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카이로스: 하나님의 시공간> PART 2-1 원리
- 박준원 2021.12.4 조회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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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하나님의 시공간,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원리> 고성준, 규장, 2020
(63페이지)
PART 2 원리(PRINCIPLES)
2부는 고린도전서를 통해 영적 세계의 원리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영적 원리들의 대전제가 되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육의 원리를 따라 살면 육이 강해지고, 영원 원리를 따라 살면 영이 강해집니다. 육의 원리를 따라 살면 육이 삶을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대로 영의 원리를 따라 살면 영이 강해져 질서 가운데 혼과 육은 영의 지배를 받게 되어 삶 속에 질서와 평안과 안식과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원한다는 우리는 영을 강하게 하고 영적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원리1 영은 하나 되게 하고 육은 나눈다> 69페이지
고린도전서에서 이야기하는 첫 번째 영적 세계의 원리는 영은 하나 되게 하고 육은 나눈다는 것입니다. 영은 물방울 같아서 어느 순간 스르르 끌어당겨 하나가 되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육은 분리하고 고립시키고 나누어지게 합니다. 미성숙했던 고린도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분열이 있었습니다.
고전1:10-13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이러한 분열의 원인이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세례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공동체가 함 몸이 되는 것인데 놀랍게도 이러한 세례를 받는 것을 가지고 분열이 되었던 것입니다.
1. 육은 나눠지게 합니다.
육에 속한 삶은 영적인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분열됩니다. 교회가 분열할 때 영적인 주제로 싸웁니다. 서로 서로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대답합니다. 그런데 그 열정 때문에 갈라집니다. 분열되고 나뉘면 영은 침체됩니다. 나눠질 때 우리 안의 육이 강해집니다. 나눠질 때 혈기가 왕성하고 감정이 끓어오르고 상대를 무너뜨릴 꾀가 충만해집니다. 스트레스받고 잘 먹지 못해도 강철 체력이 됩니다. 나뉘는 일이 시작되면, 우리 육이 활성화됩니다. 그 순간 영은 쭈그러들고 침체됩니다. 성경은 하나되기를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엡4:3-4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하나 됨을 힘쓸 때, 영이 활성화됩니다. 하나 됨이 깨어지면 성령께서 역사하지 못하십니다. 영적인 삶, 성령충만한 삶을 원한다면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일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2. 영은 하나되게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은 하나 되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을 분별하라고 알려줍니다.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하나님의 영에는 하나 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생수, 생물, 흐르는 강 등 물에 비유합니다. 물이 서로 끌어당겨 하나가 되는 속성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분이신데 하나입니다. 한 분이신지 세분이신지 구분이 안됩니다. 이러한 영의 원리에 따라 구분이 불가능한 연합, 즉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계십니다. 세상의 원리로는 설명 불가능합니다. 영에 속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 될 때, 연합할 때, 그 안에 가장 충만한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십니다. 영이 강해지는 첫번째 원리는 하나 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관계가 깨졌다면 주님께 하나됨을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분열은 먼저 우리의 영을 죽게 만듭니다.
(묵상기도) 아직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영역이 있습니까? 용서하지 못함은 우리의 영을 묶고 방해하며 하나 되지 못하게 합니다. 의지적으로 용서를 선택해야 합니다.
<원리2 영은 믿는 것이고 혼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75페이지
두 번째 원리는 영은 믿는 것이고, 혼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고전1:18:21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1.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고전1:21) 지혜란 이 땅의 것을 이해하는 기능이지 영적인 것을 이해하는 기능이 아닙니다. 이성으로 영적인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영적인 것은 이성(혼)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반지성적인 분은 아니시지만 초지성적인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의 지혜와 이성으로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고전1:21) 믿음을 통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믿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해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습니다.
2. 하나님은 지혜를 멸하시고 총명을 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지혜를 멸하시고 총명을 폐하십니다.
고전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여기서 지혜 있는 자는 이성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의 지혜는 보이는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혼과 육을 강화시킵니다.
영을 강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인생을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 영이 활성화되고 강해집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가 이야기하는 두 번째 영적 원리입니다.
3.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영이 성장합니다.
살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혼과 영이 대립하기 시작합니다. 혼은 왜를 묻기 시작하면서 이해하려고 애를 쓰지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시험에 들고 영적으로 침체가 됩니다.
영적으로 침체되는 이유는 혼과 육을 강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영은 믿는 것이고 혼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려는 혼이 강화되면 영은 침체됩니다.
반면에 영은 왜를 묻지 않습니다. 그냥 믿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발휘될 때, 우리 영이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믿음은 영의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모든 것이 다 완벽한 상황 속에서는 믿음이 발휘될 여지가 없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비로소 우리의 영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해하려고 하는 우리 혼의 작동이 멈추는 곳에서 우리의 영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여전히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실뢰가 발휘될 때 비로소 영적 성장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영성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믿음으로 통과할 때 만들어집니다.
