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동화큐티, 빅스토리 바이블 - 톰 라이트>
5장 가인과 아벨 (창세기4장)
하나님이 만드신 남자의 이름을 아담, 여자의 이름은 하와였어요.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던 것은 안타까웠지만,
그들은 바깥세상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움과 경이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마침내 그들은 정착할 곳을 찾아서 가정을 꾸렸고,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지요.
아벨은 자라서 양을 쳤고, 가인은 땅을 경작했어요.
두 형제는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함께 일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답니다.
형제는 하나님께 뭔가를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인은 밭에서 키운 것 중에 하나를 가져와 드렸고,
아벨은 자신의 짐승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드렸어요. 하나님은 아벨의 선물은 기뻐하셨지만
가인의 선물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가인은 몹시 화가 났지요.
"너는 왜 화를 내느냐?" 하나님이 물으셨어요.
"조심하거라! 흉악한 것이 너를 잡으려고 돌아다니고 있구나."
그렇지만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속에서 분노가 계속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어요.
어둡고 끔찍한 어느 날, 가인은 거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동생을 죽이고 말았어요.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물으셨어요.
가인은 불안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어요.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제가 동생을 돌보는 사람이라도 되나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미 알고 계셨어요.
가인에게 이제부터 땅이 그의 원수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는 길을 떠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어요.
가인은 에덴의 동쪽 놋 땅에 정착했고, 거기서 결혼해 자식을 낳고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가인의 자손 중 일부는 음악을 만들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은 금속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어요.
아벨을 잃은 아담과 하와는 무척 슬퍼하며 그를 위해 오래도록 탄식했어요.
하지만 이후에 그들에게 또 다른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의 이름은 셋이었어요.
<성경동화 큐티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1. 성경에서 히브리어 이름의 의미를 알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성경동화 큐티에서는 성경인물들의 히브리어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담은 땅을 의미하는 아다마에서 유래하였고 인류, 인간을 의미합니다.
하와는 살다를 의미하는 하야에서 유래하였고 생명을 의미하며, 모든 산 자의 어미로 불리고 있습니다.
가인은 소유하다, 얻다라는 의미이고 아벨은 허무, 숨을 의미하고 셋은 놓다를 의미합니다.
정말 이름처럼 가인은 모든 것을 다 소유하려고 하였습니다. 아벨은 허무하게 죽었고 셋은 아벨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2.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면서 큐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들으시다가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문자나 톡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 내용도 함께 고민하면서 풀어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도 받고 아벨의 제물도 받으셨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아벨처럼 모두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가인처럼 거절의 아픔,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절의 상처를 가인은 분노로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기보다는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불타올랐습니다.
가인은 그 분노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동생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됩니다.
가인은 자신과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동일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제물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가인을 사랑하십니다.
다음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을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시의 오류에 빠지곤 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존재를 성적과 동일시합니다.
수능시험을 망쳤다고 1교시를 끝내고 옥상에 올라가 자신의 인생을 마감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존재를 회사의 수익과 동일시합니다.
자신을 어떤 물건과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명품백 등으로 착각합니다.
저도 한 때 설교와 제 자신을 동일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설교를 스스로 망쳤다고 생각이 들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동일시에서 놓임을 받고 나서는 설교를 잘 못해도 다음에 잘해야지 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과도 동일시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보내어주셨습니다.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가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살다보면 잘못할 때도 있고 거절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존재가 실패한 것도 거절당한 것도 아님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무엇도 우리와 동일시 될 수 없는 존귀한 존재로 창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일시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도록 손잡아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아들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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