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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한교회 주일예배(제주4.3기념주일)
박준원 2024-04-07 추천 0 댓글 0 조회 68





 

 

 

누가 어떻게 부활하는가? (14:15~31 / 23:50~24:12)


윤태현 목사 (한울교회 / 제주노회 정의평화생명위원장)

 

오늘은 부활주일인 동시에 우리 교단이 제정한 제주 4.3 기념 주일입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놀라운 부활의 소망과 위로가 76주기를 맞이하는 4.3항쟁의 수많은 아픔 위에, 10주기를 맞이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위에, 7년째 바다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는 스텔라지호 유가족 위에, 500일 넘게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위에, 그리고 부활의 소망이 너무나도 간절한 이 땅 모든 이들 위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3항쟁 당시 마을 단위의 토벌과 집단 학살이 최초로 자행된 서귀포 의귀리마을에 조성된 희생자 묘역에 새겨진 추모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그 끝을 맺습니다.

 

“(전략) 봄이면 희망처럼 삐죽이 새순 돋지 않던가요. 참혹한 시절일랑 제발 다시 오지 말라 빌고 빌며 뒤틀린 모진 역사 부채로 물려줄 수는 없다며 봉분 다지고 잔디 입혀 해원의 빗돌 세우나니, 여기 발걸음 한 이들이여! 잠시 옷깃을 여미어 한 가닥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 보듬고 가신다면 헛된 죽음이 아니라 부활하는 새 생명이겠나이다.”

 

긴 세월 침묵을 강요당하며 고통받던 남은 자들이 어렵게 조성한 합동 묘역에 새겨 넣은 글귀는 부활을 신앙의 정수로 여기는 우리 성도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뻐하는 오늘, 여전히 부활의 노래가 요원한 수많은 아픔을 함께 돌아보며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서 본문은 참혹한 십자가 처형 이후에 벌어진 예수님의 장례절차를 묘사합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불안과 공포에 떨던 그때 아리마대 출신 요셉이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감히 내어달라고 청합니다. 당시 제도나 상황을 짐작건대 쉽지 않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요구였습니다.

다른 복음서의 내용을 더해보면 요셉은 공의회 의원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 그동안 정체를 숨기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에도 예수님을 두고 내린 공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반대했지만, 그 역시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요셉이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 요구한 일은 그가 이제 더는 침묵하거나 숨지 않겠다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또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공의회와 형을 집행한 로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은 그 또한 목숨을 걸었다는 각오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남들이 너무나 부러워했을 공의회 의원이었던 요셉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 그 특권과 자리를 내려놓고 그렇게 예수님 부활 사건을 향해 걸어갑니다.