영적 권위가 부어지는 원리는 억울한 일을 묵묵히 통과할 때입니다. 성경과 신학적 지식이 아니라,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묵묵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빌2:8-10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께서도 억울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통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아무 불평과 원망없이 통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영적 세계의 원리입니다. 억울한 상황을 통과하고 있다면, 묵묵히 통과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영적 권위를 부여하려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영적인 원리를 따라 살아야 영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인 삶에는 질서와 평안과 안식과 기쁨이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나됨은 축복입니다. 불의한 일상을 묵묵히 견디십시오.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묵상)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싶은 유혹이 있지는 않습니까? 영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은 무엇이며, 억울한 일들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가십시오!
<원리3 육이 약해야 영적인 삶을 삽니다> 78
세번째 원리는 육이 약해야 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 고전2: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헤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육이 약하다는 것은 혼, 즉 자아가 약한 것을 말합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육으로 살게 되고, 자아가 약한 사람은 영으로 살게 됩니다.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혼과 육, 자아가 성령 안에서 부인되고 약해져야 합니다.
-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1.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
-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영으로 하는 사역과 혼으로 하는 사역은 다릅니다.
바울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사역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시도하지 않습니다.
- 영적인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혼은 지혜를 구하고, 영은 믿음을 행합니다. 물론 우리는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멈춰서는 안됩니다. 지혜를 넘어서는 곳에 믿음이 있습니다.
2. 자신감 vs 믿음
- 고전2:3,5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너희 맏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바울은 아덴에서 전도할 때 자신의 학벌과 지혜를 믿고 전도하였습니다.(?) 논쟁에서 이겼을지는 몰라도 아무도 예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실패의 경험이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떠는 고린도의 바울을 만들었습니다. 자신감은 자신에 대한 믿음(혼에 속한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영에 속한 것)
- 바울은 고린도에서 자신감이 1도 없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였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곳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영적 원리입니다. 자신에 대해 약하고 두렵고 심히 떨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구합니다.
(묵상) 내가 의지하고 자신있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 지식, 돈, 성품? 그것을 의지하고 자랑할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자리는 없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원리4 영은 갈망이다> 84
네 번째 영적 원리는 영과 갈망에 대한 것입니다.
-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이 말씀은 인간이 세상이 영을 받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영을 받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는 다른 영의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종의 영과 양자의 영(롬8:15),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6:12),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요일4:6), 귀신의 영(계16:14)
그래서 요한일서4:1에서는 영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영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1. 인간 영의 독특한 특징
인간 영의 독특한 특징은 다른 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육체 안에 거하는 영이라는 독특한 존재 방식을 가진 인간에게만 다른 영이 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은 그의 의지적 선택에 의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세상의 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2. 영이란 무엇인가?
영의 정확한 정체는 무엇일까요?
1) 영은 갈망을 일으킵니다.
영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거하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생명입니다. 영의 속성은 무언가에 대한 갈망을 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갈망을 향해 움직입니다. 그 움직이게 하는 생명이 바로 갈망입니다. 영은 갈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영은 갈망을 일으키는 그 무엇입니다.
2) 갈망은 삶의 의미를 결정합니다.
영이 일으킨 갈망은 삶의 의미를 결정합니다. 갈망하는 것을 이루어가는 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가 됩니다. 갈망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영혼없는 인형처럼 무의미하게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영은 삶의 의미를 줍니다.
3) 삶의 의미는 행복과 만족을 결정합니다.
삶의 의미는 행복이 무엇이고 만족이 무엇인지를 정의합니다. 갈망하는 것, 삶의 의미를 이루어가는 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느끼는 감정이 만족입니다. 그래서 영이 우리의 행복과 만족을 결정합니다. 맘몬(재물, 돈신)의 영은 돈에 대한 갈망을 줍니다. 이 갈망은 삶의 의미를 돈 버는 것으로 정의하게 만듭니다. 그에게 행복은 돈을 버는 것이며, 만족은 돈을 벌었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정의됩니다. 이것이 영이 하는 일입니다.
4) 영은 갈망하는 것을 주목하고, 찾고, 추구하게 합니다.
영은 만족을 주고 행복을 주며, 삶의 의미를 주는 그 갈망을 주목하고, 찾고, 추구하게 합니다. 그래서 영은 집착이나 중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 음란의 영은 성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일으킵니다. 성적인 것을 찾아 움직이며 성적 만족이 채워지는 것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그래야 만족되기 때문입니다. 이 영은 성적인 것을 의미와 만족으로 여겨 그것을 계속 찾고 추구하고 하며, 그 결과 성에 대한 집착이나 중독에 이르게 합니다.
- 종교의 영은 종교적인 것을 찾고 추구하게 하고 종교적인 행위를 항해 움직입니다. 더 높은 종교적 지위를 얻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고, 그렇지 못하면 좌절하고 분노합니다.
