인간들이 그 경주를 멈출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탐욕으로 가득한 마음을 비우고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간절한 기다림이 있다면 구원의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평화의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19절에서 주목하는 단어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리다로 번역된 희랍어 άποκαραδοκία(아포카라도키아)는 머리(καρα카라)와 주시하다(δοκεύω도케우오)가 합성된 단어로 머리를 내밀고 기다리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우리 말 표현에도, “목을 빼고 기다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절히 기다린다라는 것은 목을 뽑아 바라보다는 뜻으로 학수고대(鶴首苦待학의 머리처럼 길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기다리다)와 같은 의미입니다우리는 지금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간절히 구원을 기다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희망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바울은 24절에서 희망이 구원을 얻게 하는 힘이라고까지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24)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다시 말하면 불가능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고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성 어거스틴이 말하기를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다고 합니다그들의 이름은 분노와 용기입니다분노는 현실에 대한 분노이며용기는 현실을 그대로 두지 않으려는 용기입니다지구와 모든 생물의 울부짖음과 고통을 목격할 때거룩한 분노가 우리를 정의를 향한 희망적이고 적극적인 용기로 인도할 것입니다.

 

25절 전후반 절에서 바울은 두 개의 동사-희망하다(ἐλπίζομεν엘피조멘능동형)와 기다리다(ἀπεκδεχόμεθα아펙데코메싸수동형)-를 병행시키면서희망하는 자세의 두 가지 미묘한 차이를 보여줍니다성서적 맥락에서 희망한다는 것은 가만히 서서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투쟁 가운데 탄식하고 울부짖으면서새로운 생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마치 해산하는 것처럼극심한 고통의 시기를 겪지만 새로운 생명이 생겨납니다그럼에도 그 희망인 구원은 인간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니 인간은 기다리는 겸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비롯한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감한 행동이 얼마나 시급한지 알고 있습니다생태 문제 대한 기장인의 높은 관심도는 한신대학교 교학협력센터가 2024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도 잘 드러납니다한국기독교장로회 제106회 총회에서 결의한 탄소 중립선언을 교회가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 86.9%(반드시 필요하다 52.8%; 필요하다 34.1%)가 필요하다고 응답하였습니다특이점은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성별 편차인데여성은 95.5%, 남성은 85.5%가 필요하다고 응답함으로써 여성들의 생태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여성 응답자의 경우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없었습니다(전혀 필요없음 0%; 필요없음 0%). 여성 응답자들은 생태 위기의 심각성을 공감하는 감수성이 높음을 보여줍니다.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생태적 회심입니다생태적 회심이란 우리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중심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두 번째 본문인 에스겔 47장 8-12절은 하나님의 생명 살림과 치유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잘 보여줍니다성전에서 나오는 물을 주제로 하는 47장 1-12절에는 물(마임מַיִם)이 12번과 강(나할נַחַל)이 6(יָם)이 2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물이 중심 단어입니다주목할 점은 그 물이 하나님의 동산/교회/성전에서 흘러나온다’(에스겔 47:1,12)라는 점과 물이 생명 살림과 치유의 원천이 된다’(에스겔 47:8-12)라는 것입니다에스겔 본문은 자연과 인간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상호적인 관계임을 잘 보여줍니다그 물이 흐르는 곳마다 나무가 무성해지고풀이 돋아나고 약초가 자랍니다그 약초가 아픈 이들을 치유합니다또한 이 본문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자연 안에 속한 부분적 존재로 자연에 의존하는 생명임을 깨닫게 해줍니다어떤 이들은 생태 위기를 인간과 구별된 자연의 위기로 다르게 생각하지만생태 위기가 생명 위기와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생각과 마음그리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 대해 완고하기 때문에 생태적 회심이 느리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모릅니다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긴박하면서도 동시에 느린 변화의 리듬 사이에서 더 나은 균형을 찾기 위해 매일 새로운 방법들과 영감들을 얻습니다물론 우리는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온 우주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으로 신뢰하고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로마서 8:25 참조). 바울이 8장에서 말한 탐욕을 버리고 자신이 최고라는 교만을 버리고성령으로 마음을 채우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적극적인 기다림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 온 기장 여신도회가 생명 위기의 시대 생명을 살리는 부활 신앙의 희망이 되어주기를 기도합니다그곳에 평화 세상인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을 믿습니다이를 위하여 희망으로 부르는 생명과 평화의 노래/기도로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희망으로 부르는 생명과 평화의 노래/기도

우리를 공동의 집에서 살아가는 우주적 가족으로 지으시고창조하신 이 세계의 모든 다양성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신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합니다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를 통해 우리는 사랑과 양분보금자리와 보호를 경험하면서도지구와 깊이 연결되어 살지 못했습니다우리의 이기심과 탐욕방임과 학대가 기후 위기와 생물다양성의 상실인류와 모든 동료 피조물의 고통을 초래했습니다지구와 모든 피조물의 탄식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희망과 정의이신 성령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우리가 탐욕을 버리고탄식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도우시고구원자이신 예수님과 같은 연민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당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피조물이오니우리에게 이 지구와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갖게 하소서모든 생명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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