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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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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7 한교회 주일예배(부활절2)
박준원 2025.4.27 조회 56




 

 

<설교: 좋은 친구들, 요한복음15:12-14)>


1)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이야기

- 나는 매일 죽노라! (옛사람, 옛자아에 대한 죽음을 고백하는 사람들!)

- 그리스도인은 매일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사람들입니다.

- 혈변에 대한 이야기: 뭔가 잘못되었구나! 직감! 2-3일 정도

- 머리가 하애졌다! 암인가? 나도 이제 죽나?

- 첫번째 떠오른 생각, 삶을 정리해야겠다! 짐이 너무 많다! 줄이고 정리해나가자!!

- 구입, 소비에 관심보다는 정리, 나눔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 어제 혈변에 대한 비밀이 풀렸다. 야채스프, 빨간색 비트가 많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것이 원인이었다!!

2) 좋은 친구들

오늘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영국의 어느 출판사에서 상금을 걸고 친구라는 말의 정리를 공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1등의 친구 정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친구란 온 세상이 내 곁을 다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다.

-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도 친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행은 누가 진정한 친구가 아닌지를 보여준다.

(불행에 처했을 때,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가 구별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세가지로 정리해주는 명지대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님이 좋은 친구를 세가지로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즐거움입니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고 그 친구를 만날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게 하는 친구입니다. 만나면 세상 편안하고 즐겁고 기쁜 사람입니다.

2) 둘째, 소통입니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면 잘 통합니다. 마음이 시원해 집니다. 척하면 척입니다. 내 마음을 잘 공감해주고 잘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3) 셋째, 상호성장입니다. 그 친구를 통해서 항상 도전을 받습니다. 함께 있으면 나도 덩달아 성숙해집니다. 선순환이 계속 이루어지는 친구입니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잘 통하고, 함께 성장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이며, 가까이 지내야할 사람이라면,

반대로, 이 친구랑 있으면 세상 불편해, 사사건건 트집이야, 내 삶의 장애물이야!! 항상 내 발목을 붙잡아!! 그런 사람들은 가능하면 멀리하라고 김익환 교수님은 조언을 합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행복에 대한 아주 오랜시간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행복의 첫번째 조건은 행복한 인간관계였습니다. 친구이건, 배우자이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정말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의 행복지수가 높았다는 연구결과였습니다.

에머슨이라는 시인은 친구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였습니다.

집을 가장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은 자주 찾아오는 친구들이다!!

저는 좋은 친구들이 내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헬라어로 친구는 필로스입니다. 필로는 사랑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필로스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입니다.

철학의 헬라어는 필로-소피아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사랑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다!!

바꾸어 말하면 최고의 친구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최고의 친구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조금 어렵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 알아야 우리의 믿음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면 잘못하다가는 엉뚱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동등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성부는 사랑의 출발과 근원이 되시며 성자는 받는 사랑을 기뻐하시고 반응하는 분으로 계십니다.

성부와 성자는 영원 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십니다.

또한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실 때, 항상 성령 하나님을 보내심으로 사랑하십니다.

성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평생을 통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셨습니다.

십자가 고난, 부활 가운데서도 성령님은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을 성령으로 사랑하십니다.

4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성령님이라는 사랑의 끈으로 서로의 하나됨을 유지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완전한 행복의 상태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저는 삼위일체를 공부하면서, 좋은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세분은 정말 좋은 친구들이구나!! 서로를 사랑으로 하나되게 만들고 완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사시는 구나!!

그러한 세상 놀라운 좋은 친구들 관계 속으로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초대해 주십니다.

예수님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곳은 완전한 평화, 완전한 사랑, 완전한 기쁨, 완전한 충만이 있는 곳입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과 친구가 되면,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도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핍에 대한 이야기>

하버드대 경제학교수, 프린스턴대 심리학 교수 두 분이 공저한 <결핍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라는 책을 소개하며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돈이 부족할 때, 마감 시간이나 약속 시간에 쫓길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돈이 부족해, 시간이 모자라, 이러한 결핍은 놀랍게도 우리의 생각 자체를 바꾸어버린다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능력, 감정, 행동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핍은 돈과 시간이 정말 부족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부족하는 생각 자체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부족하다는 생각이 우리의 정신적 여유를 갉아먹고 오직 그 문제만 생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러한 결핍, 부족하는 생각에 갇히는 것을 터널링이라고 부릅니다. 터널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터널에 갇히면 오직 결핍이라는 하나의 문제만 보입니다. 그래서 다른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고 실수하거나 무시하게 됩니다.

실험에 따르면, 결핍의 터널에 갇히면, 일시적으로 지능지수가 13점 낮아졌다고 합니다. 실수도 잦고 집중력, 자제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계속 실수하고 후회하고 실패하는 것을 반복하게 됩니다.

결핍은 결핍을 낳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결핍의 덫입니다.

돈을 빌리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 빌리게 됩니다. 결핍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 상태의 사람에게 돈을 주면 해결 될까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핍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결핍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함정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결핍에 빠진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터널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231절에서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 다윗은 20대에 사울을 피해 10년 동안 도망자 신세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살이 목숨이었습니다.

- 왕이 된 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으로 그 집안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 사랑하는 아들 암논이 사랑하는 딸 다말에게 성적 범죄를 저지르고, 압살롬은 암논을 복수하고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킵니다.

결국 사랑하는 아들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족으로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과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부족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요, 통치자이시요, 나를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신 주님과 가족이 된다는 것은

내게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랑 가득한, 행복 가득한, 기쁨 가득한 주님의 가족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의 친구이며, 가족이니

나는 더 이상 부족함이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패밀리!! 가족,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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