- 물질의 영은 돈과 재물을 향한 갈망을 일으킵니다. 그 결과 돈으로 인생의 의미와 만족을 정의하게 하고, 돈을 찾고 추구하고 그것을 향해 움직이게 합니다.
- 권력의 영은 권력을 향한 갈망을 일으키고 권력 잡는 것을 인생의 이미와 만족으로 여기게 합니다. 그 결과 권력을 찾고 추구하고 그것을 향해 움직이게 합니다.
- 무엇이든지 어느 선을 넘어가면 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어떤 사상들)와 영 사이에는 미묘한 경계가 있습니다. 어느 선을 넘는 순간 무조건적인 추종에 이르게 되는데 영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이 일으키는 갈망은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영이 가지는 속성입니다.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갈망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영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이러한 갈망의 속성 때문에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독특한 존재가 됩니다. 인간은 육체를 가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을 그 안에 두셨고 하나님의 영이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떠났습니다.
- 창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 사람이 육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공허함과 지루함이 인생을 덮어버렸습니다. 그 공허의 자리에 다른 세상의 영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다른 종류의 의미를 따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주는 갈망이 아닌 다른 갈망 속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현실입니다.
-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영을 인간에게 되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오셨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갈망에 따라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세상의 영
인간의 의지에 의해 하나님의 영도, 세상의 영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들을 세상의 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영이 일으키는 갈망들이 모두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영은 세상에 속한 갈망을 주고 세상의 것들을 찾고, 추구하고, 그것을 향해 움직이게 합니다. 그것에 집착하게 합니다.
4. 영이 혼을 지배하는 방식
인간의 영의 두번째 특징은 영이 혼과 육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 속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 영원을 향한 갈망을 줍니다.
- 시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 전3:11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 고전2:10 오직 하나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통달은 헬라어로 에류나오인데 찾다, 조사하다, 추구하다라는 의미입니다.(search)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찾고 조사하고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하나님 대한 지식을 추구하게 하고 통달하도록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찾는 삶을 선택하게 하고, 순종하는 살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혼을 다스리는 방식입니다.
- 세상의 영도 같은 방식을 작용합니다. 돈과 권력과 성 등 세상적인 갈망을 일으킵니다. 이 영들은 우리의 지성을 자극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이룰 꾀를 내며 감정을 자극해 그것을 추구하게 합니다. 결국 의지를 움직여 돈과 권력과 음란한 것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영이 혼을 지배하는 방법입니다. 그 결과 집착과 중독으로 거기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5. 영은 주목하여 보게 한다.
-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알게 하다의 헬라어는 에이돈으로 보다, 주목하다, 알아차리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을 받으면 주목하여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과 그 은혜를 주목하게 보게 되고, 세상의 영을 받으면 세상의 것을 주목하여 보게 됩니다.
- 우리는 무엇을 주목하여 보고 있습니까?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그것이 없으면 불안합니까?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이 우리 안에 역사하는 영입니다.
- 세상의 영이든, 하나님의 영이든, 영은 보는 것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우리 안에 어떤 갈망이나 관심으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그 무언가와 관련되 ㄴ영이 훅하고 내 안에 있는 갈망과 합쳐지면서 들어옵니다.
- 성령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어서 하나님을 주목하며 볼때, 성령께서 내 안에 훅하고 들어옵니다. 아무 관심도 갈망도 없는데 성령께서 강제로 임하지는 않습니다.
- 계속 보고 또 보면 그 영은 더욱 강화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보면 성령께서 강해지시고 세상의 영이 주는 것을 계속 보면 세상의 영이 더욱 강해집니다. 영적인 싸움은 결국 보는 것의 싸움입니다. 보는 것을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 눅11:34-35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이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빛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영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눈이 성하면 영적으로 깨어 강해질 것이고 우리의 눈이 나쁘면 우리의 영도 멍해질 것입니다. 영은 보는 것에 의해 결정됩니다.
*추천도서: 보는 것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눈의 언약>(밥 소르기, 샬롬서원, 2018)을 추천드립니다.
6.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소한 틈만 있어도 어떻게 해서든 비집고 들어와 우리 마음에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 엡6:12-13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호심경은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도덕적으로 작은 틈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이 정도쯤이야라는 안이한 생각이 우리의 방어선을 무너뜨립니다. 보는 것에 틈이 없어야 합니다.
-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단순한 방어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 눅11:20-22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 세상의 영은 강한 자입니다. 우리의 혈과 육으로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강한 자가 계십니다.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안에 가장 강한 갈망, 영원을 향한 갈망을 일으키시는 성령님께서 오실 때, 세상의 영이 주는 모든 갈망들은 사그라져 갈 것이다. 이것이 승리이다.
(묵상) 우리의 눈은 무엇을 주목하여 보고 있습니까? 우리의 영은 그 보는 것을 따라갑니다. 우리가 가장 원하고 갈망하는 것이 우리 안에 역사하는 영입니다. 속박이나 중독에 사로잡힌 영역은 무엇입니까? 스스로는 그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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