4.3항쟁을 추모하며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 한 가지는 서청(서북청년단 혹은 서북청년회)4.3 당시 제주에서 행했던 수많은 악행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38선 이북, 서북지역에서 남하한 이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이 단체에는 꽤 많은 개신교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비호와 적극적인 지원 아래 반공을 빌미로 수많은 제주 도민들을 탄압하고 학살하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들 스스로 정당화한 배경에는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같은 서북 출신이면서 더군다나 경찰서장이라는 지위를 갖고 있었음에도 죽음의 광풍 속에서 수많은 제주 도민의 목숨을 살려낸 의인이 있습니다. 바로 문형순이라는 인물입니다. 문형순 서장은 모슬포 지역에 근무할 당시에는 본 교단의 조남수 목사’(*당시 모슬포교회 시무)와 협의를 통해 많은 생명을 구했고 특히, 한국 전쟁 발발 이후에 예비검속이란 이름으로 또다시 수많은 제주 도민들이 무분별한 희생을 당할 때 근무하던 성산포 지역에 내려진 학살명령을 거부하고, 수백 명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당시 학살 명령이 담긴 공문에 그는 부당하므로 불이행이라는 짧고 명확한 답으로 회신했습니다. 문형순 서장이 다른 서북지역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었던 대가는 예상되는 바와 같습니다. 수많은 서북 출신의 사람들이 경찰과 군에서 출세하고 훗날 정치인으로 경제인으로 변모하며 이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으로 승승장구하던 때에, 극장매표원 등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가다 가족도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리마대 요셉은 그 후에 어찌 되었는지 성경에는 다른 기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역시 다른 목소리를 낸 대가를 치렀을 것입니다. 십자가형 당한 예수님을 편들은 공의회 의원을 결코 그냥 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라졌던 이름이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 따라 함께 되살아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고 여전히 숨죽인 수많은 이 땅의 양심들에게 희망이요 푯대가 됩니다. (4.3) 그 죽음의 광풍 속에도 한 줄기 인류애의 빛이 있었음을 오늘 문형순이란 이름이 되살아나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출애굽 본문은 야훼 하나님의 놀라운 해방사건의 절정에 해당하는 홍해 바다 사건입니다. 민족의 해방을 이끌었던 모세는 넘실대는 홍해 바다 앞에서 하나님께 소리 높여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모세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민족을 구원하여 해방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출애굽을 앞서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는 그런데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여전히 그 눈이 흐려지지 않고 기력이 정정하던 그때,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에만 담은 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그 무덤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시작되며 대한민국 사회를 또다시 이념 대결로 갈라놓은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4.19혁명으로 하야하고 쫓겨 간 이승만입니다. 2월에 개봉된 건국전쟁이란 영화는 이미 대한민국 역사에서 4.19혁명으로 그리고 헌법 전문에 기록된 정신으로 평가가 끝난 인물을 다시 소환하여 그 이름을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 중심에 한국교회가 있다는 점입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인 1948년 미 정보국 CIA가 작성한 첩보보고서 [한국의 생존 전망]에서 이승만에 대한 인물평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모세와 메시아가 결합된 한국판 구원자의 역할을 스스로 창조했다.” 그런데 이 문장 뒤에는 그는 자신의 입지가 가진 어려운 정치적 현실들을 거의 잊지 않았다라는 말이 뒤따르는데 의역하면 자리 보신에 철저한 인물이었다는 말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나던 때를 출애굽에 빗대어 스스로를 모세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모세는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지기를 거부했습니다. 수차례 법을 고치고 부정선거를 동원하고 정적을 암살하며, 마치 애굽의 바로처럼 되고자 했습니다. ‘애굽을 닮지 말라던 야훼 하나님의 끝없는 말씀에 귀를 막았습니다. 끝내 민중의 심판을 받았고 긴 독재의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4.3 당시에 국무회의를 통해서 제주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명확한 정부 최고 지령에 의한 수많은 학살이 자행되었고 3만 명에 달하는 제주 도민이 희생되었습니다(*희생자의 1/3은 어린이, 노인, 여성).

 

그뿐 아니라 여수 순천에서, 한국전쟁 전후로 벌어진 수많은 민간인 학살의 억울한 죽음에도 늘 이승만 이란 이름 세 글자가 따라다닙니다. 공과 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하보다 중요한 목숨 수십만을 앗아간 인물에게 과연 공과를 논한다는 것이 타당한지, 2024년 그 이름이 되살아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이런 말을 합니다. “그대들이 고발한 것과 같은 죄목은 아무것도 이 사람에게서 찾지 못하였소.”(23:14) “도무지 이 사람에게서 공을 찾지 못하였소.”

지식인의 양심으로 순이 삼촌이란 단편 소설로 제주 4.3항쟁을 세상에 드러낸 현기영 작가의 신간 제주도 우다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출국 심사하는 맥아더 사령부 미군이 우리한테 물읍디다. 북조선으로 가겠느냐, 남조선으로 가겠느냐고.” “그래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해십주.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로 가겠다!’하고” “맞아, 맞아. 우린 북조선도 남조선도 아니고 제주도란 말이여!” “하하하, 우린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제주도 우다!” 제주도 우다 1p.295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제주도 우다여전히 좌우의 이념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오늘 또다시 누가 누구를 죽여야만 멈출 것 같은 대한민국에서 서로 다른 대통령의 이름을 연호하며 핏대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린 하나님 나라 우다성도들이 소리 높여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늘 이 땅 하나님 나라는 놀라운 변혁의 시작이었습니다. 세상을 호령하던 바로의 군대를 삼키셨고, 서슬 퍼런 로마의 십자가를 부활의 소망으로 뒤바꾸셨습니다. 숨죽이던 이들을 불러내 세상에 맞서게 하셨고 일생을 바쳐 올랐을 공의회 의원 자리를 낡은 부대로 여기게 하셨습니다. 도망하였던 이들이 용기 내 복음을 증거 하게 하셨고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아침, 우리는 살아나는 것과 없어질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설사 죽는 것처럼 보여도 마침내 되살아나는 그 부활의 길에 우리가 서야 합니다. 홍해 바다 저 깊은 곳으로 사라진 이름이 결코 부활하신 예수님을 대신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눈물 속에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처절한 세상의 공포 속에서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28:20) 임마누엘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았던 부활공동체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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