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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가위 가정예식서
박준원 2024-10-06 추천 0 댓글 0 조회 19

<한가위가정예식서 설교문, 아론의 축복: 민수기 6:24-26>

*자료: 히브리어의 시간(송민원, 서울대 독문과, 한신 신대원, 미국 맥코믹신학교 구약학,

시카고대 비교셈어학과 문헌학, 미국 남침례회 목사, 현재 이스라엘 성서연구원 교수) 복있는 사람들, 2024

 

(함께 읽기) 주님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주님께서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주님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1) 주님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예바레크카 아도나이)

복을 주다라는 의미의 어근 바라크는 무릎을 꿇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편95:6) 여기서 무릎을 꿇자라는 단어가 바라크입니다. 어원대로라면 주님께서 당신을 무릎 꿇게 하시기를 원한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바라크가 말하는 <>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우리의 자세에서부터 출발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2)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베이쉬메레카)

베이쉬메레카의 어근 <샤마르>의 기본적인 뜻은 지키다(keep)입니다. 누군가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한편, 계명과 율법을 어기지 않고 잘 지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키도록 막는 의미도 있고, 누군가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 두는 것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요셉이 갇혀 있던 감옥)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는 구문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분의 뜻을 어기지 않고 잘 지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망까지도 표현합니다. 때로 우리를 인생의 감옥 같은 곳에 가두어서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3) 주님께서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야에르 아도나이 파나브 에일레카)

이 문장의 원문을 직역하면, ‘주님께서 그분의 얼굴을 당신을 향해 빛나게 하시기를입니다. 주님의 얼굴에서 빛이 나와서 축복의 대상에게 빛을 비추는 장면입니다.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시편67:1)와 동일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이 마치 한줄기 조명처럼 우리를 향해 비추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한줄기 빛이 내려와 우리를 비춰주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4)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비훈넥카)

비훈넥카의 어근 <하난>은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라는 의미와 무상으로, 값없음, 이유 없음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속성을 잘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께 복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조건없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에서 나오는 것임을 뜻합니다. ‘값없는은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priceless)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한없이 주시는 값없는 은혜는 그야말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은혜입니다.

 

5) 주님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잇사 아도나이 파나브 에일레카)

(그 얼굴을) ‘드사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나싸>는 기본적으로 위로 들어 올리다라는 뜻입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자면, 주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위로 들어오려 우리를 바라보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깊은 어둠 속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 제 영혼을 살린 성경구절입니다. ‘주님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라는 문장이 제 심장에 박혔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위로 들어서나를 보시다니, 만약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이 계신 곳은 내 아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우리 위에도, 옆에도, 주위에도 계시며 우리 안에도, 우리 밖에도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아래에 계실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절망할 그 때, 하나님은 내 아래에 계셔서 나를 그분의 두 손으로 붙잡아 주시고 계셨던 것을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생각이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던 쓴뿌리를 서서히 어루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밑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우리 아래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 올려다보며 지켜 보호해 주고 계시다는 인식은 우리를 안도하게 합니다.

 

6)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베야 셈 레카 샬롬)

평강으로 번역된 단어는 잘 알려진 히브리어 <샬롬>입니다. 샬롬은 평강, 평화보다는 온전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론의 축복을 마무리하는 이 구절은 온전함의 회복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주변 사람과의 수평적인 관계가 깨어져서 결국 자기 자신과의 관계까지도 깨어진 이들에게 온전함의 회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바로 이 수직적, 수평적 관계의 온전한 회복이 민수기6장 아론의 축복의 최종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힘들고 괴로운 모든 삶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그 본래의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를 회복시키려는 것입니다.

 

7) 광야의 축복

아론의 축복이 주어진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에 돌입한 지 2년이 되던 때였습니다.(1:1) 광야의 삶을 마무리할 무렵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편안하게 먹고 누리며 살라고 주시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38년 남은 광야생활 가운데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40년간 머물렀던 광야는 돌밭이었습니다. 걷다 보면 발바닥과 무릎이 서서히 망가지는 길로, 결코 걷기 편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찾기 어려운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곧 삶이었습니다. 날카로운 바람을 헤치고 걷다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꺾입니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이 땅바닥에 고꾸라져 버립니다. 감히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볼 힘조차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고 바닥을 향해 있습니다. 무릎을 꿇은 그 지점이 바로 <광야의 축복>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나눔

1)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은?

2)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제목 한 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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